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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단독] 억대 공금 쌈짓돈처럼 쓰다 산업부에 적발…품질재단 '경영진 품질' 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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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이사장 등 경영진 대상 감사 진행
수년간 법인카드 및 차량, 업무와 관계없이 사용
주로 골프에...유용액만 1억2,000만 원
감사 이후 비상근 이사장에게 '수당' 신설
연간 7,000만 원에 이사회 내부서도 비판
"주인 없는 재단 돈을 경영진이 마음대로"
재단 "영업상 불가피...산업부 조치 수용"
한국일보

한국품질재단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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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로 국제표준화기준(ISO) 인증 심사를 시작해 기업 인증 업력만 30년인 한국품질재단의 내부 운영 비리가 산업통상자원부 감사에서 적발됐다. 현직 이사장, 대표 등 경영진이 몇 년에 걸쳐 업무와 관계없이 외유성 해외 출장 및 골프 등에 법인카드·차량을 쓴 액수만 1억2,000여 만 원에 달했다. 심지어 산업부 감사 이후에 비상근 이사장이 '수당'을 명목으로 연간 7,000만 원을 가져갈 수 있게 해 주인 없는 재단의 특성을 이용해 경영진이 재단 돈을 쌈짓돈으로 여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 "유용액 1.2억 원 환수하라...관련자 징계도"

한국일보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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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산업부에 따르면 감사관실은 지난해 하반기 한국품질재단 임원들의 운영 비리 의혹에 대한 제보를 바탕으로 감사에 나섰다. 감사 결과 현직 이사장, 대표, 재무담당이사 등 임원들은 법인카드 및 차량을 공휴일에 쓰거나 골프를 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와 관계없는 튀니지, 중국 출장 중에 골프를 칠 때도 재단 돈을 사용한 사실도 파악됐다.

산업부의 감사 대상 기간인 최근 5년 사이 이런 방식으로 임원들이 사적으로 유용한 재단 재산만 총 1억2,075만 원이었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쯤 현직 이사장, 대표, 재무담당이사 등 9인에게 해당 금액을 모두 재단에 되돌려주라고 했다. 이들 중 일부에게는 과실 경중을 따져 징계 조치를 내리라고도 요구했다.

한국품질재단은 해당 검사 결과에 대해 3월 재심을 요청했지만 산업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한국품질재단은 17일 열린 이사회에서 산업부 감사 결과에 대한 이행 상황을 점검했다.

감사에도 비상근 이사장 수당 '연간 7,000만 원'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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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품질재단 조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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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해당 이사회에서 비상근인 현직 이사장에게 기존 업무추진비 말고도 '연간 7,000만 원'의 수당을 주기로 결정해 이사회 내에서도 비판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영리 재단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하다 적발되니 이사회가 아예 재단 돈을 가져다 쓸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 준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재단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통상 수당은 급여를 받는 야근 수당처럼 상근 직원에게 목적에 따라 추가로 주는 돈"이라며 "구체적 목적도 없는 수당을 줄 거면 이사장을 상근직으로 바꾸고 급여를 주는 게 맞다는 문제 제기가 이사회 내에서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품질재단 관계자는 "카드로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면 기록이 남아 이사장의 활동 폭이 좁아진다"며 "조금 더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수당을 신설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품질재단은 이날 이사회 개최 과정에서 산업부로부터 추가로 지적을 받았다. 감사 결과 대부분이 임원들의 사적인 골프 회동과 관계돼 있는데 이사회를 골프장에서 열려고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산업부는 한국품질재단에 주의를 줬고 이사회 개최 하루 전인 16일 장소가 서울 강남구 한 호텔로 급히 바뀌었다.

ISO 인증 심사 선구자 명성에 금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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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ISO 인증을 포함, 한국품질재단 인증 분야가 소개된 홈페이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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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품질재단은 선진국에서 한국 수출기업에 품질경영시스템 등에 대한 ISO 인증을 요구한 1993년 국내 최초로 ISO 인증 심사 업무를 시작한 곳이다. 당시에 ISO 인증이 없으면 수출을 못 했기 때문에 1990년대에는 한국품질재단이 ISO 인증 심사를 사실상 독점해 선구자 역할을 했고 이후 후발 주자들이 나타났다.

인증업계에선 이번 내부 운영 비리와 대응 과정 논란으로 한국품질재단의 명성에 금이 갔다고 평가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남의 기업 시스템을 평가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경영 시스템이 엉망이면 안 된다"며 "신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정부나 기업들이 한국품질재단의 인증 심사를 100% 믿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품질재단 감사 결과를 담당과에 알렸고 이를 업무에 참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품질재단 관계자는 "산업부 요구 조치는 성실히 이행 중"이라며 "환수는 완료했고 관련자 징계 절차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다만 인증 건을 따내기 위해 주말 영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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