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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북, 추석에도 무력 도발...탈북민이 말하는 김정은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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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윤보리 앵커, 박기완 앵커
■ 출연 : 한서희 탈북 방송인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와이드]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한국에서는 민족 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많은 분들이 가족 친지를 만나러 이동하는 명절이기도 한데요. 북한의 추석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잇달아 도발을 반복하는 북한 정권, 주민들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탈북방송인 한서희 씨와 다양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명절이면 그래도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이번 연휴 어떻게 보내셨어요?

[한서희]
마찬가지로 늘 대한민국에 와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북쪽을 보면서 언젠간 통일이 오겠지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추석을 보냈습니다.

[앵커]
가족 친지분들도 좀 만나셨나요?

[한서희]
이번에는 가족 친지분들이 다 멀리 부산에도 있고 이렇게 있어서 만나지는 못하고 전화로만 하고 있습니다.

[앵커]
최근 탈북 이후 남한의 삶에 대해서 책을 내셨다고 들었는데 간단하게 소개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한서희]
제가 날마다, 남한살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는데요. 보통 탈북민들이 내는 책들을 보면 우리의 탈북 과정과 또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 많이 나와 있는데 저는 좀 가볍게 우리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겪는 에피소드를 가볍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트에 가서 낙지를 사러 갔더니 오징어를 주더라, 이런 내용들이 있었고요. 그리고 사자고추를 사려고 했더니 파프리카라고 하더라, 이런 것들. 저희가 겪었던 대한민국에서의 에피소드들, 이런 내용들을 책에 담아서 또 우리가 대한민국에 처음 왔을 때 국정원을 먼저 들어가게 되거든요. 그래서 국정원 에피소드 이런 것들을 함께 담아서 북한에서 오신 탈북민분들도 공감하고 또 대한민국에 있는 국민들도 탈북민들은 이런 정착의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이런 소통의 공간을 가지려고 책을 내게 됐습니다.

[앵커]
책을 내면서 북 콘서트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남북 주민이 함께 모였다던데 어땠습니까?

[한서희]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축하해 주시고 또 책에 대해서 공감해 주시는 자리였고요. 그리고 또 제가 상암동 쪽에 살다 보니까 YTN도 가깝지만 여기 박정희 기념관에서 북 콘서트를 열게 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시고 사인을 받아가주시고 하면서 저의 책을 보고 희망을 얻었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제가 깜짝 놀랐거든요. 제 책을 읽어보셨냐고 하니까 사서 잠깐 봤는데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라는 것을 느끼셨다고 해서 너무 또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저희가 탈북 상황 관련해서 여쭤보고 싶은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탈북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 분들도 있는데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한서희]
아무래도 탈 자라는 건 부정적인 단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탈영병, 탈주자 이런 식으로. 그래서 탈북이라는 단어들을 들었을 때 탈북민들 속에서는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인데 굳이 탈북이라는 얘기를 지금까지 와서 들어야 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저 역시 그런 생각에 탈북보다는 대한민국에 왔으니 우리 실향민분들도 계시잖아요. 이산가족도 있고 저희도 제2의 이산가족이다 보니까 북향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어떨까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앵커]
평양에서의 이야기 좀 해보겠습니다. 평양에서 성악 배우로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정도로 활동하셨을 정도면 집안 환경이 유복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넘어올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한서희]
제가 한국 가야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아니었고 저희 오빠가 남한 드라마를 많이 보고 사랑에 빠지게 돼서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먼저 탈북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되고 그로 인해서 저희 가족은 북한에 남아 있으면 그에 대응하는 처벌을 받게 되고 수용소로 가게 될 위기에 처해서 저희도 목숨 걸고 오빠의 뒤를 따라서 탈북의 길에 오르게 된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앵커]
또 북한에서 소품조로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소품조, 사실 저는 처음 들어보는데 어떤 활동을 하신 걸까요?

