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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동문 얼굴로 음란물 만들어 퍼뜨린 서울대 졸업생들... 피해자 6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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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폐쇄성 악용해 장기 범행
한국일보

경찰이 3월 15일 오후 11시쯤 피의자 강모씨를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으로 유인해 특정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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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문과 여성 지인을 상대로 '불법 합성물'을 만들어 퍼뜨린 서울대 졸업생들이 검찰에 넘겨졌다. 피해자만 61명에 이른다. 보안이 철저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했다지만, 경찰은 피해자들의 잇단 고소에 3년간 수사하고도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사이 피해자는 더 늘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텔레그램으로 서울대 동문 12명 등 여성 61명의 사진으로 불법 합성물을 제작·유포한 서울대 학부 졸업생 박모(40)씨와 서울대 로스쿨 졸업생 강모(31)씨를 성폭력처벌법(허위영상물 편집·반포, 통신매체이용음란, 불법촬영물 소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성착취물배포) 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들이 만든 불법 합성물을 공유받아 재유포하거나 지인들을 상대로 합성물을 자체 제작해 퍼뜨린 공범 3명도 추가로 검거해 1명을 구속했다.

박씨는 2021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여성 48명을, 강씨는 2021년 4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28명의 허위 영상물을 제작 및 유포해 각각 지난달과 이달 경찰에 붙잡혔다. 조사 결과, 이들이 만든 합성물만 100건이 넘었다. 특히 박씨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포함해 불법 영상 1,852건을 유포·소지하기도 했다.

'n번방' 떠오르는 서울대판 집단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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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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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2019년 터진 'n번방 사태'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무엇보다 텔레그램의 익명성에 기대 장기간 범행을 지속했다. 서울대 동문일 뿐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은 n번방 주범 조주빈처럼 텔레그램으로만 소통했다. 강씨가 동문 여성들의 졸업·카카오톡 사진 등으로 불법 합성물을 만들어 신상정보와 함께 박씨에게 넘기면, 그는 이를 유포해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서로를 '한 몸'으로 지칭하거나 '합성 전문가'로 치켜세우며 끈끈한 유대관계를 쌓았다.

음란물 유포도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박씨는 200개가 넘는 채널방, 그룹방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해 불법 합성물을 공유했다. 조주빈이 수많은 채팅방에 번호를 매겨 성착취물을 뿌렸던 방식과 유사하다. 또 비공개 채널을 주로 이용하고, 비슷한 성향을 확인한 뒤에야 참여 링크를 공유하는 등 보안에 극도로 힘썼다. 이들은 그룹방에 초대하기 전 경찰이나 기자 여부를 캐려는 시도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범 3명은 공유된 합성물에 성기를 대고 사진을 찍는 등 음란행위도 했다.

n번방과 다른 점은 성착취물을 통한 수익 창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적 욕망' 해소가 주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강씨 등은 방에 초대할 때 금전을 요구하지 않았다. 또 아동이나 여성의 개인정보 유포를 빌미로 성착취물을 직접 제작한 n번방 범인들과 달리 피의자들이 피해자 모르게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해 유포한 점 역시 차이가 있다.

경찰, 네 차례 수사하고도 범인 특정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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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로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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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피의자들이 피해자에게 접근해 직접 통화를 시도하는 것을 역이용해 여성 수사관을 잠입시켜 덜미를 잡았다. 그러나 더딘 수사 과정은 아쉬움이 남는다. 피해자들은 2021년부터 서울 서대문·강남·관악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으나 경찰은 피의자를 파악하지 못해 수사를 종결했다. 서울대생 피해자 10명이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특정해 관악서에 단체 고소를 했을 때도 연관성 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경찰은 수사가 미진했다는 비판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청 차원에서 기술력과 추적 기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해 12월 재수사 지시를 내린 것"이라며 "끈질기게 수사했고, 여러 수사기법을 동원해 어렵게 검거했다"고 해명했다.

주범 대부분이 붙잡힌 만큼, 경찰은 불법 합성물을 재유포한 공범 추적에 주력할 계획이다. 다만 텔레그램 측이 협조에 미온적인 데다, 이용자 중 탈퇴한 계정도 있어 수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를 위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요청해 모니터링 및 삭제 조치를 하고 있다"면서 "협조 가능한 모든 기관들과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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