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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16조 규모' 미술시장 중국서 팔리는 한국 작품...알고 보니 몰래 베낀 '짝퉁'? [이도성의 안물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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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성 특파원의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몰라도 되는데 알고 나면 '썰' 풀기 좋은 지식 한 토막. 기상천외한 이웃나라 중국,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이도성 특파원이 전합니다. "

“정말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허가도 받지 않고 이렇게 남발해서 팔 수가 있을까요?”

10년 넘게 작품활동을 이어온 화가 김물길의 말입니다. 김물길은 최근 중국에서 자신의 작품이 도용돼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영어로 작성된 제보 메일을 통해서입니다. 메일에 첨부된 링크는 한 중국 온라인쇼핑몰로 연결됐습니다. 하지만 중국 전화번호 없이는 회원가입도 로그인도 어려웠습니다.

지인의 도움을 받은 뒤에야 판매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작품 10여 점이 중국어 설명과 함께 올라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작품들의 복제품이 고작 우리 돈 1만 원이 조금 넘는 돈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원작자인 김물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는 겁니다. 중국어로 된 사이트에서 판매업체나 쇼핑몰 측에 항의 메일을 보내거나 불법 판매 신고를 하는 방법을 찾기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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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물길 인터뷰. JTBC 보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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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김물길뿐만 아니었다는 겁니다. 김물길 작품을 올린 판매업체는 '5년 이상 운영 중'이라는 인증마크를 단 채 복수의 한국 작가 작품의 복제품을 무단으로 팔고 있었습니다. 김물길은 “제보 메일이 아니었다면 나도 도용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피해 작가 중 과연 몇 명이나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업체들의 '한국 작품 훔치기'는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지난해엔 황선태 작가의 작업이 무단 복제돼 중국 온라인쇼핑몰에서 팔렸습니다. 일상공간을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뒤 LED 조명을 비춰 시간성을 더하는 작업이 허가 없이 복제됐습니다. 4년 전에도 세계적인 설치미술 작가 이재효의 작품들을 베낀 조각품이 인터넷에 나돌았습니다, 밤나무나 낙엽송 등으로 만든 설치미술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피해 작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먼저 쇼핑몰 측에 판매 게시물 삭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양식을 갖춰 신청하면 쇼핑몰 측이 검토를 거쳐 게시물을 차단합니다. 판매업체 자체를 제재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똑같은 게시물은 또다시 올리면 그만입니다. 한 중국 예술계 관계자는 “도용 업체들은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판매하는 방식을 취한다”며 “한 곳에서 막히더라도 다른 곳에서 판매하면 그만”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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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물길 작가 작품을 도용한 중국 업체가 올린 판매 게시물. 김물길 작가의 이름을 내걸로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타오바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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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용 업체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 변호사를 통해 중국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제출하는 겁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작가들 개인으로선 엄두 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한국 작가가 중국 업체를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한 사례가 나왔습니다. 한·중 예술단체가 합심해 이뤄낸 성과입니다.

중국 현지에서 소송을 도왔던 북경청년국제문화예술협회 왕지에 회장은 “증거 수집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법적 다툼을 위해선 작품을 도용한 주체를 특정해야 하는데 그 실체를 찾아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겁니다.

중국은 '문화·예술 저작물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 가입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발생한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저작권 소송을 주로 맡아온 이학민법률사무소 이학민 대표변호사는 “저작권은 작품을 창작한 시점에 권리가 생긴다”면서 “한국 작가들 작품 역시 만들어진 순간부터 중국에서 저작권이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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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 제정된 중국의 저작권법(著作權法). 중국 정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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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처럼 중국도 저작권법이 있습니다. 1990년 제정된 '중화인민공화국 저작권법(著作權法)'은 제2조에서 “외국인ㆍ무국적자의 저작물은 그 저작자가 속하여 있는 국가 또는 일상적으로 거주하는 국가가 중국과 체결한 협약 또는 중국과 공동으로 가입한 국제조약에 근거하여 저작권이 인정되는 경우 이 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제52조에서는 '저작권 또는 저작권 관련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침해 중지ㆍ영향 제거ㆍ사과 ㆍ손실 배상 등 민사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중국 형법에도 저작권침해죄(侵犯著作權罪)가 규정돼 있습니다. '타인의 저명한 미술 작품을 모방하여 제작하거나 이를 판매한 경우'도 처벌이 가능합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했다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고 '위법소득 액수가 크거나 범정이 특히 중한 경우'는 3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형을 함께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중 예술계 관계자들은 중국 내 저작권 등록을 강조합니다. 중국에서도 당연히 인정받는 권리이긴 하지만 실무적으로 중국에 저작권이 등록돼 있어야 법적 분쟁을 풀어나가는 데 수월하다는 겁니다. 왕지에 회장은 “최근 중국에선 정책적으로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면서 “소송에 들어가려면 저작권 등록을 미리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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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에 북경청년국제문화예술협회 회장 인터뷰. JTBC 보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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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앞으로 일어날지 아닐지도 모르는 피해를 염두에 두고 모든 작품을 중국에 저작권을 등록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이명옥 회장은 “작가들 개인에겐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라면서 “국가가 나서서 저작권을 등록하고 보호해주는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했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도 저작권 침해 발생에 대비해 중국 내 저작권 등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중국사무소는 저작권 등록 대리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수료도 없습니다. 중국어를 알지 못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을 통해 저작권을 인정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등록해야 할 작품이 많을수록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식입니다. 북경청년국제문화예술협회는 이를 위해 한국 관련 기관과 협의하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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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회장 인터뷰. JTBC 보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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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업체들이 한국 작품을 도용하는 건 중국에서 '팔리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작품들의 시장성이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서 인정받고 있던 셈이죠. 인터넷에서 작품 이미지를 따와 그대로 베낀 상품을 만들어 팝니다. 이들 업체가 올린 판매 게시물 중에는 '완성된 작품'이 아닌 경우도 있었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싼 가격에 빠른 시간 안에 팔기 때문에 속전속결도 돈만 챙긴 뒤 정리하는 수법입니다. 그저 있는 대로 가져와서 팔아버리는 거죠. 그만큼 한국 작품들에 대한 중국 내 수요가 크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는 미술시장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 미술 시장이 경기 침체 여파로 위축되고 있지만 중국만은 예외입니다. 아트바젤과 UBS가 펴낸 '글로벌 아트마켓 보고서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미술시장 매출은 약 650억 달러(약 85조2300억 원) 규모인데 매출 규모가 중국만 전년 대비 9%나 늘었습니다. 122억 달러(약 16조 5600억 원)로 영국을 누르고 세계 2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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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 시장 국가별 비중. 아트바젤 UBS 글로벌 아트마켓 보고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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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한국 작가들이 선제적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중국 내 활동의 폭을 넓히고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도용 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협회 등을 통해 중국 진출을 원하는 작가들의 저작권 등록을 돕고 라이센스 사업을 함께 하는 건 어떨까요. 양국 간 민간 교류를 활성화하면서 수익까지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한국 작품은 이미 수년째 중국에서 도용되고 있고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중국의 '얌체' 업체들만 재미는 보고 있습니다.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lee.dosung@jtbc.co.kr



이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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