[한서희]
소품조라고 하면 무슨 물건인가라고 얘기하시지만 북한은 공연을 할 때 대품 공연, 중품 공연, 소품 공연, 이렇게 공연 종목을 나누거든요. 그래서 대품 공연은 예술단 전체가 다 같이 하는 공연을 대품 공연이라고 하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공식적인 공연이라고 볼 수 있겠죠. 소품 공연 같은 경우에는 비공식적인 공연이 되게 많습니다. 그래서 중품, 소품은 주로 지방 순회공연 다닐 때 조를 짜서 다니는 공연의 이름이기도 한데 제가 속했던 소품조 공연단은 김정일이 보안성 내 별장에 오면 그때 저희가 가서 적은 규모의 공연단이 빠르게 들어가서 공연을 펼치는 그런 조였어요. 그래서 소품조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앵커]
김정일이라고 하면 북한 정권에서는 최고존엄이라고 했는데 그런 김정일 앞에서 공연을 하려면 떨리기도 했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한서희]
처음에는 너무나도 떨렸죠. 왜냐하면 실수를 한다든가 내가 음이탈을 한다든가 이러면 큰 처벌을 받지 않을까. 처음 들어왔을 때는 목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그냥 흉내만 내고 들어오게 되었는데 두 번, 세 번 들어가니까 그때부터는 조금 편안해지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공연이라는 게 무대에서 하는 공연보다는 연회석상에서 본인들 술 마시고 얘기하면서 저희 공연을 보는 거라서 그다음부터는 우리를 집중 안 하니까 편하게 해도 되겠다, 이런 마음에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모든 북한이라는 곳이 다 다 김정일을 위한 거고, 김 부자 체제를 위한 것이다 보니까 인권이라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정일이 공연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언제쯤 간다라고 하면 저녁 7시부터 화장하고 메이크업하고 머리 스프레이를 가득 뿌리고.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너무 무겁거든요. 그 머리에 군복을 그대로 의상을 입고 진짜 한 3~4시간씩 대기하고 앉아서 졸다가 갑자기 왔다 이러면 일어나서 공연을 새벽에도 해야 되는 이런 상황들이 있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건 정말 대한민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아까 잠깐 말씀해 주셨는데 실수라든지 음이탈을 하게 되면 정말로 처벌도 있습니까?

[한서희]
보통은 남한에서 그러죠. 아오지탄광 가나요? 라고 하는데 다 그렇게 음이탈해서 아오지탄광 보내면 누가 노래하겠습니까? 그래서 보통은 사상투쟁회라고 해서 엄청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죠. 조원들이 모인 데서 얼마나 충성심이 부족했으면 공연장소에서 실수를 하느냐 하면서 사상투쟁회를 벌이고 집단왕따 같은 것들이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잘못을 했으니 화장실 청소를 해라. 비판서를 써라, 이런 것들이 계속되고. 그런 스트레스가 정말 아오지탄광 가는 것 못지않게 힘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공연할 때는 늘 실수하지 말아야 되고 굉장히 조심스러워지는 거죠.

[앵커]
한서희 씨 같은 경우에는 2007년에 탈북을 하셨죠. 그리고 오빠분도 오셨다고 하고 어머니도. 총 몇 분 정도가 어떻게 같이 오게 되신 건지.

[한서희]
저희 가족이, 저희 외가집은 이미 다 와 있었고 저희 가족이 제일 마지막에 도착한 가족인데 지금 보면 가족이 모이면 한 50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많이 왔는데 먼저 엄마의 가족인 이모 자녀들부터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거든요. 그분들이 오고 또 이모들이 오고 그렇게 하면서 엄마가 인민반장을 하시다 보니까 또 이렇게 몰래 그들을 숨길 수 있어서 무사히 다 잡히지 않고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고 또 저희는 오빠가 가게 되면서 또 뜻하지 않게 따라왔지만 저희도 한 번도 잡히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무사히 온 가족이 다 오게 됐습니다.

[앵커]
한서희 씨 가족 같은 경우에는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좀 많은 인원이 다 우리나라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때 당시와는 다르게 요새는 한국으로 오기가 굉장히 힘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어떻습니까?

[한서희]
지금 어쩌면 탈북의 장르가 바뀌기도 하고 또 이제는 탈북하는 사람들이 계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기존에 80, 90년대에는 배고파서 탈북을 했다고 하고 또 2000년도 지나서부터는 남한 드라마의 영향이 커서 탈북을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게 다 어디서 탈북을 하냐면 국경 연선 지역을 통해서 탈북을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국경 연선이 느슨하기 때문에 중국을 통해서, 몽골이나 동남아를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오는 루트가 있었는데 그 루트가 공개되고 계속 알려지면서 김정은이 국경의 장벽을 높이 막아놓고 경비를 더 삼엄하게 하고 또 무기까지 설치해놓은 상태라 도망가는 사람 있으면 즉시 사살을 해라, 이런 공포 정치까지 펼치고 있기 때문에. 사실 국경 연선으로 오기는 굉장히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이제는, 지금의 탈북은 북한에서의 엘리트들만 탈북할 수 있는 계기가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해외에 나가 있는 해외 근로자들 그리고 또 해외에 나가 있는, 대사관에 나가 있는 엘리트들이 오히려 해외에서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또는 강원도 경계에서 38선을 타고 대한민국으로 오는 경우가. 군인들이 많아진 거죠. 결국 북한 체제를 떠받들어야 할 엘리트들과 북한을 지켜야 되는 군인들이 탈북을 하게끔 만들어버린 거죠. 그래서 이제는 탈북하는 게 일반 주민들은 더 어려워지고, 장벽을 막아놨기 때문에. 해외나 또 북한의 강원도, 배 타고 오는 이쪽 지방에서 더 용이하게 올 수 있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사실 이번에는 정착하셨을 때 어려움을 이야기해보려고 하는데요. 아까 사자고추 이야기도 해 주셨지만 그 외에 어떤 어려움들이 있으셨을까요?

