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4 (월)

난타, 2만개 칼로 126만개 채소 썰었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원년멤버’ 류승용·김원해 난타의 추억



한겨레

20주년을 맞은 공연 <난타>. 피엠시 프로덕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 당 떨어져.” 김원해가 숨을 몰아쉰다. “헉헉헉”. 옆에 있던 류승룡은 한술 더 뜬다. 아니 5분도 채 안 했는데? 두 사람도 세월이 야속하다는 듯 그런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 김원해와 류승룡이 약 10년 만에 북을 두드렸다. 13일 서울 충정로 난타전용극장에서 열린 <난타> 20돌 행사에서다. <난타>는 사물놀이 리듬에 맞춰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표현하는 비언어극으로, 1997년 10월10일 시작한 이래 20년째 장기 공연 중이다.

두 사람은 초창기부터 참여해 성공을 이끈 ‘난타 시조’들이다. 김원해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 공연했고, 류승룡은 1998년부터 5년간은 배우로, 이후 3년은 연출로 참여했다. “청춘을 바친 <난타>가 머리가 하얘지고 배가 나올 때까지 유지되고 있는 게 뿌듯하다”는 두 사람이 오랜만에 <난타>를 추억했다.

김원해는 <난타>를 만든 송승환의 제안으로 합류했다. “한마디로 낙하산이었죠. 하하.” 류승룡은 1998년 1월 오디션을 봐 합격했다. “여유 멤버로 뽑혔다가 부단히 노력해 합류했습니다.(으쓱~)” 두 사람은 칼로 도마를 신명나게 두드리는 등 보고 나면 속이 뻥 뚫리는 박진감 넘치는 공연에 매료되어 <난타>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비언어극이 생소했던 당시엔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스타도 없고, 말도 안 하는 공연이 뭐가 재미있겠느냐는 반응이 많았기 때문이다. 함께 자리한 송승환 예술감독도 “1회 공연을 앞두고 표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천리안, 유니텔 등 피시(PC) 통신 연극 동아리 멤버들을 초대했는데, 그들이 공연을 본 뒤 입소문을 내면서 매진 행진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말 대신 몸짓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설정과 시작부터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펼쳐지는 신나는 공연에 국내외가 매료됐다. 초연 이후 57개 나라에서 공연했고, 서울 명동과 홍대, 충정로, 제주는 물론 타이 방콕에 전용극장을 운영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한겨레

류승룡(왼쪽 두번째)과 김원해(오른쪽)가 <난타>에 출연했던 모습. 피엠시 프로덕션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성공 뒤에는 “20년 전 배우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었다”(류)고 할 정도로 선배들의 이를 악문 노력이 있었다. “초기엔 시행착오가 많았다. 매일 오전부터 모여 새로운 시도를 해보다가 저녁에 무대에 올리고, 다른 날은 또다른 버전을 해보는 식이 반복됐다.”(김) 류승룡은 “수타면 뽑는 걸 몇 개월 동안 연습했는데 무대에서 딱 한 번 하고는 조명과 안 맞아서 버리기도 했고, 페트병을 활용한 장면을 만들려고 매일 콜라를 마셔 늘 검은 변을 보기도 했다”며 “연습이 너무 힘들어 우리가 실험용 쥐냐며 따지기도 했다”고 한다. “사태가 커져서 항명한 적도 있지. 하하.”(김)

20년간 사용한 채소만 125만9685개, 도마 2390개, 칼 2만1908개. 별다른 장치 없이 주방 도구들을 활용하다 보니 자칫 가벼워 보일까봐 완성도를 높일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박자감이 중요해 배우들 모두 메트로놈을 끼고 살았고, 한 시간 반이 넘는 공연 내내 에너지를 유지하려고 일부는 술을 마시지 않는 등 자기관리도 철저히 했다. 그래서 <난타> 출신 배우들은 집중력, 체력 등 “배우 인생에 중요한 것들을 배웠다”(김)고 입을 모은다. 김원해는 “체력적으로 힘들다 보니 위 트러블이 생긴 류승룡이 공연하다가 마치 연기인 듯 북에 구토하고, 나는 장 트러블 때문에 흰 바지가 물들기도 했다”며 웃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10년 전용관 매출액 200억원 등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최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의 영향으로 중국 관객이 급감하면서 심각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송승환 예술감독은 “충정로 전용관을 12월 닫는다”고 착잡해했다. <난타>에 청춘을 바친 두 사람 역시 만감이 교차하기는 마찬가지다. “<난타>가 굳건히 잘 견뎌 오랫동안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류) 송 감독은 “작품을 업그레이드시키고, 해외 시장을 더 개척해 국내의 어려움을 이겨나가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