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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왕비 책봉, 초호화 대관식… 왕실 안정, 왕권 강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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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군부 '공생관계' 변화 가능성 주목

한국일보

지난 4일 대관식을 통해 태국 국왕에 공식 등극한 마하 와찌랄롱꼰 왕이 6일 오후 방콕 왕궁 발코니에서 손을 들어 국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옆은 대관식을 사흘 앞둔 지난 1일 책봉된 수티다 왕비. 방콕=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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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왕 대관식이 열리고 있는 수도 방콕 왕궁과 근처 공원에는 6일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다. 대관식을 통해 국왕으로 등극한 마하 와찌랄롱꼰(라마 10세) 왕이 황금색 가마에 올라 펼친 퍼레이드에 이어 왕궁 발코니에서 이뤄지는 국민들에 대한 국왕의 첫 인사를 보기 위한 인파다.

방콕에서 서쪽으로 100㎞ 가량 떨어진 랏차부리에서 온 한 농부(65)는 “일생에 한번 주어지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며 “아들이 밤새 차를 몰아서 왔다”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 섭씨 37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산, 돗자리 하나로 자리를 지켰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중간에 쓰러지는 이들도 속출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주변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 고(故)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의 대관식 이후 69년 만에 열리는 행사인 만큼 많은 태국인이 이를 직접 보기를 원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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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국왕의 발코니 인사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왕궁 앞으로 몰려든 태국 국민들. 방콕=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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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와찌랄롱꼰 국왕은 지난 4일 76개 지역에서 길어온 성수(聖水)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 수십개의 다이아몬드로 치장된, 7㎏이 넘는 금관 등 왕실의 초호와 예품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화려한 대관식을 치렀다. 태국 정부는 이 외 각종 부대행사 등 사흘짜리 대관식 행사에 10억바트(약 350억원)를 책정했다. 태국 정부는 “대관식을 보기 위해 30여개국에서 수백명의 취재진이 태국을 찾았고, 수십만명의 국민들이 방콕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봉원사자 규모만 8만에 달한다.

‘세기의 대관식’을 치른 와찌랄롱꼰 국왕은 ‘세계 최대 부자’ 국왕으로 평가된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한 관계자는 본보에 “왕의 재산에 걸맞은 화려한 대관식”이라며 “초호화 대관식은 결국 약화하고 있는 왕과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와찌랄롱꼰 국왕의 지난 4일 등극 일성도 “왕실의 유산을 계속 유지하고 지키며, 국민의 이익과 행복을 영원히 위해 정의롭게 다스리겠다”는 것이었다. 왕실 유지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분석됐다.

태국은 1932년 절대왕정을 종식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지만 왕실과 국왕의 권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왕실 모독죄로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탁신 친나왓 전 총리 등 과거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정권을 교체한 경험이 있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맛본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왕실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

특히 선친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과 비교하면 와찌랄롱꼰 국왕의 위상은 취약하다. ‘국부’로 존경 받은 선왕과 달리 네 차례의 결혼 등 흠결이 많다. 방콕의 한 관료는 “(국민들이) 왕으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왕실과 관련해 속내를 털어 놓을 수 없는 현지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절제된 표현이다. 태국 전문가, 김홍구 부산외대 교수는 “오늘의 태국 왕실을 보는 국민들의 대체적인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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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왕과 국민들의 공식 첫 만남인 왕의 ‘왕궁 발코니 인사’를 보기 위해 궁 앞에 자리 잡은 국민들이 국왕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방콕=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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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군주제 하에서 태국 왕실은 왕권 강화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 대관식 사흘 전 승무원 출신의 근위대장과 결혼, 왕비로 책봉한 것도 왕실 안정과 강화를 위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2016년 10월 선왕 서거 후 바로 왕좌에 오르지 않고 12월까지 기다렸다 왕위에 오른 점, 그리고 이후 2017년 10월 선왕 장례식까지 대관식을 치르지 않은 것은 물론, 그로부터도 1년 반이 지난 시점까지 기다린 것 등이 모두 ‘태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선왕의 후광을 이어 받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새로 등극한 왕이 현실 정치에 어떻게 개입할 지도 관심거리다. 태국 왕실은 왕권 유지ㆍ강화를 위해 다른 나라 왕실보다 정치에 적극 개입해 왔다. 와찌랄롱꼰 국왕이 지난 3월 총선 직전 왕실에 우호적인 군부세력을 위해 우본랏 랏차깐야 공주의 총리직 도전을 주저앉힌 게 대표적이다. 우본랏 공주는 국왕의 손위 누이다. 또 그 사태 이후 투표일 직전 탁신 전 총리가 자신의 아들 결혼식에 우본랏 공주가 참석한 사진을 올려 탁신계 정당에 힘을 싣자, 왕실은 탁신에게 내려졌던 훈장을 회수하기도 했다. 당시 모두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이끌고 있는 팔랑쁘라차랏당 지지행위로 해석됐다. 총리와 왕실이 ‘공생관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왕과 군부의 공생관계가 얼마나 이어질지 모른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현지 국왕이 마냥 계속해서 쁘라윳 총리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는 7~9일 태국 선관위의 총선 결과 발표 뒤 이어질 총리 선출 과정에서 새 국왕이 다른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왕실은 군인 편에 섰다가도 학생들 편에 서기도 했다”며 “그를 통해 왕권을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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