[한서희]
처음에는 말투가 다르니까 평양 말로 하니까 아르바이트를 구해도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이러면 사람들이 다 깜짝깜짝 놀라서 조선족이에요? 이렇게 물어보시는 분도 있고 북한에서 왔어요라고 하면 탈북자 이런 편견으로 인해서 탈북자라는 그 말 자체가 탈 자가 좀 무섭잖아요. 나는 탈북자 무서워. 북한 사람들 싫어, 이런 반응들. 그러니까 편견 때문에 좀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주눅이 자꾸 드는 거죠. 나는 뭘 잘못한 게 없는데 그냥 북한에서 왔다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눈길 자체에 주눅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마 저뿐 아니라 모든 탈북민들이 그런 감정을 다 느끼면서 아마 그 적응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고 두 번째는 문화적 차이였습니다. 제가 제 책에서 상세하게 얘기했는데 오징어, 낙지 이런 것도 너무나도 상반되게. 북한에서 낙지라 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오징어라고 하고 또 여기서 사자고추. 북한에서 사자고추라는 걸 여기서는 파프리카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도 가장 어려움을 많이 겪기도 했었습니다.

[앵커]
그런 문화적 차이만큼 명절을 보내는 것도 좀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의 추석은 어떻습니까?

[한서희]
북한의 추석은 참 단촐하죠. 왜냐하면 지금 북한을 보면 기차 사정도 안 좋기 때문에 친인척들이 오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리고 우리처럼 우리는 연휴 엄청 길게 쇠잖아요. 이번에 5일 정도 쇤 것 같아요. 그런데 주말이 끼면 오히려 대체공휴일 했던 것을 반납해야 되는 시스템이거든요. 우리는 오히려 더 누리는 시스템이지만. 그래서 북한은 오히려 하루밖에 못 쉽니다.

그렇게 하루를 쉬어야 되는데 친척들이 성묘를 가겠다고 기차를 타는 순간 며칠을 기차에서 버텨야 되다 보니까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없는 거죠. 그런데 대한민국은 기차를 타든 자동차를 타든 버스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교통수단이 다양하다 보니까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이고 함께 성묘도 지내고 이런 모습들이 북한과 많이 다르고 여기 귀성길 정체라고 하잖아요, 뉴스를 보면 귀성길 정체를 볼 때면 참 신기하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북한에서는 차가 그렇게 없으니까 정체라는 건 있을 수도 없고 기차만 정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볼 때 행복한 고민이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앵커]
북한의 최대 명절이 설이나 추석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그럼 가장 큰 명절은 언제라고 보면 될까요?

[한서희]
북한의 가장 큰 명절은 김 부자의 생일과 노동당 창건일, 이런 것들이 가장 큰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김 부자의 생일을 칭하고 있고 노동당 창건일 이런 것은 국가의 최대 명절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추석, 설 명절 이런 건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루밖에 쉬지 못하는 거죠.

[앵커]
아까 한서희 씨의 오빠분이 우리 드라마를 보면서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고 하셨잖아요. 북한의 장마당 세대들 사이에서 우리 한국 드라마나 영화, 음악 이런 문화가 굉장히 많이 퍼져 있다고 하던데 실제로 어느 정도로 퍼져 있습니까?

[한서희]
제가 있을 당시만 해도 남한 드라마가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거든요. 시리즈별로 있는데 천국의 계단, 가을동화, 겨울연가. 이거는 북한 주민들이 못 봤다고 하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거의 대부분이 다 봤던 드라마들이고요. 최근은 우리나라에서 방영되는 인기 있는 드라마들이 2개월, 3개월 차이를 두고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 대부분 중국을 통해서 USB나 CD 이런 기기들을 통해서 북한에 유상으로 판매되고 있는 거죠, 장마당에서. 그래서 이런 것들이 가장 또 인기가 있는데 그걸 보면서 또 북한 청년들은 남한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 남한 말을 많이 배우는데 저도 깜짝 놀랐는데 저랑 방송하는 어떤 친구가 남한에서 온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서울말을 너무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너 어떻게 서울말 이렇게 잘해?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빨리 배웠네라고 하니까 북한에서 이미 대한민국에 오기 위해서 서울말을 공부했다고 하더라고요. 따라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있을 때만 해도 2000년대 중반에는 그냥 서울말 하면 멋있어 보이고 서울말 흉내내는 정도. 멋있다, 세련됐다, 이 정도였다면 요즘은 남한으로 오기 위해서 아예 서울말을 배우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앵커]
사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처벌대상일 것 같기도 하고 또 남측 말투를 쓰는 것도 처벌된다고 들었는데 지금 어떻게 제재가 되는 걸까요?

