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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백 마디 말 대신한 마쓰아먀 캐디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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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자 캐디가 18번 홀 깃발 가져

홀 향한 캐디 인사에 찬사 잇따라

골프라는 종교 또 다른 감사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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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 홀 깃대에 고개숙여 인사하는 마쓰야마 히데키의 캐디 하야후지 쇼타. [사진 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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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챔피언은 당연히 우승컵을 받는다. 캐디도 챙기는 게 있다. 18번 홀 깃발을 가져가는 게 전통이다.

마스터스 우승자는 상금, 트로피 이외에 그린재킷을 받는다. 그의 캐디는 대회 때 입었던 흰색 점프수트를 보너스로 얻을 수 있다. 그냥 가져가면 안 되고, 일단 반납했다가 “우승을 기념하고 싶다”고 편지를 쓰면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보내준다.

12일(한국시각)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마쓰야마 히데키(일본)가 트로피를 받으러 갈 때 그의 캐디 하야후지 쇼타는 깃발을 챙기러 갔다. 깃발을 떼어낸 깃대를 다시 컵에 꽂은 뒤, 모자를 벗고 잠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영국의 베테랑 골퍼 리 웨스트우드는 “골프, 아니 스포츠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칭찬했다. 많은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이를 본 서양인들은 인터넷에 “울컥해 목이 메었다”고 썼다.

정작 하야후지는 “별것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언론에 “우승하면 깃발 챙기는 건 알았다. 그런데 우승이 처음이라 깃발을 뗀 깃대를 그린에 내려놓고 와야 할지, 컵에 꽂아야 할지 몰라 잠시 당황했다. 그러다 깃대를 꽂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던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깃발을 가져가는 건 일본 고교야구 선수가 고시엔 흙을 담아 가는 것과 흡사하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건 하야후지 말처럼 동양인에게는 평범한 감사와 존경의 표시다.

그 당연한 감사를 그 동안 아무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이 화제가 되고 감동을 준 것 같다. 크리스천이 십자가에, 불교도가 불상에 표하는 그 것처럼 종교적인 느낌도 났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을 ‘깃발 꽂힌 천국’이라고 한다. 일부러 그 쪽을 향했는지는 모르지만 캐디가 고개를 숙인 방향은 아멘코너 쪽이었다. 골프라는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는 완벽한 곳이다. 그는 골프의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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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야마 히데키와 그의 캐디 하야후지 쇼타.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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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야마의 캐디는 무엇에 감사했을까. ▶가장 뛰어나고 인내할 줄 아는 선수를 우승자로 골라낸 코스 ▶외국인이지만 자국인처럼 응원해 준 갤러리 ▶골프의 성인 바비 존스가 만든 마스터스의 전통 ▶대회를 위해 고생한 조직위, 코스 관리 인부, 자원봉사자들일 것이다.

물론 자신을 믿고 함께한 마쓰야마에 대한 감사와 존경도 있을 거다. 선수 출신인 하야후지가 10대에 쓴 프로필의 목표로 하는 사람에는 '마쓰야마 히데키'라고 적혀 있다.

마쓰야마는 과묵하다. 결혼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을 정도다. 마스터스 우승 후 소감 질문에 “매우 기쁘다” 등 간단히 답했다. 그의 마음과 사연을 듣고 싶었던 시청자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인터뷰였다.

캐디 하야후지도 말이 없다. PGA 투어에서 영어를 못하는 캐디는 그가 유일할 거다. 마쓰야마는 통역이 있지만, 코스에서 복잡한 룰 문제 등이 생기면 캐디가 해결해야 하는 데 영어 못하는 캐디 때문에 손해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말로는 표현을 잘 못하는 그 캐디가 인사 하나로 마음을 가장 잘 전달했다. 골프에 감사하고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이 그 인사에 다 녹아 있다. 골프의 천국에 다다른 그들을 축하한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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