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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_한식으로 위로와 희망 전하는 스위스 입양 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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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물결이 아름다운 스위스 서부 '뇌샤텔 호수'.

호숫가 주변 한 편에 스위스에선 드문 한식당이 있는데, 입양 동포 소피 미영 씨가 운영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소피 미영 / 스위스 입양 동포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소피 미영입니다. 저는 55세입니다. 1969년 8월 12일 부산에서 태어났고, 1974년 2월, 5살의 나이에 남동생과 함께 스위스로 입양되었습니다. 입양인 출신 미영 씨가 한식당을 열게 된 건 단순하면서도 필연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 한국의 맛과 문화를 알리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가게 이름을 한국어 '갈대'로 정한 것도 주변 갈대밭 풍경은 물론 미영 씨 자신의 삶을 투영한 선택이었습니다. '갈대'는 저를 상징하는 식물인 것 같습니다.

곧게 서 있으면서도 유연하고, 기후에 맞춰 적응하며,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면서도 그 리듬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저를 닮았다고 느낍니다.]

[미카엘 구기 / 남편·한식당 공동 운영 : 현재 저희가 판매하는 음식의 약 80%는 한국 음식이고 점점 그 비율이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레스토랑을 창립하게 된 계기는 소피의 한국적인 뿌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미영 씨는 지난 1974년 남동생과 스위스로 입양을 왔습니다.

언어와 문화는 물론, 외모나 관습까지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는데요.

[소피 미영 / 스위스 입양 동포 :당시 유럽에는 아시아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시아인 아이로서 어딜 가든 사람들이 저를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매우 다정했고, 항상 저를 안아주거나 입 맞추고 싶어 했어요. 저는 쉽게 마음을 열거나 애정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낯선 생활은 그나마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적응해가게 됐지만.

스위스 문화에 익숙해질수록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다는 고민도 그만큼 깊어져만 갔습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양부모님이 미영 씨 입양 기록을 온전히 보관해주셨단 점일까요.

[소피 미영 / 스위스 입양 동포 : 양부모님께서 완벽한 기록을 준비해주신 것이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어요. 모든 문서를 정리해 소중히 보관해 주셨고, 제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것이 제 권리라고 생각하며 저에게 그 문서를 넘겨주셨습니다.]

미영 씨는 온전한 입양 기록을 바탕으로 한국신문에 광고를 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오로지 내 뿌리와 친가족을 찾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요.

그렇게 30년 만인 지난 2012년 드디어 찾아온 대한민국.

그리운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달리 미영 씨가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소피 미영 / 스위스 입양 동포 : 제가 1963년 10월 25일에 입소했던 보육원이 화재로 많은 기록이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정보와 문서가 사라진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보육원의 원장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분을 만날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를 길 없던 그리움과 상실감을 위로해준 건 다름 아닌 음식이었습니다.

다양한 한국 음식을 통해 마치 집으로 돌아온 듯한 위로를 느낀 건데요.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 문득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입양인들에게 한국의 맛으로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소피 미영 / 스위스 입양 동포 : 한국 음식은 다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고 그 맛은 유일무이하며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직접 경험하고 맛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음식이에요. // 갈대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서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영양 공급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진주 듀사빵 / 손님 : 스위스에서 다른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한국인을 자주 볼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제 문화에 더 가까워지고 제 커뮤니티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때때로 미영 씨는 한식당에서 특별한 이벤트도 마련하는데요.

수많은 손님이 찾아와 해물파전을 비롯한 다양한 한식들을 맛봅니다.

한국의 맛과 문화를 직접 알리는 동시에 입양 동포 간 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만큼 언제나 뜻깊은 시간이 됩니다.

[애진 허이스 / 벨기에 입양 동포, 한식 요리사 : 스위스 한국 입양인 협회를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소피와 연결되어 그녀의 레스토랑을 방문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기 그녀의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게 되었네요.]

요리사뿐만 아니라 작가와 영화감독, 화가까지 다양한 예술가의 사연을 나누는 현장,

입양인으로서 맞닥뜨린 어려움을 이겨내고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겁니다.

[소피 미영 / 스위스 입양 동포 : 저는 입양을 미식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미식이냐고요? 저는 맛이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입양이라는 주제는 단지 슬픔이나 비극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모를 생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적인 방식으로 입양 이야기를 다루고, 그것을 긍정적이고 희망차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치 작은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우는 것처럼요. 어디에 있든 그 씨앗은 반드시 자라고 꽃을 피울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함께 나누는 맛과 이야기로 하나가 되는 이곳.

소피 미영 씨와 이 공간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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