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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50년, 이상과 현실의 투쟁] 250년 전 척박한 땅에서 키운 개척 DNA… ‘수퍼파워’ 미국 일궜다

조선일보 송동훈 문명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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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50년, 이상과 현실의 투쟁] 250년 전 척박한 땅에서 키운 개척 DNA… ‘수퍼파워’ 미국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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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영국 식민지 13개 건설되다

종교 박해 피해 英 떠난 청교도들
”신성한 ‘언덕 위의 도시’ 짓겠다”
버지니아부터 조지아까지 확장돼
담배 재배 성공 후 노예 노동 시작
미국은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았다. 1776년 7월 4일, 영국인들이 신대륙에 세운 13개 식민지는 모국(母國)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당시 인구는 250만명에 불과했다. 영토는 88만였다. 250년 만에 미국의 영토는 약 11배 확대됐고, 인구는 약 3억4000만명으로 135배 폭증했다. 세계 제1 경제력을 갖춘 건 100년 전이다. 파편처럼 분열된 식민지가 이런 기적을 쟁취할 것이라 상상치 못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누가 그것을 해냈을까? 미국은 동시에 현재의 위상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과 세계가 중대한 변곡점에 선 지금이야말로 그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편집자 주

존 윈스롭(1588~1649)이 이끄는 이민자들이 현재의 매사추세츠 세일럼(Salem)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건 1630년 6월 중순이었다. 기함 아라벨라(Arabella)호를 비롯한 배 11척에 나눠 탄 1000명 가까운 이민자들은 그해 4월 초 영국을 떠나 광활하고 사나운 대서양을 2개월 넘게 항해한 끝에 새로운 세계에 닿았다. 그들 모두 청교도 신자였다. 이 행렬의 지도자는 변호사 출신의 도덕적이고 신앙심 깊은 존 윈스롭. 그는 매사추세츠 베이 컴퍼니(Massachusetts Bay Company)에서 대규모 이민 그룹의 책임자로 선택됐다.

필그림 홀 박물관화가 제니 오거스타 브라운스컴이 1914년에 그린 ‘플리머스에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 1621년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식민지에서 열린 첫 번째 추수감사절 장면을 묘사했다.

필그림 홀 박물관화가 제니 오거스타 브라운스컴이 1914년에 그린 ‘플리머스에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 1621년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식민지에서 열린 첫 번째 추수감사절 장면을 묘사했다.


◇신대륙 향한 청교도 이민 행렬

당시 영국 상황은 정치·종교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제임스 1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찰스 1세(재위 1625~1649년)는 아버지보다 더 엄격하게 청교도를 박해했다. 일군의 청교도 상인들은 신앙을 지키며 신대륙에 보금자리를 개척하기 위해 매사추세츠 베이 컴퍼니를 조직했고, 왕으로부터 뉴잉글랜드의 방대한 땅과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는 특허장을 사들였다. 국왕은 늘 돈이 필요한 법이고, 실용적인 영국인들은 종교가 다른 시민들이 차라리 신대륙으로 떠나는 편이 국내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윈스롭은 항해 도중 이민자들에게 “부패한 구세계가 보고 배울 만한 신성한 사회, 즉 예수께서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전한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를 신대륙에 짓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는 신의 도시가 될 겁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청교도들은 보스턴을 중심으로 정착촌을 곳곳에 건설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을 디딘 뉴잉글랜드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 아니었다. 춥고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주어진 고난을 신이 내린 시련으로 받아들였다. 성실하고 검소하며 경건하게 역경을 이겨냈고, 그 속에서 일궈낸 물질적 성공은 신의 은총이라 여기며 명예롭게 생각했다. 매사추세츠는 그렇게 번영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강인해져 갔다.

그래픽=이진영

그래픽=이진영


◇갈등 속에 확장된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종교는 용납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청교도가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고, 이곳에선 거꾸로 청교도만 종교의 자유를 향유하는 모순이 펼쳐졌다. 윈스롭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죄를 짓기 쉬운 인간의 천성을 통제하는 것을 정부의 기본 책무라 여겼다. 당연히 매사추세츠의 청교도 식민지는 정치·사회와 종교가 하나 된 신정 체제(Theocracy)를 구축했다.

