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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우즈 그늘’ 벗은 웨스트우드 행복한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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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준우승 등

48살에 두 대회 연속으로 2위에

우즈 의식하며 뒤따라갔던 과거

여친 캐디 동행, 현재 모습이 중요

중앙일보

리 웨스트우드(오른쪽)가 캐디이자 약혼녀인 헬렌 스토리와 입 맞추고 있다. 마스터스에서는 아들 샘이 가방을 멜 예정이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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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골프 세계 1위를 단독 인터뷰하는 행운을 얻은 적이 있다. 타이거 우즈(Woods)는 아니다. 2011년 잠시 1위에 올랐던 리 웨스트우드(Westwood)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그는 소탈했다. 무엇보다 영국식 유머가 재미있었다. 인터뷰 내내 다른 ‘W’ 선수, 우즈를 의식하는 느낌이 강했다.

웨스트우드가 15일(한국시각) 끝난 ‘제5의 메이저 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했다. 지난주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 이어 두 대회 연속 1타 차 2위다. 2011년 세계 1위에서 밀려난 뒤 조용히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거의 10년 만에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웨스트우드는 1973년생이다. 8년 전 은퇴해 이젠 중견 예능인인 서장훈보다도 한 살 많다.

뛰어난 선수는 나이가 들면서 침체했다가도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곤 한다. 마치 난초가 시들기 전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것처럼 말이다. 우즈가 그랬다. 2017년 허리가 아파 은퇴하려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술이 잘 돼 약 2년간, 축구로 치면 추가 시간을 얻었다. 그때 마스터스 등 3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메이저 우승을 15승으로, PGA 투어 우승을 82승으로 늘렸다.

웨스트우드는 2019년 말부터 서서히 살아났다. 유럽투어 최고 선수로 재기했다. PGA 투어에서는 자신보다 스무 살 어린 선수와 겨뤄 연거푸 준우승했다. 역부족인 지점도 있었다. 지난주 아널드 파머 대회가 그랬다. 우승자 브라이슨 디섐보가 광대한 호수를 넘겨 파 5홀에서 1온을 시도하는 등 파죽지세였다. 그걸 넘어서기는 어려웠다.

이번 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는 세계 3위 저스틴 토머스에게 운이 따랐다. 마지막 홀에서 토머스의 티샷은 심한 훅이 나면서 호수에 빠지는 듯했다. 그런데 공이 떨어진 지점의 경사 때문에 공의 방향이 바뀌었다. 공은 호수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60야드 정도 굴렀고 결국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쨌든 웨스트우드의 나이를 생각할 때 두 대회 연속으로 우승 경쟁을 한 건 놀랍다. 그는 지금 인생 최고의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 건, 진 거다. 우즈라면 달랐을지 모른다. 우즈는 잡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이게 우즈와 웨스트우드의 클래스 차이일 수도 있다.

어니 엘스, 필 미켈슨 등 1970년대에 태어난 선수들은 불운하다. 그들은 동시대를 호령한 우즈라는 스타의 거대한 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다. 엘스와 미켈슨은 그나마 메이저 우승컵이라도 있다. 웨스트우드는 메이저 대회에서 좌절만 겪었다. 그는 메이저 우승컵이 없는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현재 우즈와 웨스트우드의 메이저 우승 스코어는 15 대 0이다. 웨스트우드에게 앞으로 기회가 계속 온다는 보장은 없다. 웨스트우드가 마스터스 등 메이저 대회 출전권을 다시 얻었지만, 스코어가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 건 숫자와 상관없이 웨스트우드가 행복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경기한다. 가방을 드는 것 말고는 기술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여자 친구를 캐디로 동행하고 있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점이 그가 다시 살아난 이유일 것이다. 실제 여자 친구가 캐디를 맡은 뒤 그의 성적이 좋아졌다.

웨스트우드는 “골프는 작고 흰 공을 작고 흰 구멍에 넣는 경기일 뿐이다. 때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내가 사랑하고 지난 28년 동안 해왔던 일을 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요즘 그는 우즈를 의식하지도 않고,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우승을 많이 한 우즈도 ‘W’(win)고, 행복하게 사는 웨스트우드도 ‘W’다. 웨스트우드는 우즈와 약간 다른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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