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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아이들 롤 모델은 부모인가 스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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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컸던 1993년 바클리의 광고

징계 부당성 주장하려고 자청

스타 일탈에 강력 징계하는 한국

한쪽 주장 커지면 반대쪽 경청을

중앙일보

지난해 대회 중 경기를 방해한 관중에게 손가락 욕설로 징계를 받은 후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있는 김비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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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미국에 매우 논쟁적인 나이키 광고가 등장했다. 당시 미국 프로농구(NBA) 최고스타 중 한 명인 찰스 바클리가 출연해 “나는 롤 모델이 아니다. 롤 모델은 부모가 해야 한다. 덩크슛할 줄 안다고 해서 내가 아이를 길러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바클리는 광고가 나오기 2년 전 경기장에서 인종차별 욕을 하는 관중을 겨냥해 침을 뱉은 적이 있다. 침에 맞은 건 인종차별 관중 근처에 있던 여덟 살 아이였다. 미디어는 “어린이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할 스포츠 스타가 어린이에게 침을 뱉었다”며 비난했다. 한 경기 출장정지 징계와 1만 달러 벌금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바클리는 스폰서인 나이키를 찾아가 ‘나는 롤 모델이 아니다’ 광고를 제안했다.

지금 봐도 그 당시의 바클리 광고는 파격적이다. 어린이가 영웅으로 여기는 스포츠 스타가 “나는 롤 모델이 아니다”라니. 격한 토론이 벌어졌다. 대부분 바클리를 비난했다. 가장 호응이 많았던 논거는 동료 선수 칼 말론의 주장이었다. 성실함으로 ‘우편배달부’라는 별명까지 가진 말론은 한 잡지에 “당신이 선택할 건 좋은 롤 모델이 될지, 나쁜 롤 모델이 될지 뿐이다. 돈과 영광을 얻으면서, 모두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바클리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운동선수에게 맡기지 말고, 직접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맞받았다. 미국 사회는 대부분 말론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러나 바클리의 주장도 큰 충격이었고, 이로 인해 사회도 조금은 변했다.

지난해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미국 골프 선수 토미 게이니는 투어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징계를 받지 않았다. 승부조작 등 스포츠 내부의 죄는 엄벌하지만, 일반적인 죄라면 사회의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스포츠 외적인 일로 선수를 징계했다가 소송에 걸리면 리그가 곤란해진다.

한국에서 스포츠 스타가 성매매로 체포됐다면 선수 생명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게이니는 사건 후에도 대회에 출전해 우승했다. 타이거 우즈는 세상을 뒤흔든 대형 스캔들을 냈지만, 공식 징계를 받지 않았다.

한국은 스포츠 스타의 일탈에 대해 점점 더 세게 징계한다. 지난해 골프 대회 도중 손가락 욕설을 한 김비오는 3년 자격정지(후에 1년으로 경감)를 받았다. 온 가족이 보는 TV로 중계되는 경기에서 몹쓸 짓을 했다는 주장, 즉 롤 모델론이 중징계에 힘을 실었다. 혈중알코올농도 0.036% 상태로 음주운전에 적발된 프로야구 최충연은 150경기 출전정지 제재를 받았다. 1년 정지다.

스타 선수는 롤 모델인가, 아닌가. 아이에게는 부모가 가장 큰 롤 모델이지만, 스타도 보조 역할은 한다. 따라서 공인으로서 책임도 져야 한다.

PGA 투어가 성매매한 토미 게이니를 징계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선수나 배우가 도덕의 수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 냉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일탈에 대한 징계가 강경론으로 치닫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일반인은 법적 처벌 외에 별도의 징계를 받지 않는데, 운동선수라고 해서 면허 정지 수준의 음주운전에 1년 징계를 하는 건 지나치다.

한국 사회는 전보다 강하게 도덕성을 따진다. 일반인과 스타 선수(혹은 연예인)의 소프트 파워 격차가 커지면서 책임을 더욱 강조하는 분위기다. 기량과 실력을 동일시하는 문화도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강경파의 목소리는 크게 울린다. 미디어도 영향을 받는다. 한 야구기자는 “독자 댓글 반응 때문인지, 징계가 약할 때는 지적하지만, 과하다는 지적은 못 봤다”고 말했다. 한쪽 목소리만 커질 때는 반대쪽 주장, 즉 바클리 얘기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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