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SNS서 티격태격 말싸움
팬 입장선 경기 외적으로 관심사
서로 좋은 말만 해주는 국내투어
스포츠 최고의 콘텐트는 라이벌
디섐보(왼쪽)와 켑카(오른쪽)가 뼈 있는 유머로 서로를 공격하는 건 미국 골프계에서도 화제다. 이런 라이벌 관계는 골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발전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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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투어의 스타인 브룩스 켑카와 브라이슨 디섐보는 서로 으르렁댄다. 2019년 디섐보의 슬로플레이를 향해 켑카가 돌직구를 날린 이후로 계속 티격태격한다. 지난달에는 켑카가 방송 인터뷰를 하는데 디섐보가 쇠 징 스파이크를 신고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켑카의 짜증 가득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조회 수 1000만).
두 선수 다 장타를 치는 정상급 선수다. 실력보다 인기는 상대적으로 적어 인정 욕구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유치하게 싸우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말싸움에는 유머를 섞는다.
지난해 코로나19 셧다운이 끝나고 디섐보 몸이 헐크처럼 불었을 때다. 켑카는 금지약물을 복용했다 적발된 선수 영상을 올렸다. 디섐보가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암시다. 그러자 디섐보는 “나는 복근이 있고 켑카는 없다”고 받아쳤다. 무릎을 다친 후 운동 부족으로 약간 배가 나온 켑카를 꼬집었다. 그러자 켑카는 자신의 메이저 우승컵 4개가 전시된 사진을 올리며 “네가 맞다. 나는 아직 두 개가 모자란다”고 썼다. 메이저 4승의 켑카는 식스팩이 되려면 2개가 모자란다는 뜻이다. 당시 메이저 우승이 없는 디섐보를 비꼰 거다.
미국 프로풋볼(NFL) 쿼터백 애런 로저스-디섐보가 한 팀이 되어 필 미켈슨-톰 브래디와 맞붙는 ‘더 매치’ 대진이 발표됐을 때다. 켑카는 “(디샘보와 같은 팀인) 로저스가 불쌍하다”고 말했다. 디섐보는 “나는 켑카 머릿속에 임대료도 내지 않고 산다”고 비꼬았다. 사사건건 어깃장 놓는 켑카 머릿속에는 디섐보라는 이름으로 꽉 차 있다는 뜻이다.
미켈슨도 숟가락을 얹었다. 그는 “둘의 싸움이라 나는 빠져야 할 것 같은데, 주최 측에서는 PGA 챔피언십 우승자를 원한다”고 썼다. 미켈슨은 PGA 챔피언십에서 켑카와 경쟁해 우승했다. 돌 하나로 ‘더 매치’ 상대인 디섐보와 켑카를 한꺼번에 저격한 ‘일석이조’였다.
선수끼리 아옹다옹하는 건 골프에 해가 될까. 켑카는 “라이벌 관계가 골프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골프장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골프장 안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골프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부연했다. 켑카와 디섐보가 이 부분에서는 의견은 같았다. 실제로 두 선수의 인터넷 격돌은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미디어에 자주 보도됐다.
언제부턴가 국내 투어에 라이벌이 사라졌다. 다들 경쟁자를 “좋은 선수”, “착한 후배”, “훌륭한 선배”라고만 말한다. 실제는 꼭 그렇지도 않다. 골프는 누군가 올라가면 누군가 내려가는 제로섬 게임이다. 경쟁의식이 강하다. 개그맨이 더는 정치 풍자를 하지 않는 것처럼, 선수들은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다. 말꼬리 잡아 여론 재판에 넘기는 엄숙한 사회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선후배 관계가 경직된 탓일 수도 있다.
사람의 욕망과 이로 인한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갈등은 재미의 필수 요소다. 그게 스포츠에서는 라이벌 관계다. 이는 가장 흥미로운 콘텐트다. 그러니 켑카와 디섐보처럼 적당한 선에서 누굴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드러낼 필요도 있다. 소셜미디어 시대, 누가 더 재치있게 말하는지, 누가 더 똑똑한지 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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