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프장서 몰래 훈련한 골프
실력이 좋아 되레 힘든 투어생활
시니어 투어 꿈꾸며 딸 뒷바라지
“골프를 생각하면 아직도 떨려”
박현경(왼쪽)이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직후, 캐디인 아버지 박세수씨와 기쁨을 나눴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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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 몰래 들어가 공을 치다가 쫓겨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꼬마는 벌서거나 맞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날에는 또 골프장에 갔다.
1972년 전북 익산에 팔봉 골프장이 생겼다. 호남에 생긴 첫 골프코스다. 그래서 골프장을 낀 춘포면 갈전마을 사람들은 골프가 뭔지 알았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자치기를 할 때, 갈전마을 아이들은 골프를 했다. 삽으로 홀을 파고, 나무를 깎아 골프채를 만들었다. 나중에 동네에 세미프로나 티칭프로 자격증을 딴 사람이 여남은이 됐다.
KPGA 정회원이 세 명이었는데, 그중 투어프로도 한 명 있었다. 박세수(51)씨다. 집안 사형제가 다 골프를 했다. 형은 세미프로다.
박세수씨는 처음부터 골프에 마음을 뺏겼다. 동네에서 가장 잘했다. 그는 “뽀빠이 과자가 10원, 똘똘이 과자가 20원이던 시절, 홀당 50원 내기를 하면 1000원도 땄다. 실제로는 거의 받지 못했지만, 계산으로는 내가 제일 부자였다”고 말했다.
다들 독학으로 골프를 배웠는데, 그는 열정이 크고 학구적이었다. 익산 시내 서점에 나가 딱 한 권 있던 골프책을 샀다. 잭 니클라우스 것이었다.
박씨는 어릴 때 아르바이트 캐디로도 일했다. 주말에 “캐디가 부족하니 할 사람은 골프장으로 오라”고 동네방송이 나오면 그가 제일 먼저 뛰어갔다.
그는 “어느 한 회원이 쓰지 않는 골프채를 내게 줬다. 세트를 한꺼번에 준 게 아니고, 라운드 한 번마다 하나씩 줬다. 당시 번쩍이는 벤 호건 클럽을 받고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낮에 골프를 하려고 야간고교에 다녔다. 1990년 세미프로가 됐고, 군 복무를 마친 뒤인 96년에 정회원, 97년 투어 선수가 됐다. 그가 쓰던 클럽의 이름 주인(벤 호건) 등 20세기 초 미국 프로골퍼는 대부분 캐디 출신이었다.
동네 골프장에서 용돈 벌이하다 재능 있는 아이가 프로가 됐다. 그중 실력 좋은 프로가 투어에 나갔는데, 오히려 그들이 궁핍했다. 일반 프로는 레슨이나 골프장 헤드 프로로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반면 뛰어난 골퍼는 상금은 적고 비용은 많이 드는 대회에 참가했는데, 대부분 적자였다. 박씨가 그랬다. 그는 “빈농의 아들인 데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 때라 어려웠다”고 말했다.
박씨는 2002년 투어를 그만두고 레슨을 시작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한다. 아이 둘을 키운 뒤 시니어 투어에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계획이 틀어졌다.
딸이 골프를 너무 잘해서다. 14일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박현경(20)이 그의 딸이다. 그는 “현경이가 골프를 시작한 후 뒷바라지와 아이 캐디를 하며 시니어 투어의 꿈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런데 딸이 우승했으니 큰 산은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골프가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직도 떨린다. 현경이가 잘 적응하니, 다시 (시니어) 투어에 나갈 꿈을 꾸게 된다. 꼭 우승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전에 못했던 투어 생활도 하고,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시절 박현경과 박세수씨. [박세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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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도 우승을 한 적이 있다. 2부 투어에서 딱 한 번 했다. 그 4개월 뒤에 딸이 태어났다. 왼손잡이인 그는 “어릴 때는 다들 오른손으로 쳐, 나도 그래야 하는 걸로 알았다. 왼손으로 쳤다면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딸도 왼손잡이 성향이 조금 있다고 한다. 박씨는 “현경이는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스윙하면 모양이 더 잘 나오더라”라며 웃었다. 그는 자신이 왼손잡이로 손해를 봤다 생각하는데 딸이 자신을 닮은 것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리 뒷바라지하고 닮기도 한 딸이 우승한 거니, 아버지도 우승한 거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갈전마을은 팔봉면이 아니라 춘포면이기에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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