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민 포용·통합 메르켈파 프랑스·스페인, 같은 입장… 獨내무, 난민정책 불만 사의 표명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난민(難民)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최근 유럽 정세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의 대결이라고 요약했다. 난민을 포용하면서 하나 된 유럽이라는 EU(유럽 연합)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메르켈과, 난민에 대한 불만을 발판 삼아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입지를 굳히려는 살비니가 난민 문제로 대립하는 양쪽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국가별로 보면 독일·프랑스·스페인 등 '메르켈파'와 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등 '살비니파'로 쪼개진 형국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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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은 유럽의 분열을 막으려 몸을 던지고 있다. 지난주 EU정상회의에서 9시간에 걸친 마라톤회의 끝에 합동난민심사센터를 만들고, 회원국 간 난민 이동을 제한하자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난민의 추가 유입 또는 이동을 줄이는 방향이지만 포용적인 태도를 버리지는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메르켈식 온정적인 난민 정책이 계속 작동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메르켈의 힘은 꺾이고 있다. 2005년 취임 이후 13년간 유럽의 '여제(女帝)'로서 남유럽 재정 위기를 비롯한 숱한 현안을 이끌어온 리더십이 예전 같지 않다. 그는 독일 내부에서조차 공격받고 있다. 연정(聯政) 파트너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난민 정책에 불만을 품고 1일(현지 시각) 기사당 대표와 장관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제호퍼를 제압하기 위해 그의 장관직 사퇴를 받아들이면 기사당은 연정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1949년부터 이어온 기민당과 기사당의 공조가 69년 만에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연립정부는 과반이 안 되는 소수 정부가 된다. 뉴욕타임스는 "기사당과의 내부 갈등이 어떤 결론이 나오든 간에 독일인들은 메르켈이 얼마나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며 "유럽식 자유주의를 지키는 상징으로서 메르켈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고 했다.
메르켈식 유럽 통합파가 주춤한 틈새를 살비니가 대변하는 '반(反)난민' 극우 세력이 파고들고 있다. 살비니는 1일 자신이 대표로 있는 동맹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앞으로 30년간 이탈리아를 통치하겠다"고 큰소리쳤다. 16석짜리 군소 정당이던 동맹당은 올해 3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125석을 차지해 원내 2당으로 뛰어오른 뒤 연정에 참여해 집권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살비니는 유럽 전체의 반난민 세력 규합을 시도한다. 그는 "철학을 함께하는 정당들이 모여 우리의 국경과 자녀들을 지키는 범(汎)유럽 연합체를 구성하자"고 했다. 내년 5월 EU의회 선거를 앞두고 '반난민 연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대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 살비니와 친분이 있는 각국 극우 인사가 힘을 모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거론된다.
이런 움직임은 EU의 통합을 허물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살비니는 EU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유럽을 지탱하는 양대 기둥에 적대적이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팬이라고 자처하고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슈피겔은 "유럽에서 비중이 큰 이탈리아 없이 EU와 유로화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무기 삼아 살비니가 기존 유럽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당분간 유럽에서는 '메르켈파'와 '살비니파'의 대결이 이어질 전망이다. 메르켈에게는 EU 통합을 강조하며 난민을 분산 수용하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페드로 산체스 신임 스페인 총리가 우군이다. 살비니와 뜻을 함께하는 세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오스트리아·체코·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의 반난민 성향 총리들이 메르켈식 포용적인 난민 정책에 비판적이다.
메르켈은 1일 취재진에게 "난민 문제로 유럽이 쪼개질 수 있다"며 "유럽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난민을 안 받기 위해 각국이 국경 통제를 강화하다 보면 EU 내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는 솅겐조약이 무력화되며 결국 EU의 통합 정신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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