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잘 해야 본전에 악플도 무서워
UL인터내셔널 크라운 불참 도미노
최고 선수가 안 나가도 되는 대회라면
팬이 안 봐도 되는 별 볼일 없는 대회
2014년 초대 UL인터내셔널 크라운에 참가한 박인비(왼쪽)와 한국 선수들. [중앙포토]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주인공이 되어야 할 한국 선수들의 불참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를 시작으로 그 자리를 메울 차 순위 선수인 최혜진과 그 다음 순위인 고진영이 불참을 통보했다. 전인지도 참가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그럴까.
인터내셔널 크라운은 서류상으론 한국이 압승해야 할 대회다. 한국은 참가 선수 대부분이 세계랭킹 10위 이내 선수들로 구성된다. 다른 나라에선 랭킹 100위가 넘는 선수도 출전한다. 그러나 결과는 세계랭킹 순서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은 2014년 초대 대회 3위, 2016년 2위에 그쳤다.
골프는 컨디션 변동 폭이 크고 흐름을 많이 탄다. 2014년 첫 대회에선 스페인 선수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함께 펄펄 날아 우승했다. 두 번째 대회에선 여러 팀의 혼전 속 미국이 우승했다.
한국 선수들은 라이더컵 스타일의 팀 매치 플레이에 익숙하지 않다. 이번 대회에도 한국과 함께 여자골프 양강인 미국을 비롯, 주타누간 자매 등이 활약하는 태국, 잉글랜드 등 복병도 많다.
결과적으로 크라운은 한국으로선 꼭 이겨야 하지만 이긴다는 보장은 없고 지면 매우 큰 비난을 받아야 할 대회다. 올해 대회는 홈에서 열려 부담이 더 크다. 게다가 선수들을 괴롭히는 악플은 더 무서워지고 있다. 한국 여자 골프에서 댓글은 좋아하는 선수 응원 보다는 라이벌 선수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활성화되는 추세다.
성적이 부진하면 외모, 출신지, 가족 연좌를 포함해 신랄한 인신공격을 한다. 일부 선수들은 ‘개인경기 결과를 가지고도 욕을 먹는데 민감한 국가대항전에서 성적이 나쁠 경우 훨씬 더 큰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모험과 도전을 즐겨야 할 운동선수들이 악플에 흔들려 대회 참가를 꺼리는 것은 문제다. 그래도 악플은 현실이며 대다수 선수, 특히 여성 선수들은 신경을 많이 쓴다. 따라서 UL인터내셔널 크라운은 일부 한국 선수들에게 일종의 독이 든 성배다.
박인비 측은 다른 선수들에게 양보한다고 했다. 양보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갖고 싶은 것을 줄 때 쓰는 단어다. 다들 나가고 싶어 하는 올림픽 출전권이라면 양보라고 할 수 있지만 크라운 출전권은 양보 보다는 떠넘기는 것에 가깝다. 박인비는 별 생각없이 양보했을 수도 있지만 원래 내가 할 것이 아닌데 갑자기 넘겨받았다면 난처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선수가 라이더컵 출전권이 있는데 불참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나는 한 번 뛰어봤으니 후배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 선수는 없다. 월드컵 축구도 마찬가지다. 스타선수가 꼭 나가지 않아도 되는 대회라면 팬들로선 꼭 보지 않아도 되는 대회다. 랭킹 1위가 나가지 않는 대회라면 져도 상관 없는 대회다. 박인비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은 별 볼일 없는 대회로 생각할 것이다.
박인비.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인비측은 “올 시즌부터 참가 대회 수를 10~15개 정도로 줄여 메이저대회나 스폰서 대회 등에만 참가하기로 했다. 인터내셔널 크라운은 올림픽과 더불어 선수로서 좋은 경험이었고 이를 다른 선수들도 느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후배에게 좋은 경험을 할 기회를 주겠다는 박인비 측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만약 대회장이 다른 곳이었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최고 스타가 왜 홈에서 하는 국가대항전에서 양보를 하나. 후배에 대한 선의의 양보 여부를 떠나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LPGA 투어와 KLPGA 투어의 협조 부족도 문제다. UL인터내셔널 크라운을 주최하는 LPGA 투어와 KLPGA 투어는 대회 한국 개최와 관련, 일정 조절에 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크라운 대회 기간에 KLPGA 굵직한 대회인 하이트컵이 열린다.
최혜진과 고진영, 전인지는 크라운에 못나갈 것으로 생각해 하이트컵에 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만약 기간 중 한국에서 대회가 없었다면 당연히 크라운에 참가했을 것이다. 일정 조정에 실패한 두 투어가 모두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