[한서희]
요즘은 김정은 시대 들어서 반동사상법이라는 것을 새로 만들어서 남한 말을 사용하면 그것도 반동이다라고 죄를 씌울 수 있는 죄목이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오빠, 아빠, 이런 단어는 사용금지하고 사랑해, 자기야, 이런 것도 역시 남한에서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금지시키는 것으로 하고요. 심지어 핸드폰을 들고 가는데 보안원이 동무, 이리 오라우 하고 핸드폰을 그 자리에서 수색해서 볼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해서 딱히 개인의 자유라는 것도 북한은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에서도 검열을 해서 바로바로 남한 말이라든가 이런 문구를 사용하면 처벌을 받는 이런 일들도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앵커]
사랑해라는 말이 남한 말이기 때문에 처벌받는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뭐라고 하는 건가요?

[한서희]
좋아한다라고 합니다. 고백할 때 나 너 좋아하는데 우리 같이 살래?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거죠. 여기처럼 나, 너 사랑해. 이런 말은 써본 적이 없고, 북한 사람들은. 그래서 처음에 들을 때 저희도 어머, 뭐지? 이렇게. 사랑이라는 건 어버이의 사랑, 김일성, 김 부자의 사랑만 우리는 큰 사랑이라고 느꼈고 생각해왔지, 개인 간에 따뜻한, 애틋한 사랑이라고는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앵커]
참 같으면서도 다르네요.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한 번 더 해보겠습니다. 이번에 북한 정권 4대 세습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김정은의 딸 주애에 대해서는 북한 청년들, 만나보셨을 텐데 어떻게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까요?

[한서희]
저희 탈북민들이 모이면 안 그래도 김주애에 대해서 얘기를 하거든요. 저희가 지금 북한에 있을 수 없으니 북한 청년들의 얘기는 못하지만 지금 현재 탈북민들이 가족과 연락을 하거나 우리 탈북민들이 모이면 12살, 13살밖에 안 된 아이가 지금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수업을 받고 있는 게 저희의 입장에서는 정말 이해가 안 가고 더욱이 북한이라는 곳은 아직 봉건사상이 많이 지배된 곳이라 남자, 여자에 대한 격차도 엄청 심하거든요. 북한을 보면 여자가 지도자라고 이렇게 높이 간부로 되어봤자 김일성의 딸인 김경희 그 정도밖에 안 됐었던 것이고 다 여성 여맹위원장 이 정도지, 지금 김주애처럼 본격적으로 지도자, 후계자로 내세운 적은 없었거든요. 이례적인 일이거든요. 그래서 탈북민들 속에서는 김정은이 너무 건강이 안 좋으니까 더는 자기가 체제를 유지할 수 없으니 김주애에게라도 넘겨주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이 과연 될까, 저희의 입장에서는. 과연 우리가 대한민국에 와 있지만 북한 주민들이 김주애가 후계자가 되는 걸 찬성할까? 붕괴가 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라는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앵커]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북한에서 우리 쪽으로 쓰레기 풍선을 띄운다든지 아니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든지 이런 도발 행위를 할 때 북한이탈주민분들은 어떤 생각이나 이야기 나누십니까?

[한서희]
처음 대한민국에 왔을 때 그렇게 북한이 계속 도발을 할 때는 밖에 나가기조차도 싫었거든요. 제가 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살았던 곳에서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안타까웠고 속상해서 나가기 싫었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보니까 오히려 그런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북한의 의도로 보이기도 하고, 또 북한은 그런 것들을 더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해서 적들이 우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런 것들을 북한 주민들 내부에 과시를 해서 오히려 내부 결속력을 다지려는 의도도 있고 또 한쪽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서로 남남갈등으로 분열을 해서 싸우게 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탈북민들이라면 그 정도의 의도는 다 파악하고 있어서 또 남남갈등을 조장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탈북 방송인 한서희 씨와 함께 북한의 추석 그리고 상황 알아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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