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월 8일 나는 중국 베이징시 인민해방군 제305의원 앞에 서 있다. 마오쩌둥과 중국 대륙의 공산화 혁명을 이끌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26년간 총리직 등을 수행한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오늘 저곳에서 사망했다. 그는 정통 유학(儒學) 교육을 받았고 일본, 프랑스에서 엘리트 청년 공산주의자로 성장한다. 프랑스로 건너가 공산주의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베트남의 호찌민과는 이것 외에도 비슷한 점이 많은데, 투쟁과 나란히 놓인 겸손한 품위와 청렴성, 신뢰와 실리를 겸비한 일 처리 등이 그러하다. 다만 두 사람의 분명한 차이점은 호찌민은 자타공인 1인자였고, 저우언라이는 실무형 2인자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 2인자라는 정치적 위치는 그의 ‘실존적 정체성’을 포괄한다.
저우언라이는 탁월한 외교가이기도 해서 미국이 가장 좋아한 중국 공산주의자였고, 문화 대혁명의 광풍 속에서도 문화재 등 은근히 많은 것을 보호했다. 덩샤오핑을 보호해 주었던 저우언라이가 사망하자, 덩샤오핑은 통곡했다고 한다. 중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산당 지도자이자 적이 없어 보이는 그였지만, 악평 또한 엄연하다. 결국은 마오쩌둥의 하수인으로 복무하며 비극을 유지시킨 보신주의자(保身主義者)라는 게 그 기조다. 조심스럽게 산 자는 그 조심스러움이 그림자가 되는 게 인생이다. 달라이 라마가 마오쩌둥보다 저우언라이를 더 싫어해 음흉한 속물 정도로 평했다는 것도 재밌다.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을 절대 거스르지 않으며 2인자의 생존 수칙을 엄수했다. 그가 저항했다면 중공의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을까? 그러나 내 관심은 ‘왜 마오쩌둥 같은 악마적 인간은 최고 지도자가 되고 저우언라이 같은 합리주의자는 2인자인가?’에 더 머문다. 역사 속에서는 이런 경우가 거의 패턴(pattern)이기 때문이다. 왜 대중은 판단하기보다 숭배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인간은 변혁을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변혁을 바란다고 착각하면서 혼돈에 매혹당하는 것일까?
[이응준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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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는 탁월한 외교가이기도 해서 미국이 가장 좋아한 중국 공산주의자였고, 문화 대혁명의 광풍 속에서도 문화재 등 은근히 많은 것을 보호했다. 덩샤오핑을 보호해 주었던 저우언라이가 사망하자, 덩샤오핑은 통곡했다고 한다. 중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산당 지도자이자 적이 없어 보이는 그였지만, 악평 또한 엄연하다. 결국은 마오쩌둥의 하수인으로 복무하며 비극을 유지시킨 보신주의자(保身主義者)라는 게 그 기조다. 조심스럽게 산 자는 그 조심스러움이 그림자가 되는 게 인생이다. 달라이 라마가 마오쩌둥보다 저우언라이를 더 싫어해 음흉한 속물 정도로 평했다는 것도 재밌다.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을 절대 거스르지 않으며 2인자의 생존 수칙을 엄수했다. 그가 저항했다면 중공의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을까? 그러나 내 관심은 ‘왜 마오쩌둥 같은 악마적 인간은 최고 지도자가 되고 저우언라이 같은 합리주의자는 2인자인가?’에 더 머문다. 역사 속에서는 이런 경우가 거의 패턴(pattern)이기 때문이다. 왜 대중은 판단하기보다 숭배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인간은 변혁을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변혁을 바란다고 착각하면서 혼돈에 매혹당하는 것일까?
[이응준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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