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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의 축구환상곡] 라이벌전에 ‘혐오’는 필요 없다 '바스크 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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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빌바오(스페인), 한준 기자] 스페인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이벌 축구 경기를 보유했다. 역사적으로, 규모 면에서, 축구 경기력 측면 모두 최고라고 입을 모으는 엘클라시코(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경기)다. 모든 리그에는 정치와 이념, 그리고 우승을 다투는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를 바탕으로 라이벌 팀이 있다. 상당수 라이벌전은 한 지역을 연고로 하는 팀이, 근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같은 지역 안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부딪히면서 ‘앙숙’이 되어 왔다.

종목을 불문하고 한일전이 열리면 관심이 높아지는 한국의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라이벌 의식은 경기장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고, 경기에 대한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높인다. 경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과열된 열기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선수와 선수 간, 팬과 팬 간의 폭력이 발생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과정에서 혐오가 발생한다. 뿌리 깊은 혐오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스포츠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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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와 열정의 공존, 바스크 더비는 오직 ‘축구로만’ 싸웠다

라이벌 팀과 선수, 팬을 혐오하는 문구와 플래카드, 구호 등이 문화로 인정되기도 하지만, 공격성과 불쾌감의 선을 넘어선 안 된다. 이 선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전 세계 축구계의 수많은 더비 경기 중 오직 바스크 더비 만이 성공하고 있다. 바스크 지방 비스카야 주의 주도 빌바오를 연고로 하는 아틀레틱클럽과 기푸스코아 주의 주도 산세바스티안을 연고로 하는 레알소시에다드의 ‘바스크 더비’는 두 팀 팬이 관중석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경기를 보면서도 폭력과 혐오가 발생하지 않는 매우 특별한 사례다.

물론, 프랑코 독재정권 하에 이뤄진 바스크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탄압과 그로 인해 스페인의 수도를 대표하는 레알마드리드에 대한 적대감이 훨씬 크기 때문에 바스크 지방 팀들은 서로 라이벌이기도 하지만 동지이기도 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사용되는 카탈루냐어와 달리 스페인어와 유사성이 적은 언어를 가지고 있고, 산맥을 끼고 있어 물리적으로 지리적으로 스페인 타 지방과 접점이 적었던 바스크 지방의 축구 팀들은 출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성장해 서로 동질감이 크기도 하다.

배경이 어찌됐든 같은 연고지에서 승리와 우승이라는 제한된 성과를 두고 100년 가까이 경쟁하면서 혐오 문화가 생기지 않은 것은 분명 특별한 일이다. 지역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도 유럽 축구는 폭력 사태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원정 팀 팬들의 좌석을 홈 관중들과 철저히 분리하고 있는데, 바스크더비가 열린 현지 시간 5일 산마메스 경기장에는 양 팀의 유니폼을 나눠 입은 가족과 친구들이 다정하게 무리 지어 경기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물론 산마메스를 안방으로 삼는 홈팀 아틀레틱클럽 팬들의 비율이 훨씬 높았지만, 경기장 구역마다 붉은색과 하얀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아틀레틱클럽 팬들 사이에 푸른색과 하얀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레알소시에다드 팬이 끼어 있었다.

고액의 티켓값을 지불해야 하는 VIP 지역에는 50대50에 가까울 정도로 레알소시에다드 유니폼을 입은 팬의 비중이 높아졌다. 레알소시에다드 원정 서포터들은 2층 상단 코너 부근에 따로 모여 앉았지만, 서포터석이 아닌 일반 좌석에 앉은 레알소시에다드 팬 규모가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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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벌 경기가 뜨겁기 위해 혐오는 필요 없다

경기에 대한 기대감과 전망을 웃으며 나누던 양 팀 팬들은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동시에 상대 팀에 야유를 보내고, 격한 몸싸움이나 판정 시비가 발생하는 상황에 욕설을 내뱉기도 했지만, 거기에 폭력과 혐오는 없었다. 바스크 더비에 존재하는 ‘라이벌 의식’은 오직 스포츠에 관한 것뿐이며, 그로 인해 서로 교류가 자연스럽고 선의의 경쟁이 되고 있다는 두 팀 관계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혹시 모를 폭력사태에 대비해 경기장 안팎에 경찰이 배치됐지만 경기 시자 전 광장과 음식점, 경기 종료 후 술집에 양 팀 팬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라리가를 즐겼다. 경찰이 두 팀 팬이 물리적으로 마주치지 못하게 할 필요도, 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기엔 레알소시에다드 유니폼을 입고 산마메스의 일반 티켓을 구매한 팬이 너무 많았다.

