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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성필의 언중유향]브라질은 제모로도 어려웠지만…벤투호, 면도하게 해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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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도하(카타르), 월드컵 특별취재팀 이성필 기자]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벤투호는 16강에서 브라질에 1-4로 패하며 장렬하게 물러났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에 쓰러져 허무하다는 자세를 보이던 선수들을 바라보는 모습은 정말 짠했습니다.

브라질전이 열렸던 스타디움 974는 온통 브라질의 노란색 일색이었습니다. 붉은악마가 열띤 응원을 했지만, 관중석은 브라질 편이었습니다. 물론 백승호(전북 현대)의 놀라운 중거리 슈팅 골이 나오자 경기 흐름과 상관없이 박수나 나왔습니다. 루이 반 할 네덜란드 감독이 그랬다죠. 한국만 공격 축구를 했다고. 우리의 도전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 했습니다.

독자분들 중에서 스포티비뉴스의 '스포츠타임' 영상 콘텐츠를 보신 분이 계신다면 포르투갈과의 3차전 당일, 기자는 숙소 인근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고 계속 기르던 수염도 면도했습니다. 이란인 헤어 디자이너가 깎았는데, 자신들은 16강에 못갔으니 꼭 가라고 하더군요.

면도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유는 과거 월드컵 취재에서 생긴 혼자만의 버릇이나 징크스랄까요. 한국 대표팀이 첫 승을 하는 순간까지 면도를 하지 않겠다고 길렀지만, 처음 현장에 갔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1무2패로 끝낸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당일 면도했습니다. 세계의 벽은 참 높더군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같은 행동을 했지만, 역시 스웨덴과 멕시코에 아깝게 졌습니다. 결국 독일전 당일 오전 "아니, 독일을 어떻게 이기겠어"라는 자조와 함께 면도를 했습니다. 함께 출장왔던 취재진은 일하느라 제가 면도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에 2-0 승리와 함께 조 3위로 16강 진출이 좌절되는 것과 마주했습니다. 그래도 자랑스러운 승리였죠. 당시 타사에서 일하면서 '태극 전사들에게 면도하게 해줘서 고맙다'라는 기사를 남기기도 했었죠.

이번에도 기자는 같은 루틴으로 승리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우루과이에 주도하고도 0-0 무승부, 가나에 아깝게 2-3으로 패한 뒤 함께 온 동료들이 "면도하지 않아 그렇다"라며 무승을 제 잘못으로 몰아갔습니다.

고민하던 기자는 경기 당일 면도에 머리까지 깎았습니다. 쉽지 않은 상대지만, 과연 승리가 가능할 것인가, 또 우루과이가 2-0으로만 이기거나 가나가 한 골을 넣고 지면 16강에 가는 그런 기적을 볼 수 있을까 의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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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심은 사치였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황희찬 선수의 결승골이 들어간 뒤 동료 취재진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16강에 갈 수 있으니까요. 얌전, 냉철해야 하는 기자석이라도 국제 대회에서는 투사가 되거나 감정이 풍부한 사람으로 돌변하게 마련입니다.

어쨌든 우리 벤투호는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정말 기쁜 일이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을 현지에서 경험했던 타사 후배 기자에게도 할 말이 생겼습니다. 선수들의 영광을 기자단과 함께 누리고 부상자가 나오면 걱정하고 그런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죠.

브라질전을 앞두고 타사 후배 기자는 기자에게 "브라질을 만나게 됐으니 (브라질리언) 왁싱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웃었습니다. 진짜 무엇이든 할 수만 있다면 다 하겠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 남들 모르게 경기장에 가기 전 겨드랑이 터럭의 제모를 감행했습니다. 뭐라도 하면 혹시라도 좋은 기운이 있을까봐, 브라질이 강한 상대지만, 벤투호도 쉽게 밀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대회 최고의 유행어인 '메트로 디스 웨이(METRO, THIS WAY)처럼 경기 후 중요 귀가 수단인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안타깝게도 우리가 짐을 싸서 집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4년 4개월 동안 벤투 감독과 호흡한 선수들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충분히 16강 성과를 인정 받아도 되구요.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앞으로의 4년입니다. 누가 지휘봉을 잡더라도 벤투 감독이 만든 틀과 일관된 모습으로 인해 더 치밀하고 어렵게 도전해야 합니다. 다른 국가들은 벌써 차기 감독에 대한 세평이 오르거나 선임 작업을 하고 있죠. 우리도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팀이 먼저 떠나고 도하에 머무르는 동안 번화가인 수크 와퀴프에 가니 8강전에 나서는 아르헨티나, 모로코 팬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하더군요.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차이는 이렇게 큽니다. 우리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더 꼼꼼하고 치열하게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만약 4년 뒤에도 제가 월드컵 현장에 있다면 이번과 마찬가지로 면도를 하지 않고 기다릴까 합니다. 제가 못 가면 동료 기자에게 부탁하려고 합니다. 이번에도 면도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만큼 우리 대표팀의 수준은 점점 세계와 좁혀가고 있습니다. 축구 팬, 국민들께서 한국 축구를 관장하는 축구협회의 행정과 정책을 계속 관심 갖고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뜨거우면서 차가운, 다소 말이 맞지는 않지만, 그런 관심이 한국 축구의 길을 올바르게 가도록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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