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무차별범죄의 공포가 커졌는데요.
늘 범죄 자체의 잔혹성은 주목받지만, 피해자, 특히 유족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적은 게 현실입니다.
이 문제를 탐사 취재한 팩트앤이슈팀 남효정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남 기자, 먼저 '유족구조금 제도가 가해자의 형량을 낮춘 판례'에 대해서 보도했잖아요.
이 유족구조금이 이게 뭡니까?
◀ 기자 ▶
네, 유족구조금은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유족에게 지급되는 범죄피해구조금 중 하나입니다.
범죄를 당해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먼저 구조금을 주고,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갚도록 하는 형태입니다.
문제는 가해자가 일부 구조금을 갚았다고 해서,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는 건데요.
지난 10년간 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사망한 판결문을 분석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유족이 구조금을 받고, 가해자가 일부 갚은 게 가해자에게 유리한 점이라고 쓰인 판결이 총 54건 있었습니다.
이 중에 7건은 심지어 피해자의 유족들이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던 건인데요.
가해자 유족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 또는 유족과 합의하지 못했다는 판결도 9건 있었습니다.
국가가 가해자에게 구상한 구조금을 갚는 것은 가해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는 것일 뿐이거든요.
당연히 이건 가해자가 피해회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볼 수도 없는 거죠.
그런데 일부 판결에서는 어쨌든 유족이 구조금을 받아서 피해를 보전받았다고 간주한 걸로 보입니다.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가해자를 돕는 모순이 발생하는 건데요.
이런 판결들이 조금씩 알려지다 보니 구조금 수령을 거부하는 유족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실제 이번 연속기획에서 취재했던 무차별범죄의 유족들도 모두 안 받은 상태입니다.
◀ 앵커 ▶
도리어 가해자의 감형에 도움이 되고 있는 현실이네요.
그런데 범죄피해자 중에는 피치 못 하게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들도 있잖아요.
그 내용에 대해서도 좀 얘기해 볼까요.
◀ 기자 ▶
네, 주소가 노출돼 보복이 우려되는 범죄의 피해자들은 아무래도 주거를 옮겨야겠죠.
그런데, 이웃에 의해 무차별 범죄를 당한 유족들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집 앞이 내 가족이 범죄로 사망한 현장이 된다면, 유족들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되거든요.
아파트 흡연장에서 망상에 빠진 20대 남성이 70대 남성을 마구 폭행해 살해한 '중랑구 아파트 흡연장 살인사건', 망상을 가진 30대 남성이 아파트 정문에서 40대 남성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살해한 '은평구 일본도 살인사건'이 바로 그 예시입니다.
아파트 흡연장, 정문 앞과 같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장소가 범죄 현장이 되면서, 남겨진 피해자 유족들은 매일 현장을 볼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유족들의 정서적 회복을 위해서라면 사는 공간을 바꾸는 게 시급합니다.
그런데 집을 옮길 때는 목돈이 들잖아요.
정부의 주거지원이 있긴 한데, 허술합니다.
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이 있지만, 지역별로 공고가 1년에 한 번 뜰까 말까 할 정도로 주택 물량이 너무 적은 건데요.
그래서 국토부가 지원하는 공공임대 우선 공급으로 집을 구한 범죄피해자는 작년에 8명, 재작년엔 3명에 불과했습니다.
검찰이 운영하는 안전 가옥이나, 지자체의 주거지원도 있지만, 보증금과 월세 상한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거나 거주기간 제한 등이 있는데요.
그래서 두 사건의 유족들은 주거 제도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 앵커 ▶
네, 좀 실제적인 주거 제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범죄로 가족을 잃은 분들은 심리적인 피해가 크지 않습니까.
일상생활이 어려울 것 같아요.
◀ 기자 ▶
대부분 범죄 때문에 삶이 파괴되고, 일상을 잃었다고 보면 됩니다.
재작년 8월에 있었던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20대 남성이 차로 인도를 돌진해 사람들을 들이받고,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두른 사건인데요.
이 사건으로 희생된 고 김혜빈 씨의 유가족은 외동딸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뒤 제대로 먹고 자는 것도 못 하고 있습니다.
원래 자영업을 했는데 무기한 휴업 상태이고요.
기존에 사업용으로 대출받은 금액과 생활비로 빌린 카드 현금서비스 이자까지 있어 매일 빚이 불어나는 상황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유족구조금 제도가 있지만 혜빈 씨 유족들도 가해자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할까 봐 유족구조금을 안 받았거든요.
경제적으로 상당히 힘들잖아요.
그래서 이 유족들이 작년 9월에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라는 곳을 찾았습니다.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저리대출 상품을 연계해 주는데, 이분들은 '신용 등급이 너무 높아서 대출이 안 된다'는 답을 듣고 왔습니다.
알고 보니 신용평점이 하위 20%인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들이었습니다.
센터 측은 범죄피해자가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는 입장인데, 유족들 처지에선 이럴 거면 범죄피해자 주거지원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아예 가정 경제가 무너질 때까지 기다렸다 도움을 청해야 하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특히 무차별범죄는 누가 범죄의 표적이 될지 모르잖아요.
범죄 발생 자체를 막는 것이 중요하지만요.