1631년 매사추세츠에 도착한 젊은 목사 로저 윌리엄스(1603~1683)는 이런 청교도 지도층의 과두 체제에 강력히 반대하며 교회와 정부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했다. 윈스롭은 그를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추방당하기 전에 달아난 윌리엄스는 1636년 오늘날의 프로비던스(Providence)에 새 정착촌을 건설했다. 로드아일랜드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윌리엄스는 영국 의회로부터 특허장을 받아 그곳에 교회와는 완전히 독립된 정부를 수립했고, 매사추세츠와 정반대로 유대교 등 모든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코네티컷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매사추세츠의 엄격한 신정 체제에 반기를 든 목사 토머스 후커(1586~1647)에 의해 건설됐다. 후커는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신도들을 이끌고 오늘날의 하트퍼드에 정착했다. 그렇게 북미 대륙의 북쪽에서는 매사추세츠를 중심으로 ‘새로운 영국’, 뉴잉글랜드가 확장되고 있었다.

◇버지니아의 탄생과 남부의 형성

영국인이 신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은 1607년 남부에 자리한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Jamestown)이었다. 제임스 1세에게 특허장을 받은 런던 회사는 1606년 이주민 144명을 세 척의 배에 태우고 버지니아로 향했다. 항해는 혹독했고, 104명만 살아서 체서피크만 안쪽에 도착했다. 그들은 왕의 이름을 따 제임스타운을 건설했다. 이곳의 환경 역시 열악했다. 날씨가 습해 말라리아를 비롯한 풍토병이 창궐했다. 1608년 1월, 런던에서 후발대가 왔을 때 생존해 있던 사람은 38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주민을 실어 날랐고, 식민지에서 이윤을 얻기 위해 발버둥쳤다. 결국 제임스타운은 살아남았다. 존 롤프가 담배 재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에서 들여온 담배는 17세기 초, 이미 유럽에서 폭넓게 사랑받는 기호 식품이었다. 담배는 버지니아 생존의 동아줄이 됐다. 그러나 담배 농사는 토양을 빠르게 고갈시키기 때문에 더 넓고 새로운 경작지가 필요했다. 담배 농장이 버지니아 내륙으로 확산된 이유다.


또한 담배 재배는 막대한 노동력을 요구했다. 이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1619년 8월, 네덜란드 배가 20여 명의 아프리카인을 싣고 왔다. 노예 노동의 시작이었다. 그해 7월 버지니아 식민지인들은 자신들을 대표할 하원(House of Burgesses)을 구성했다. 신대륙에서 선거를 통해 구성된 최초의 의회였다. ‘자치’와 ‘노예제’가 같은 해에 태동한 셈이다. 이 역시 매사추세츠에서의 ‘종교의 자유’만큼이나 모순적이다.

버지니아가 살아남자 남부에도 여러 식민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볼티모어 경은 1634년 메릴랜드를 건설했고, 찰스 2세의 총신 8명은 1663년 버지니아 이남의 광대한 영토를 왕에게서 하사받았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출발점이었다. 1733년 조지아주가 건설됨으로써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 연안에 탄탄한 식민지 13개를 갖게 됐다.

종교적 관용과 시민권... 미국적 가치는 비주류 지도자에서 시작

펜실베이니아주의 아버지는 퀘이커교도이던 윌리엄 펜(1644~1718)이었다. 퀘이커교(Quakers·떠는 사람들)는 영국 개신교의 소수분파 중 하나로, ‘신의 이름에 부들부들 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청교도와 달리 예정설과 원죄의 개념을 부정했고, 공식적인 교회나 성직자도 없었다. 성(性)과 계급을 구분하지도 않았다. 당시로선 지나치게 급진적이었기에 이들은 영국에서도 신대륙에서도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탄압받았다.


자신들만의 식민지 건설은 퀘이커교도에게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였다. 돌파구는 윌리엄 펜이 마련했다. 찰스2세의 최측근이었던 동명의 윌리엄 펜(1621~1670) 장군의 아들인 그는 1681년 왕으로부터 신대륙의 드넓은 땅을 하사받았다. 망명 시절, 왕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진 빚을 탕감해주는 대가였다.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윌리엄 펜이 1683년 인디언 부족과 평화 협정을 맺은 장면을 묘사한 18세기 화가 벤저민 웨스트의 그림.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윌리엄 펜이 1683년 인디언 부족과 평화 협정을 맺은 장면을 묘사한 18세기 화가 벤저민 웨스트의 그림.


1682년, 펜은 퀘이커교도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넜고 펜실베이니아에 ‘형제애의 도시’ 필라델피아를 건설했다. 펜은 종교적 관용과 시민의 권리를 주창했다. 궁극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국제기구를 언급했고, 식민지 통합도 주장했다. 오늘날 보편적 진리로 여겨지는 가치들이고 역사 속에서 실현된 것들이다. 안타깝게도 미국에서조차 무시되기 시작한 가치들, 하찮게 여겨지는 제도들이다. 오늘날 펜의 존재가 더 위대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송동훈 문명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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