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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앵커칼럼 오늘] 대통령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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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도와줘야 할 거야. 나만이 당신을 도울 수 있으니까."

킬러의 제안을 받은 뒷골목 보스가 비아냥거립니다.

"앞뒤가 꽉 막힌 소리를 하는군, 미스터 윅."

고지식하기로는 노나라 미생만한 사내도 없습니다. 다리 아래서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다 강물이 불어나자 교각을 끌어안은 채 익사했습니다.

여러 고전이 다룬 미생지신(尾生之信) 입니다. 사기(史記)만 빼고는 모두, 엉뚱한 데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집착이라고 했지요. 장자가 꾸짖었습니다.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와 다름없다.'

고집불통 미생 반대편에 괄목상대 여몽이 있습니다. 용맹한 오나라 장수 여몽은 칼만 잘 휘두를 뿐, 큰일을 할 식견이 없었습니다. 주군의 꾸지람을 듣고 각성한 그가 딴사람이 돼 말했지요.

'선비란, 헤어지고 사흘 뒤 눈 비비며 본다.'

모레 대국민 담화와 회견의 성패는 대통령의 변화와 변신에 달렸습니다. 지켜본 국민이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달라졌다.'

앞서 국민 앞에 섰던 몇 차례 자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국민이 듣고 싶은 얘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제 총리가 대신 읽은 시정연설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논란에 편치 않은 국민이 듣기에 더욱 불편했습니다.

"지난 2년 반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그래 놓고 국정 성과를 자찬하느라 공을 들였습니다.

모레 담화에서는 홍보를 자제하는 게 좋겠습니다. 성과보다 쇄신을 말했으면 합니다. '명태균 녹취'는 당연히, 소상한 설명에 진솔한 사과가 따르리라 믿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보 사태와 관련해 현철 씨 이름이 나돌 때부터 사과했습니다.

"진실 여부에 앞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 자체가, 저에게는 크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미생이 끝까지 껴안고 있었던 교각을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안고서 버티는 기둥 그것이 무엇이든, 이제는 놓아야 합니다. 백 척 장대 위에 선 지금, 도리어 허공으로 한 걸음 내디딜 때, 길은 열립니다. 이틀 뒤 눈 비비며 대통령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11월 5일 앵커칼럼 오늘 '대통령이 달라졌다?'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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