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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민주당 지도부 만나보니 굉장히 합리적…22대 국회 기대 커” 손경식 경총 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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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연임’ 손경식 경총 회장

노동시장 선진화, 인력 운용 효율 높여

임금체계·근로시간 개편도 대화 앞장

중처법 유예 법안 불발 유감… 개정 시급

상속세·법인세 등 세제 부담 확 낮추고

최저임금, 세계화 맞춰 차등 적용 필요

‘노란봉투법’은 국내 경제·기업 악영향

여소야대 심화 불구 22대 국회 기대감

의원들 최대한 많이 만나 의견 교환

선입견 없이 설득 ‘재계 목소리’ 전할 것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17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일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17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소야대 지형이 심화한 22대 국회에 경제계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곧 개원할 22대 국회에서 친(親)기업 입법 확대를 위한 야당 설득 전략을 설명하던 중 나온 말이다. 기업인들은 21대 국회를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제정된 국회,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을 밀어붙인 국회로 기억한다. 모두 거대 야당 주도로 이뤄졌다.

오는 30일 출범하는 22대 국회는 여소야대 구도가 더욱 심화했다. 벌써 야권에선 노란봉투법 재발의를 논의 중이다.

재계 안팎에선 새 국회가 시작되면 노동개혁, 법인·상속세 개선과 같은 정부 정책의 추진 동력이 약해지고 반(反)기업법이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럼에도 손 회장은 ‘타협의 정치’를 믿는다고 했다. 그는 “(여든 야든) 근본적으로 나라가, 경제가 잘되게 하자는 데는 다들 공감한다”며 “목표가 같기 때문에 성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22대 국회 기대…선입견 배제, 설득이 중요”

이 믿음의 근거는 무엇일까. 손 회장은 “며칠 전에도 더불어민주당 주요 인사들과 만났다. 대화해 보니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상견례 차원의 자리라서 민감한 얘긴 나누지 않았다”면서도 “민주당 내 합리적인 분들이 내부에서 여론 방향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손 회장은 “총선 공약을 살펴보면 경제 활성화 방안보단 노동계 요구를 반영한 내용이 많다”며 “이에 대한 기업의 걱정도 적극 전달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결국 기업을 대표하는 우리(경총 등 경제단체)가 더 노력해야지 어떡하겠느냐”며 “결국 의원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고 서로 생각을 나누고 설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끝까지 설득하는 ‘정공법’을 예고한 것이다.

손 회장은 한국 경영계의 대표적인 원로다. 평소 ‘내편 네편’ 가리지 않는 소통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만큼 재계 목소리를 정치권에 확실하게 전할 최적의 인물로 꼽힌다.

손 회장은 22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노동개혁을 꼽았다. 손 회장은 이를 “노동시장 선진화”라고 불렀다. 고용 유연성을 높이고,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관리하도록 하고,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세계일보

손 회장은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업무능력이 떨어지거나 업무 태도가 불량한 경우 해고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파업 시에도 사업장 내 모든 시설에 대한 점거를 금지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등 제도 개선을 통해 폭력행위와 노사분쟁의 장기화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지난해 좌초된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도 노사정 대화를 통해 다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손 회장은 “지난해 3월 정부가 연장근로 단위관리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개편안을 입법 예고했는데, 노동계의 ‘주 69시간제’라는 왜곡된 여론 조성으로 제도 개선이 추진되지 못했다”며 “노사정이 함께 현재의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손 회장에겐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도 ‘선진화’해야 할 대상이다. 손 회장은 “아무리 노력해도 연공의 벽을 넘을 수 없는 임금체계로는 기업이 인재를 유치하고 이들의 잠재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 개편해 보상의 공정성과 합리성, 기업의 생산성 향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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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처법 개정 기대, “노란봉투법은 타협 불가”

중처법의 입법 보완도 시급한 과제다. 손 회장은 지난 1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 중소기업인 3000명이 집결한 때를 떠올렸다.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유예 법안이 국회에서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불발된 데 대한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손 회장은 “저도 현장에 동참했지만 우리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중처법은 50인 미만 기업까지 전면 시행됐고, 법원은 관련 판결 15건 중 두 건에 대해 대표이사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손 회장은 ‘22대 국회에서 중처법 개정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정치인들도 중소기업인들의 지지가 필요하지 않느냐”며 “어느 정도의 성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 회장이 기대하는 성과는 △준비가 부족한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시간을 주고 △경영자 개인에 대한 과도한 처벌 수준을 완화하기 위해 처벌 상한을 정하는 것이다.

입법 보완 전까진 경총 차원에서 중소기업의 안전관리를 지원한다. 손 회장은 “지난 3월 경총에 중대재해 종합대응센터를 설치했다”며 “중소기업에 컨설팅, 안전교육, 매뉴얼 보급 등 사업을 추진하고 대기업 참여를 통해 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지원할 수 있는 협력모델을 발굴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노란봉투법에 대해선 “우리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당히 크다”며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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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은 사용자와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 등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손 회장은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강성 노동운동 세력이 주도하고 있어 매우 대립적”이라며 “노동법 제도로 노조에 부여된 권리들에 비해 사용자의 대응수단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파업으로 인한 임금근로자 1000명당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는 한국이 38.8일로 미국의 4.5배(8.5일), 일본보다 194배(0.2일)였다.

◆“기업 목소리 국민 지지 얻도록 노력할 것”

이날 손 회장은 우리 기업인들이 ‘기업하려는 의지’를 높이는 유인책으로 상속·법인세제 개편을 꼽았다. 특히 상속세의 경우 우리나라의 최고세율은 50%인데, 여기에 최대주주 주식 할증 평가까지 감안하면 세율은 60%까지 뛴다. 손 회장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 수준으로 인하해야 한다”며 “과세방식도 현행 유산세 대신 유산 취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산세 방식은 피상속인 유산 전체에 대해 세금을 부여하고 누진과세이므로 금액이 높을수록 세율이 올라간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인 각각이 실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방식이다. 경총에 따르면 상속세를 운영하는 OECD 24개국 중 20곳이 유산취득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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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시작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대해서도 손 회장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단일임금을 꼭 해야만 하는지 고민해 볼 때”라고 말했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심의를 거쳐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해 차등 적용할 수 있게 하지만, 최저임금 시행 첫해인 1988년에만 적용돼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여겨졌다.

손 회장은 “최저임금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야 한다. 우리만 동일임금을 고수하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며 차등 적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주요국 가운데 일본은 지역별·특정 산업별로, 미국은 주별로, 영국은 연령별로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 회장은 지난 2월 회원사 만장일치로 네 번째 경총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손 회장은 “국민 모두가 화합해 경제발전에 매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경총 회장직을 연임하게 돼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이 크다”며 “경총에 부여된 역할과 정책들을 다시 점검하고 보완해 기업의 목소리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대담=나기천 산업부장, 정리=이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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