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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 54홀, 스카이72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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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 건설, 바다 코스 문 닫을 듯

수많은 명승부 드라마 펼쳐진 곳

일반 골퍼엔 붕어빵·어묵 추억도

단기 계약이라도 연장하는 게 옳아

중앙일보

겨울이면 공짜 붕어빵과 어묵을 주는 스카이 72골프장 오션코스의 12번 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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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생긴 한국 최초의 골프장 효창원은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과 숙명여대 자리에 있었다. 골프장은 조선철도국에서 건설했다. 골퍼들이 기차를 타고 와 철도국 직영 조선호텔 투숙객이 될 걸로 기대했다. 그래서 서울역과 가까운 곳에 골프장을 지었다.

이 골프장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1933년 개장)보다 12년 먼저 생긴 유서 깊은 골프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3년 밖에 못 갔다. 행인이 공에 맞아 싸움이 나기도 했고, 이 땅을 일본인들의 놀이터로 쓰는 데 반대여론이 높았다. 골프장 이용자들은 코스(9홀, 2322야드)가 너무 좁다고 느끼던 터라 청량리로 옮겨갔다. 그러나 역시 개발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군자리(뚝섬), 고양시로 점점 밀려났다.

도시에 있는 골프장들은 외곽으로 밀려나는 게 운명이다. 여의도에 있던 공항이 김포를 거쳐 영종도로 옮긴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골프 규칙을 만든(1744년) 것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골퍼들의 명예로운 모임(The Honou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은 원래 에든버러 시에 있는 코스를 썼다. 효창원과 비슷한 이유로 에든버러 인근 위성도시로 옮겼다가, 또 다시 좀 더 먼 곳(뮤어필드)으로 밀려났다.

인천공항에 제 5활주로 건설이 확정됐다. 언제 건설할지는 미정이다. 공항 유휴지에 만들어진 스카이72 골프장 중 하늘 코스(18홀)는 남고, 바다 코스(54홀)는 사라질 운명이다. 본지 강갑생 교통전문기자의 취재에 의하면 올해를 끝으로 바다 코스가 문을 닫을 것 같다. 올해 임대계약이 끝나는데 국토교통부 측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어차피 활주로를 지을 거니, 장기 계약은 하기 어렵고 단기 계약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기는 눈치다.

바다 코스 내에 있는 오션 코스는 한국 골프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다. 이 곳에서 열린 LPGA 투어 하나은행 챔피언십은 한국 최고 인기 대회였다. 수많은 드라마가 나왔다. 최나연은 2010년 가장 친한 친구 김송희와 치열한 접전 끝에 2년 연속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이듬해 청야니는 13번 홀에서 옆 홀을 보고 티샷을 해 갤러리들을 놀라게 했다. 대회 중 코스 내 OB 말뚝을 뽑는 것을 알고 지름길로 간 전략이었다. 이로 인해 최나연의 3연승이 좌절됐다. 2017년엔 고진영이 최고 스타 박성현·전인지를 챔피언조에서 꺾고 우승하면서 세계 랭킹 1위의 자신감을 얻었다. 오션 코스는 가장 팬이 많은 대회였고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날이 쌀쌀할 때 오션 코스에서 공짜로 주던 따끈한 붕어빵과 어묵은 꿀맛이었다.

바다 코스가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활주로를 언제 건설할지 확정되지 않았다면 골프장을 바로 없애지 말고 1,2 년씩이라도 계약을 하는 게 옳다. 골프장에서 내는 사용료가 연 15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지 않은 돈을 버릴 이유가 없다. 골퍼들로선 수많은 스타들이 명멸한 오션 코스의 역사를 좀 더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따끈한 붕어빵도 말이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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