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축구협회 지상 과제 완벽 해결
히딩크 조력자 베트남서 화려하게 부활
동남아시아 6억5천만 인구는 유럽과 남미 못지않게 축구를 좋아한다. 동남아 많은 나라 축구 팬들은 주말 밤이면 영국식 ‘펍’(호프집 같은 술집)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한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 실력은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에서 대부분 100위 밖이다. 2년마다 열리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 대항전인 스즈키컵은 그래서 열기가 뜨겁다.
올해로 12회째인 스즈키컵에서 타이가 5번, 싱가포르가 4번 우승했지만 베트남은 말레이시아와 함께 딱 1번밖에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베트남축구협회는 지난해 10월, 박항서(59) 감독을 영입하면서 스즈키컵 우승을 지상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박 감독은 15일 베트남에 우승컵을 안기며 미션을 깔끔하게 해결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15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1-0으로 이겨 1, 2차전 합계 3-2 승리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살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 축구 사상 첫 결승 진출과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쌓았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한국 축구 팬들은 베트남의 주산물인 쌀과 거스 히딩크 감독을 합쳐 ‘쌀딩크’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이어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베트남의 아시안게임 출전 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의 진정한 시험 무대는 이번 스즈키컵이었다. 2008년 우승 이후 10년 가까이 정상 복귀 꿈이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에 베트남 팬들은 스즈키컵 우승을 열망했다.
박 감독은 마술을 부리는 듯한 뛰어난 용병술과 지도력으로 꿈을 현실로 바꿔놨다.
조별리그 무패, 무실점 행진을 지휘한 박 감독은 4강 상대였던 필리핀을 따돌리고 결승행 티켓을 따냈고, 말레이시아와 결승에서도 1차전 원정 2-2 무승부를 지휘했다. 결승 2차전을 대비해 교체 멤버였던 하득진과 응우옌후이훙을 선발로 기용해 주전들의 체력을 아끼면서 얻어낸 결과였다. 마침내 안방 2차전을 1-0 승리로 장식하면서 우승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박 감독은 한국 무대에서는 사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지도자였다.
경남 산청 출신인 박 감독은 경신고와 한양대를 거쳐 1981년 제일은행에서 실업무대에 데뷔했다. 그는 1981년 일본과 친선경기 때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고 1985년 럭키 금성에서 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지만, 선수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1988년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2000년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선임돼 거스 히딩크 감독의 조력자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에 앞장섰다.
그는 월드컵 직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의 감독으로 활동했다. 히딩크식 훈련법을 대표팀에 이식했지만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이란에 패해 동메달에 그치는 바람에 석 달 만에 경질됐다.
이어 2005년 경남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된 것을 시작으로 전남 드래곤즈와 상주 상무를 차례로 거치며 K리그 구단을 이끌었다.
경남을 리그 4위로 올려놓고, 전남의 FA컵 준우승을 지휘하기도 했지만 구단과 갈등 속에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랬던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축구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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