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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사우디 왕자가 된 ‘토요일의 왕자’ 그렉 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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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렉 노먼이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시안 투어 시리즈를 도우면서 PGA 투어와 대립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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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는 마치 골프의 메카가 되려는 듯 저돌적이다. 사우디는 최근 아시안 투어에 2억 달러를 투입해 10년간 10개 대회씩 열겠다고 했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여는 여자골프 팀 시리즈엔 넬리 코다, 렉시 톰슨, 대니얼 강 등이 참가했다. 리디아 고는 베어트로피 수상 가능성을 포기하면서 사우디에서 열리는 2개 대회에 참가한다고 발표했다가 하나로 줄였다.

사우디는 잭 니클라우스의 골프장 설계 계약을 발표했다. 더스틴 존슨, 필 미켈슨, 브라이슨 디섐보 등은 PGA(미국프로골프) 투어에 내년 사우디 대회 참가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사우디의 모래바람 속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그렉 노먼(66)이다. 노먼은 아시안 투어 10개 시리즈의 커미셔너가 될 예정이다.

사우디는 자동차경주 F1을 닮은 프리미어 골프리그를 만들고 싶어 한다. PGA 투어와 유러피언투어가 막고 있다.

이 골프 전쟁의 사우디 사령관이 왜 노먼일까. 노먼은 PGA 투어와 앙금이 많다. 27년 전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노먼이 세계 랭킹 1위였고, 닉 프라이스, 세베바에스트로스, 닉 팔도 등 비(非) 미국 스타들이 골프를 주도했다. 노먼은 미국 투어가 아니라 세계 투어가 되어야 한다고 여겨 루퍼트 머독의 FOX 방송사와 손을 잡았다.

정상급 선수 30~40명이 전 세계를 돌며 8~12개의 대회를 치르는 새 투어를 기획했다. 상금은 당시 PGA 투어 대회의 10배 수준이었고 초청료는 별도였다. PGA 투어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노먼은 자서전에서 “월드 투어 계획을 알아챈 PGA 투어가 비슷한 월드골프챔피언십(WGC)을 만들어 선수를 쳤다. 투어는 또 내가 한 말을 왜곡해서 발표했다”고 썼다. 톱 30명에 포함되지 않는 선수들은 월드 투어에 반대했다. 미국 골프장 프로샵을 운영하는 프로들은 백상어 로고가 달린 그렉 노먼 의류 주문 취소 운동도 벌였다. 원로인 아널드 파머는 ‘노먼의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했다. 노먼의 월드 투어 꿈은 좌절됐다.

사우디에서도 노먼이 필요했다. PGA 투어는 “사우디 리그에 참가하는 선수는 영구 제명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선수들은 눈치를 보고 있다. 노먼은 PGA 투어에서 20승을 해 평생 회원이다. PGA 투어에서는 노먼을 제명하기도 어렵고, 그냥 두기도 곤란하다.

방치하면 다른 선수들에게 사우디 대회 참가 명분을 주게 된다. 제명한다면 노먼 측이 소송할 것으로 예상한다. PGA 투어로서는 소송에서 지면 선수들에게 사우디로 가는 대문을 열어주는 격이다.

노먼은 ‘토요일의 왕자’로 꼽혔다. 1986년에는 4대 메이저 대회 모두 토요일(3라운드) 선두였는데 그중 3개는 역전패했다. 메이저 우승은 두 번인데 2등은 일곱 번이다. 1996년 마스터스에서는 토요일 밤 6타 차 선두였는데 일요일 오후 7타 차 2위였다.

토요일의 왕자는 이제 ‘사우디의 왕자’로 칼을 뺐다. 이번 프로젝트의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명분도 약하다. 사우디 왕실은 권력투쟁이 심하다. 따지고 보면 사우디가 골프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는 왕자들 간의 갈등 때문이었다. 2018년 권력다툼 와중 언론인을 살해한 사건 이후 사우디는 스포츠워시(Sportswash·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쇄신)를 하고 있다.

현역시절 끝내기에 약했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마무리를 할지 궁금하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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