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4 (월)

[MK포커스] KBO 찬란했던 별이 지는 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닷컴 MK스포츠 한이정 기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프로야구도 예외가 아니다. 프로 데뷔와 현역 은퇴는 하나의 긴 띠다. 다만 그 끝이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새드인생일까.

프로야구선수는 어떻게 정리할까. 작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마무리를 하거나 정든 팀을 떠나면서까지 선수생활을 연명하기도 한다. 그 중 스타플레이어를 꼽아 그들의 각기 달랐던 은퇴 유형을 살펴봤다.

매일경제

이승엽(41)이 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국민타자"의 은퇴를 두고 은퇴투어까지 논의될 정도로 이승엽의 은퇴에 관심이 뜨겁다. 사진=MK스포츠 DB


▲ 박수칠 때 떠난다…아름다운 퇴장

최정상급 간판선수가 퇴보하기 전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경우다.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41)과 NC다이노스의 이호준(41)이 대표적인 예다. 아직 현역인 이승엽과 이호준은 일찌감치 은퇴시기를 스스로 못 박았다.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예고했다.

‘국민타자’, ‘라이온 킹’ 등 별명을 가진 선수 이승엽을 볼 날이 많지 않다. FA 2년 계약이 만료되는 올해, 시즌을 마친 후 유니폼을 벗는다.

이승엽은 한국야구사에 남을 선수다. MVP 5회, 홈런왕 5회, 타점왕 4회, 골든글러브 10회 수상했다. 야구팬에게 이승엽은 영원한 홈런왕이다.

2016년 불혹의 나이였음에도 이승엽은 건재했다. 14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3 164안타 27홈런 118타점 91득점을 기록했다. 홈런 공동 8위-타점 6위-안타 16위-득점 22위-장타율 19위-OPS 19위.

이승엽은 여전히 KBO리그에서 후배와 견줘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박수칠 때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승엽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아쉬운 마음에 KBO 최초 은퇴투어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인생은 누구처럼? 그 주인공인 이호준도 언제까지 잡을 것 같던 배트를 놓는다. 지난해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이호준은 NC와 1년 계약이 끝나면 은퇴 수순을 밟는다.

NC가 신생팀의 핸디캡을 딛고 빠르게 강팀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이호준의 공이 크다. 실력도 출중했다. NC의 히트상품인 ‘나이테(나성범-이호준-테임즈)’의 한 축이었다. 이호준은 2015년 올스타 팬 투표에서 이승엽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지금도 팬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호준은 지난해 119경기 타율 0.298 119안타 21홈런 87타점을 기록했다. 꾸준했던 이호준이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보인다면, 이제 ‘은퇴도 이호준처럼’이라는 말이 생길지 모른다.

매일경제

LG트윈스에서 20년 넘도록 생활했던 "적토마" 이병규(43)는 2016년 은퇴했다. 2016년 이병규가 뛴 1군 경기는 10월 8일에 열린 두산전 단 하나였다. 이날 이병규는 니퍼트를 상대로 안타를 쳐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사진=MK스포츠 DB


▲ 박수칠 때 떠날 걸…쓸쓸한 퇴장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씁쓸하게 종지부를 찍기도 한다. 팬과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퇴장하는 경우도 있다. LG 트윈스의 이병규(43), KIA 타이거즈의 이종범(47), 두산 베어스의 김동주(41)가 대표적이다.

1997년 LG에 입단한 이병규는 해외진출로 3년간 잠시 떠나기도 했지만 KBO리그에서 한 팀의 유니폼만 입었다.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선수다.

KBO리그 통산 1741경기 타율 0.311 2043안타를 기록한 이병규는 지난해 11월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2013년 시즌 후 FA 3년 계약을 맺었으나 경기수는 점점 줄었다. 2014년은 62경기, 2015년 54경기, 지난해는 2군에 머물다 1경기만 뛰었다. 그것도 4위가 확정된 후 치른 정규시즌 최종전이었다.

이병규는 현역 연장 의지가 있었지만 LG와 생각이 달랐다. 다른 팀에서 뛰고 싶지 않았던 그는 끝내 은퇴라는 ‘퇴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후(19·넥센)의 아버지’라는 꼬리표가 서서히 생기고 있는 이종범도 현역 마지막 인사는 그가 계획한 그림과 달랐다.

이종범은 2012년 시즌을 준비하던 중 은퇴를 권고 받았다. 당시 나이는 42세. 2008년 110경기 타율 0.284, 2009년 123경기 타율 0.273으로 기여했지만 이후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었다. 성적은 점점 좋지 않았다.

이종범은 끝내 유니폼을 벗었다. 이종범의 은퇴식이 열리는 날, KIA의 후배들은 그를 상징하는 7번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그 7번은 영구결번이 됐다.

매일경제

수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두산베어스 김동주(41)는 2014년 은퇴했다. 은퇴 전 2013년에 김동주가 뛴 경기 수는 28경기. 팬들은 그런 김동주를 데려오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사진=MK스포츠 DB


김동주는 2014년 은퇴하는 날까지 끝내 야구팬 앞에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1998년 프로에 입문한 김동주는 17년 동안 두산에서만 뛰었다. 그의 별명은 ‘두목곰’이었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 중 1명이었다. 출중한 기량으로 태극마크도 달아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러나 끝이 안 좋았다. 김동주는 2013년 28경기 출전에 그쳤다. 김동주가 경기에 자주 뛰지 않자 많은 팬은 ‘두목곰을 데려오라’고 플래카드를 걸고 항의했다.

그러나 야구장에서 김동주와 팬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은퇴 후 지도자 제의를 한 구단과 선수생활을 이어가겠다는 김동주는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kt 위즈 이적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결국 쓸쓸하게 선수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매일경제

2012년 은퇴한 박찬호(44)는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사진=MK스포츠 DB


▲ 은퇴의 끝, 또 다른 길이 열린다

선수의 은퇴 후 행보는 선택지가 많다. 대부분은 지도자의 길을 선택한다. 두산 베어스에서 ‘고제트’로 불리며 뛰어난 수비를 펼쳤던 고영민(33)은 끝내 재기하지 못했다. 2016년 선수생활을 끝낸 그는 2017년부터 kt의 2군 코치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NC의 포수 용덕한(36) 역시 NC와 FA 계약 대신 코치 계약을 맺었다.

최근에는 방송 해설위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병규는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를 자처해 예능방송에도 출연하더니 박찬호(44)와 함께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중계사인 JTBC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도자, 해설위원 외 다른 길도 있다. 5개 팀에서 뛰다가 2015년을 끝으로 물러난 임재철은 스포츠매니지먼트사에 취직해 또 다른 인생을 설계 중이다.

[yijung@maekyung.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