사건 이후, 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하루빨리 개선되지 않는다면 무고한 범죄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MBC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남효정 기자(hjhj@mbc.co.kr)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 금지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무차별범죄의 공포가 커졌는데요.
늘 범죄 자체의 잔혹성은 주목받지만, 피해자, 특히 유족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적은 게 현실입니다.
이 문제를 탐사 취재한 팩트앤이슈팀 남효정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남 기자, 먼저 '유족구조금 제도가 가해자의 형량을 낮춘 판례'에 대해서 보도했잖아요.
이 유족구조금이 이게 뭡니까?
네, 유족구조금은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유족에게 지급되는 범죄피해구조금 중 하나입니다.
범죄를 당해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국가가 먼저 구조금을 주고,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갚도록 하는 형태입니다.
문제는 가해자가 일부 구조금을 갚았다고 해서,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는 건데요.
그랬더니 유족이 구조금을 받고, 가해자가 일부 갚은 게 가해자에게 유리한 점이라고 쓰인 판결이 총 54건 있었습니다.
이 중에 7건은 심지어 피해자의 유족들이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던 건인데요.
가해자 유족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 또는 유족과 합의하지 못했다는 판결도 9건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건 가해자가 피해회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볼 수도 없는 거죠.
그런데 일부 판결에서는 어쨌든 유족이 구조금을 받아서 피해를 보전받았다고 간주한 걸로 보입니다.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가해자를 돕는 모순이 발생하는 건데요.
실제 이번 연속기획에서 취재했던 무차별범죄의 유족들도 모두 안 받은 상태입니다.
◀ 앵커 ▶
도리어 가해자의 감형에 도움이 되고 있는 현실이네요.
그런데 범죄피해자 중에는 피치 못 하게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들도 있잖아요.
그 내용에 대해서도 좀 얘기해 볼까요.
◀ 기자 ▶
네, 주소가 노출돼 보복이 우려되는 범죄의 피해자들은 아무래도 주거를 옮겨야겠죠.
그런데, 이웃에 의해 무차별 범죄를 당한 유족들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집 앞이 내 가족이 범죄로 사망한 현장이 된다면, 유족들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되거든요.
아파트 흡연장에서 망상에 빠진 20대 남성이 70대 남성을 마구 폭행해 살해한 '중랑구 아파트 흡연장 살인사건', 망상을 가진 30대 남성이 아파트 정문에서 40대 남성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살해한 '은평구 일본도 살인사건'이 바로 그 예시입니다.
아파트 흡연장, 정문 앞과 같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장소가 범죄 현장이 되면서, 남겨진 피해자 유족들은 매일 현장을 볼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유족들의 정서적 회복을 위해서라면 사는 공간을 바꾸는 게 시급합니다.
그런데 집을 옮길 때는 목돈이 들잖아요.
정부의 주거지원이 있긴 한데, 허술합니다.
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이 있지만, 지역별로 공고가 1년에 한 번 뜰까 말까 할 정도로 주택 물량이 너무 적은 건데요.
그래서 국토부가 지원하는 공공임대 우선 공급으로 집을 구한 범죄피해자는 작년에 8명, 재작년엔 3명에 불과했습니다.
검찰이 운영하는 안전 가옥이나, 지자체의 주거지원도 있지만, 보증금과 월세 상한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거나 거주기간 제한 등이 있는데요.
그래서 두 사건의 유족들은 주거 제도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 앵커 ▶
네, 좀 실제적인 주거 제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범죄로 가족을 잃은 분들은 심리적인 피해가 크지 않습니까.
일상생활이 어려울 것 같아요.
◀ 기자 ▶
대부분 범죄 때문에 삶이 파괴되고, 일상을 잃었다고 보면 됩니다.
재작년 8월에 있었던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20대 남성이 차로 인도를 돌진해 사람들을 들이받고,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두른 사건인데요.
이 사건으로 희생된 고 김혜빈 씨의 유가족은 외동딸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뒤 제대로 먹고 자는 것도 못 하고 있습니다.
원래 자영업을 했는데 무기한 휴업 상태이고요.
기존에 사업용으로 대출받은 금액과 생활비로 빌린 카드 현금서비스 이자까지 있어 매일 빚이 불어나는 상황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유족구조금 제도가 있지만 혜빈 씨 유족들도 가해자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할까 봐 유족구조금을 안 받았거든요.
경제적으로 상당히 힘들잖아요.
그래서 이 유족들이 작년 9월에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라는 곳을 찾았습니다.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저리대출 상품을 연계해 주는데, 이분들은 '신용 등급이 너무 높아서 대출이 안 된다'는 답을 듣고 왔습니다.
알고 보니 신용평점이 하위 20%인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들이었습니다.
센터 측은 범죄피해자가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는 입장인데, 유족들 처지에선 이럴 거면 범죄피해자 주거지원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아예 가정 경제가 무너질 때까지 기다렸다 도움을 청해야 하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특히 무차별범죄는 누가 범죄의 표적이 될지 모르잖아요.
범죄 발생 자체를 막는 것이 중요하지만요.
사건 이후, 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하루빨리 개선되지 않는다면 무고한 범죄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MBC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남효정 기자(hjhj@mbc.co.kr)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