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발탁으로 삼성 사령탑 오른 훈련지원요원 출신 허삼영 감독
20년 넘게 전력분석원으로 일해… 코치 경험 없는 초짜 감독이지만
"감독이 다 결정하는 시대 끝나… 승률 높이는 데이터 야구하겠다"
허삼영(47) 삼성 신임 감독에게 '팬들이 내년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심기를 살짝 건드리는 말을 건네니 웃음과 함께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20일 경북 경산시 팀 훈련장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을 바라보는 허 감독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는 최근 도미니카 공화국에 다녀왔다고 했다.
손엔 언제나 ‘수첩과 펜’ - 삼성에서 20년 넘게 전력분석원으로 일한 끝에 지휘봉을 잡은 허삼영 신임 감독. 20일 경북 경산 삼성 라이온즈 경산훈련장에서 만난 허 감독은 수첩과 펜을 들고 훈련하는 선수들을 지켜봤다. /김동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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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수도 제가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서요.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야죠. 삼성을 강한 팀으로 만들어 좋은 결과를 내려고 감독직을 수락한 것이지, 공약만 외치다 사라질 생각은 없습니다."
◇3이닝 못 채웠던 선수, 분석은 11만이닝
허 감독은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우완 투수였던 선수 시절엔 빛을 보지 못했다. 1991년 삼성에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선수로 입단했지만, 1군 통산 성적은 4경기 2와 3분의 1이닝 등판(평균자책점 15.43)에 그쳤다. 1995년 조용히 야구를 접었다. 결혼하고 나니 야구 선수로는 도저히 먹고살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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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6년 삼성에 복귀했다. 선수 유니폼이 아닌 훈련지원요원 조끼를 입었다. 동료였던 선수들의 공을 일일이 주워다 주고, 연습 경기 때마다 기록 수기를 맡아 훈련을 도왔다. 그라운드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니 야구를 보는 눈이 생겼다. 그는 1998년부터 20년 넘게 전력분석원으로 일했다. 그가 약 6300경기, 11만3400이닝쯤을 지켜보고 분석하는 사이, 삼성은 7차례 챔피언에 올랐다. 2017년 전력분석팀장, 운영팀장을 거쳐 올해 9월 감독으로 취임했다.
'코치 경험이 없는 초짜 감독이란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허 감독은 "감독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는 끝났다. 능력 있는 코치들과 협업해 선수들에게 최상의 경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감독"이라고 했다. 그는 소통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년 동안 전력 분석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며 자신감을 비쳤다. 허 감독은 요즘 구단 식당에서 선수와 둘이 점심을 먹으며 고충을 듣고 조언을 해준다.
◇"승리 확률 높이는 데이터 야구 하겠다"
허 감독은 당초 구단 측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을 때 고사했다. 특히 아내는 눈물까지 보이며 계속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감독은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가족들은 내가 악플에 시달릴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준학 단장의 설득 끝에 수락했다.
"책임감 때문이었죠. 삼성에서 녹을 먹고 산 지 20년이 넘었어요. '어려운 팀을 살려달라'는 단장님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팀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감을 갖는 배경은 '데이터 야구'다. 삼성은 2018년 2월 KBO리그 최초로 투구 타구 추적 시스템인 '트랙맨'을 공식 도입했다. 이를 도입하고 운용하는 과정에서 허 감독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모든 구단이 데이터 야구를 내세우는 게 유행처럼 번졌는데, 데이터 야구가 승리로 연결되는 것은 참 어렵다"면서 "개별 상황마다 어떻게 대응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지 확률적으로 분석하는 시뮬레이션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숫자를 맹신하지는 않는다. 선수단의 정신력도 강조했다. 그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을 내세웠다. 어떤 일에 미친 듯이 빠져들어 노력해야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허 감독은 무한 경쟁을 예고했다. "유명한 선수라고 해서 무조건 선발로 뽑을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제가 별 볼일 없는 선수였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무명 선수도 미친 듯이 노력해 실력을 쌓는다면 삼성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있습니다."
[경산=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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