바스크 더비를 즐긴 팬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현지 시간으로 금요일 밤 9시에 킥오프한 경기는 밤 11시께 끝났는데, 미취학 아동을 데리고 경기장에 온 가족 단위 팬들이 안전과 교육에 대한 우려를 느낄 필요 없이 귀가했다.

산마메스 경기장은 네르비온 강을 따라 빌바오 시를 관통하는 중심가에 있다. 걸어서 구겐하임미술관과 이베드롤라 타워로 이동할 수 있는 랜드마크이자, 구심점이다. 새 경기장을 기존 경기장 바로 옆에 지은 아틀레틱클럽은 “팬들은 걸어서 경기장에 올 수 있길 바랐다. 우리는 팬들이 오랫동안 즐겨온 주변 음식점과 시설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했다.

바스크 더비에 치안 문제는 전혀 없었다. 바스크 지방 전체의 축제와 같은 시간이었다. 심지어 경기장 앞 노점상에서는 바스크 지방의 모든 축구 팀, 라리가의 다른 축구 팀 머플러도 살 수 있었다. 적대감을 갖는 레알마드리드 관련 상품만 없었다.

VAR이 몇 차례 가동되어 골의 운명이 바뀌기도 했고, 선수들 사이 거친 파울과 충돌이 발생할 때 관중석 분위기도 요동쳤지만, 수적 열세인 레알소시에다드 팬을 향한 적대 행위는 경기 도중은 물론 경기 후에도 없었다. 홈팀 아틀레틱클럽이 1-3으로 완패했지만 레알소시에다드 팬들이 음식점과 술집에서 웃으며 승리를 즐기고, 경기 감상을 이야기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경쟁은 오직 축구로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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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배한 홈팀, 원정팬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경기 도중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두 팀 간 라이벌 의식이 아닌 아틀레틱클럽 서포터 내부의 갈등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북쪽 골대 뒤 한 켠에 자리 잡은 한 무리의 아틀레틱클럽 팬들은 경기 내내 아틀레틱클럽 회장이 있는 발코니를 향해 구호를 외치고 바스크어로 쓴 플래카드를 들고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아틀레틱클럽 팬들은 “지금 회장의 정책에 반대하는 일부 팬들일 뿐이다. 아주 소소라서 사실 대다수 팬들은 이를 비웃는다. 작은 이들이 여기 와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대다수 팬들은 저렇지 않다”고 했다. 충돌이 벌어지자 전 관중이 이들을 향해 “나가라!(fuera!)”고 외쳤고, 곧 진압됐다.

아틀레틱클럽 팬 사이의 내부 갈등마저도 정치와는 별개로 축구적인 이유라는 것이 현장에서 만난 아틀레틱클럽 팬들의 설명이었다. 팬들이 그라운드와 더 가깝게 경기를 보기 위해 설계한 최신식 경기장에서 속도감과 열정이 충만한 경기가 펼쳐졌다. 4만 6천 884명이 입장한 산마메스는 라이벌 경기, 더비 경기가 뜨겁기 위해 혐오는 불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증명했다.

일각에서는 서로 우호적인 관계의 더비가 뜨거울 수 있을지 의심하기도 한다. 바스크 더비의 90분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봤다면 의심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경기를 치렀고, 원정 팀이 이겼지만, 두 팀 선수들은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껴안았다. 심지어 양 팀을 오간 선수가 있음에도 그들에 대한 혐오는 없었다. 축구적인 작은 야유만 있었다.

축구는 전쟁이 되기도 하고 축제가 되기도 한다. 경기는 전쟁이지만 관중석은 축제여야 한다. 축구가 새로운 갈등과 대립의 배경이 되는 것은, 프로 스포츠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바스크 더비는 더비전의 좋은 예다. 전 세계가 라리가를 이야기할 때 엘클라시코를 첫 손에 꼽지만, 바스크 더비는 라리가가 자랑하고 싶은 매우 특별한 더비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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