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골프여제 애니카 소렌스탐(50)의 미국 LPGA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 대목이다. ‘침묵의 암살자’란 별명이 붙었다면 ◯가 누군지 알 것이다.
박인비(32) 이야기다. 소렌스탐 말대로 결국 박인비가 작년 말부터 인터넷 투표로 진행된 LPGA 투어 ‘지난 10년간 최고 선수’에 올랐다.
손색이 없다. 메이저 대회 6승을 포함해 LPGA 투어 통산 19승에 리우올림픽(2016년) 금메달 획득으로 명실상부 그 자체다. 이미 골프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이 이를 증명한다.
박인비에게는 신비함이 묻어난다. 경기 중에도 그렇고 우승 후에도 별다른 표정이나 액션이 없다. 내면을 알 수 없는 엷은 미소만 지을 뿐이다. 연말과 연시에 각종 골프 기록이 나왔다. 박인비는 106주 동안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적도 있어 이 분야 세계 최장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해 가장 많은 상금을 탄 선수는 누굴까. 사람들은 세계 랭킹 1위 브룩스 켑카(미국·30)로 알겠지만 2위인 로리 매킬로이(영국·31)다. 매킬로이는 페덱스컵 우승으로 1500만달러 보너스를 거머쥐면서 2279만달러(약 266억원)를 벌었다. 켑카는 1318만달러(약 153억원), 우즈(45)는 337만달러(약 40억원)에 그쳤다.
미국의 골프닷컴에 따르면 평생 가장 많은 돈을 번 선수는 우즈로 8억달러(9336억원)다. 매킬로이는 1억5000만달러(약 1751억원)로 우즈 다음이다. 남자부문 세계 골프 랭킹에서는 켑카가 52주째(지난해 말 기준) 1위다. 매킬로이(영국), 존 람(스페인), 저스틴 토마스(미국), 더스틴 존슨(미국)이 뒤를 잇는다.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우즈는 6위에 랭크돼 있다.
한국 선수론 임성재(21)가 34위, 안병훈(28) 42위, 강성훈(32) 86위, 황중곤(27) 94위, 김시우(24) 97위로 100위 안에 5명이 속했다. 여자로는 고진영(24)이 34주간 롤렉스 세계랭킹 1위를 지켜냈다. 2위 박성현(26), 3위 넬리 코다(미국·22), 4위 대니얼 강(미국·28), 5위 김세영(26) 순이다. 박인비는 14위다. 고진영은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를 휩쓸었다. 한 시즌에 한국 선수가 이를 동시에 석권한 것은 처음이다.
고진영이 LPGA 투어에서 번 돈은 277만달러로 우리 돈 32억원이 넘는다. 하이트진로배 우승 상금 2억원과 스폰서 인센티브 등을 합하면 훨씬 많다.
“앞만 보고 달려와 독하다는 소리도 있는데 넉넉지 않던 유년 시절 도와준 분들을 생각하는 맘이 작용한 것 같아요. 훈련 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스타일이어서 또다시 나를 혹사시킬지 걱정도 돼요.”
올해의 선수상 기자회견에서 고진영이 한 말이다. 고진영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동계훈련에 들어갔다.
상금액으로 보면 LPGA는 PGA에 비해 턱없이 적어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골프위크가 투어 상금랭킹 50위를 기준으로 남자와 여자 선수를 비교했다. 이에 따르면 남자는 우리 돈으로 약 32억원, 여자는 5억원이었다. 남자가 6배 조금 넘는다.
박인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투어로 불리는 한국여자골프투어(KLPGA) 역대 상금 부문은 어떨까. 12승을 올린 장하나(28)가 41억원으로 누적 상금 1위에 올랐다. 다음으로 고진영(31억원), 이정민(30억원), 이승현(30억원) 순이다. 장하나는 2015년 미국에 진출해 2년간 7개 대회에서 2승을 올려 기량을 인정받았다.
새해에도 많은 골프 이야기가 기대된다. 골프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역시 우즈의 최다승 경신 여부다. 지난해 마스터스와 조조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우즈는 올해 1승만 건지면 83승으로 55년 만에 샘 스니드(1912~2005년)의 기록을 추월한다. 만약 실현된다면 골프계 대사건이다.
부상 중인 ‘메이저 사나이’ 켑카의 세계 랭킹 1위 여부, 마스터스만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매킬로이의 선전도 관심거리다. 한국 선수론 지난해 PGA 신인왕에 오른 임성재의 10위권 진입이 기대된다. 임성재는 PGA투어가 선정한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선수 30인’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구자철(64) 예스코홀딩스 회장이 신임 협회장을 맡았다. 구 회장이 부회장으로 지목한 최경주(50)가 수락하면 도약의 발판을 기대할 수도 있다.
고진영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 남자골프의 붐을 일으킨 최경주를 부회장으로 영입해 제2의 남자골프 시대를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최경주의 선택이 관심을 끈다.
올해는 도쿄올림픽(7월)이 열린다. 6월까지 세계 랭킹 15위 이내에 국가별로 4명까지 출전할 수 있는데 박인비 출전 여부가 관심사다.
현재로는 고진영, 박성현, 김세영, 이정은이 출전할 수 있는데 오는 6월까지 세계 랭킹이 적용된다. 고진영을 제외하곤 포인트 격차가 크지 않아 언제든지 순위가 바뀔 수 있다. 박인비는 랭킹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초부터 대회출전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 투어에서 활동하는 신지애(32)의 활약상도 볼거리다. 신지애는 데뷔 이래 14년간 57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국내 21승, 미국 11승, 일본 22승, 유럽 1승, 아시아 2승이다. 60승 고지에 다가서는 신지애는 박세리의 44승과 구옥희의 33승을 이미 넘어섰다. 신지애는 한국·미국에 이어 일본서도 상금왕을 노릴 정도로 실력파다. 올해 한·미·일 상금왕 등극이 관전 포인트다. 박인비, 신지애와 용띠 동기로 박세리 키즈인 최나연과 김하늘, US 여자오픈 주역 유소연(30)과 전인지(26)의 부활도 눈여겨본다.
브룩스 켑카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나는 요즘 TV에서 우즈를 보면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낀다. 예전의 긴장되고 불안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긴 시련을 딛고 일어선 후 여유마저 묻어난다. 가족의 의미와 사랑을 배운다.
박인비는 ‘골프는 가정에서 나온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남편의 헌신을 포함해 골프에 최적화된 가정환경이 골프 영웅을 탄생시켰다. 고진영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스윙을 구사하는 선수다. 신지애는 영리하다. 예전에 만났을 때 은퇴 후 레스토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노래도 잘하는 신지애의 골프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켑카는 깔끔하고 남성적이다. 그의 시원하고 깔끔한 파워 스윙이 벌써 그립다. 부상에서 빨리 완쾌되길 바란다.
장타자 JB홈스(미국·38)는 거리도 좋지만 올해 좀 빨리 경기를 진행했으면 한다. 온갖 시도를 하는 브라이슨 디셈보(미국·27)의 물리이론이 새해 필드에서는 적중하길 기원한다.
나는 골프의 명승부를 보면 세 가지에 빠져든다. 재미와 감동과 교훈이다. 역으로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야 명승부로 받아들인다.
아마추어는 어떤가. 게임을 즐기고 동반자의 매너와 배려에 감동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게 명승부 아닌가. 올 한 해 우리 모두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골프가 됐으면 좋겠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 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