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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띠꾼의 4퍼트와 ‘골프의 신’… 리디아 고가 들려준 겸허의 철학

조선일보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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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띠꾼의 4퍼트와 ‘골프의 신’… 리디아 고가 들려준 겸허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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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1R, 박혜준·이다연 3언더파 공동 선두, 리디아 고·이민지 이븐파 공동 12위
리디아 고가 18일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1라운드가 끝나고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KLPGA

리디아 고가 18일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1라운드가 끝나고 인터뷰하며 웃고 있다. /KLPGA


18일 인천 청라 베어즈베스트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1라운드.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버디 2개와 보기 2개를 묶어 이븐파 72타를 기록, 공동 12위로 무난히 출발했다. 공동 선두 박혜준, 이다연(이상 3언더파 69타)과는 3타 차였다.

경기를 마친 뒤 리디아 고에게 “지난주 LPGA 투어에서 지노 티띠꾼이 마지막 홀에서 4퍼트를 하며 우승을 놓쳤고, PGA 투어에서는 벤 그리핀이 3퍼트로 연장을 놓쳤다. 이런 장면들을 어떻게 보나”라고 물었다.

AFP 연합뉴스15일 지노 티띠꾼(오른쪽)이 18번홀 그린에서 우승자 찰리 헐과 포옹하고 있다. 이 홀에서 4퍼트로 역전패한 티띠꾼의 표정이 굳어 있다.

AFP 연합뉴스15일 지노 티띠꾼(오른쪽)이 18번홀 그린에서 우승자 찰리 헐과 포옹하고 있다. 이 홀에서 4퍼트로 역전패한 티띠꾼의 표정이 굳어 있다.


그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티띠꾼은 원래 퍼팅이 정말 좋은 선수예요. 본인도 예상 못 했을 피니시였을 겁니다. 아쉬움과 화가 동시에 밀려왔을 거예요. 하지만 그 한순간이 남은 커리어를 망치지는 않을 겁니다. 골프는 장갑을 벗을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요.”

리디아 고는 자신도 3퍼트로 기회를 날린 경험이 있다고 했다. “믿기 힘든 순간이지만, 골프는 언제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요. 그만큼 간절하게 원하는 경기이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스포츠죠.”

올해 LPGA 투어에는 아직 다승자가 없다. 리디아 고는 최근 흐름을 이렇게 짚었다. “그만큼 우승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제가 2014년 루키로 데뷔했을 때만 해도 서너 명의 선수가 압도적으로 몇 승씩 가져갔습니다. 톱10도 자주 했고요. 하지만 요즘은 국적도 다양하고, 리더보드에 새로운 이름들이 늘 올라옵니다. 우승 한 번 자체가 힘들어졌어요.”

그는 최근 사례를 덧붙였다. “작년에도 넬리 코르다가 세 번 우승한 게 눈에 띄었지만, 요즘은 그런 다승 기록이 흔치 않아요. 다들 너무 잘 치기 때문에, 루키라고 해도 예전의 루키가 아닙니다. 일본에서 이미 7승을 거두고 온 선수도 있고,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에요. 그게 골프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죠.”


리디아 고는 “저도 시즌이 끝나기 전에 한 번은 더 우승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플레이가 완벽해야 가능해요. 샷만 잘해서는 안 되고 퍼팅도 따라줘야 하고, 나흘 내내 꾸준해야 하는데, 그게 가장 어렵습니다”라고 했다.

이번 대회 코스 세팅에 대한 소감도 덧붙였다. “이번 대회 코스가 길어진 건 아니에요. 다만 비가 온 뒤 흙이 묻어 런이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다행히 배수가 잘 돼 플레이는 상대적으로 수월했지만, ‘볼 클리닝’ 룰을 적용받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앞으로 이틀 동안 비 예보가 있다는 점도 변수가 될 수 있어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골프의 신’으로 옮겨갔다. 리디아 고는 “저도 OB가 난 줄 알았는데 공이 다시 페어웨이로 들어온 순간이 있었어요. 김세영 선수가 박인비를 꺾고 롯데 챔피언십에서 이글을 잡아낸 장면도 그랬습니다. 저희는 눈앞의 샷에 집중하지만, 결국 우승자는 골프의 신이 점지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본 장면도 떠올렸다. “그레이스 김이 공을 물에 빠뜨렸는데, 곧바로 이어진 샷이 칩인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순간 ‘아, 이건 우승이겠구나’라는 직감이 들었죠. 설명하기 힘든 순간들이 있어요. 그분이 오셨다는 느낌이랄까요.”

리디아 고는 메인 스폰서인 하나금융그룹이 주최하는 이번 대회가 자신에게 특별하다고 강조했다. “몇 년 전 BMW 챔피언십에서 한국에서 우승했을 때 정말 소중한 기억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가족도 이곳에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훨씬 값졌어요. 제 커리어에서 큰 하이라이트였죠.”

그러면서도 특유의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물론 이번에도 우승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니더라도 (함께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을 받는) 이민지가 우승한다면 그것 또한 특별할 것 같아요. 한국에서 열리는 시합 자체가 제게는 무조건 행복한 순간입니다.”


리디아 고는 LPGA 통산 23승을 거둔 스타이자, 세 차례 올림픽에서 금·은·동을 모두 수확하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골프 천재 소녀’다. 그러나 화려한 경력에도 늘 겸손을 잃지 않는다.“골프는 끝까지 알 수 없는 스포츠예요.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골프의 신이 선택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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