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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HI★인터뷰②] '말모이' 윤계상 "연기가 저를 미치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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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풀지 못하는 숙제를 좋아해요. 연기는 저를 미치게 하죠.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너무 재밌거든요."

지난 2004년 영화 '발레교습소'로 스크린에 데뷔한 윤계상은 백상예술대상 남자 신인연기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출발했다. 이후 '6년째 연애중' '비스티 보이즈' '소수의견' 등으로 안정적 연기력을 과시한 그는 2017년 '범죄도시'를 통해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제대로 입증했다. 신흥범죄조직의 악랄한 보스 장첸 역을 맡은 그는 수많은 패러디를 이끌어내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범죄도시'가 끝난 뒤엔 악역이 많이 들어왔다"는 윤계상은 "시나리오의 다양성은 생긴 거 같다"면서 웃었다.

흰 피부에 선한 눈매를 지닌 윤계상은 주로 선한 역할만 제의 받았다. 하지만 '범죄도시'는 그의 연기 인생에도 큰 전환점이 됐다. 캐릭터를 통해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이 생긴 것. 그만큼 그의 연기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오는 9일 개봉하는 '말모이'에서는 전혀 다른 결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범죄도시'의 장첸처럼 관객에게 단숨에 깊게 각인될 수 있는 역할은 아니다. 대사도 많지 않고 훨씬 더 정적이고 묵직하다. 너무 큰 울림을 지닌 인물이라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다.

"류정환이 하는 대사가 다 버거웠어요.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이런 얘기를 하는데, 얼마나 뱉기 힘든 말인지 연기자들은 알 거에요. 뉘앙스를 조절하고, 앞뒤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고 싶어하죠. 민들레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북한방송 같고 딱딱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감독님이 가벼워질 거 같다고 원래대로 가길 원하셨죠."

윤계상은 입에 붙지 않는 대사 때문에 고생했지만, '말모이'를 연출한 엄유나 감독은 '정면승부'를 요구했다. 촬영 당시엔 죽을 맛이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윤계상은 나중에 감독의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그게 오히려 정환을 만들어준 거 같아요. 정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그때 그 시절을 많이 보여주기도 하고 그 시절에 겪었던 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하니까요. 사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였으니까 모든 말과 문화나 그런 것들이 정책적으로 끝까지 몰아붙일 때였는데 버텨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정을 섞어서 하기엔 무리가 있었죠. 다행이라 생각해요."

그는 NG를 많이 냈던 기억도 떠올렸다.

"정환이 진심을 전하는 신에서 스무 테이크를 넘게 갔던 기억이 나요. 조금 (대사의) 템포를 늦추면 4분이 넘어가고 너무 빨리 하면 감정이 없어져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대사 NG는 별로 없었는데 감정 NG가 진짜 많았어요. '정환 같지 않은데요'란 얘길 들을 때, 그게 뭔지를 모르고 할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하지만 윤계상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준 감독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했다.

"시사회 때까지 제 연기가 어떻게 나왔는지 몰랐어요. 배우로서 스무 테이크를 간다는 건 대단한 기회를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후회는 하나도 안 해요. 그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요. 에너지가 바닥을 칠 때까지 해보고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때까지 주신 기회가 너무 좋은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촬영이 끝나고 나니 너무 그립더라고요."

그는 고단했던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이내 밝은 얼굴로 다시 돌아와 활기차게 말했다.

"그런 기운을 좋아해요. 풀지 못하는 숙제를 좋아하죠. 도전보다는 저를 약간 지독하게 몰아붙이는 걸 좋아해요. 오락을 해도 다 끝내야 하고요. 한 번 잡으면 집중해서 할 때가 가장 행복한 거 같아요. 연기가 얼마나 재밌겠어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계속 다른 사람인데, 미치는 거죠. 하하."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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