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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민주주의가 공기처럼 일상화됐다고? [하종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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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필자가 홍세화 선생의 장례식장에서 방명록을 적고 있다. 하종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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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지방에 가는 기차 옆자리에 훤칠한 인상의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내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교육 자료를 흘깃 보더니 “혹시 하종강 교수님이세요?”라고 묻는다. 오래전 조종사노조 활동할 때 만난 적이 있다며 무척 반가워했다. “군대 생활 하면서 세뇌됐던 생각들이 노조 활동 하면서 교육 몇번 받으니까 바로 깨지더군요”라며 말문을 연다. 사연을 들어보니 듣기 좋으라고 인사치레로 하는 말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으레 묻는 안부를 몇마디 주고받았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떨치던 무렵 휴직 상태가 길어지면서 고생했던 이야기도 했다. “지난 몇년 동안 택배 상하차, 노가다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식구들이랑 굶고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 조종사가 비행기를 못 타니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더군요. 조종사만큼 다른 분야에 무능한 직업도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말하다가 문득 목이 잠긴다.



항공 수요가 다시 폭증해서 항공사들이 조종사들을 대부분 복귀시켰는데, 조종사노조 간부들만 아직 복귀시키지 않고 있는 항공사도 있다고 한다. “노조위원장 맡았던 ○○ 선배님 아시죠? 우리 조종사들 위해서 정말 고생 많이 하셨던 분인데, 아직 회사가 복귀시키지 않고 있어요.” 듣고 있던 나의 목젖이 묵직해졌다.



조종사노조 간부가 그 정도의 불이익을 받으니 다른 직종은 말할 것도 없다. 민주노총 소속 많은 노동조합들에서는 대기업 정규직이라 해도 노동조합 간부를 맡는다는 것은 정년퇴직할 때까지 진급을 포기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은 더할 나위도 없다. 그러니 얼마 전 한 보수언론이 전태일재단과 공동기획으로 연재하는 기사에서, 전태일재단은 “전태일 정신이 시대 변화에 맞게 확장돼야 한다고 밝혔다”며 “청년 전태일을 ‘분신’이나 ‘투사’란 단어와 함께 호명하던 시기는 민주화 이전이었고,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만으로 탄압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 민주주의는 공기처럼 일상화됐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할 권리도 보장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기사 내용은 사실 오인이거나 의도적 왜곡일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민주주의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많고 노동조합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탄압받는 일은 대한민국 사회 도처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널렸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언론이 그러한 논조를 펴는 것은 노동조합이 마치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채 낡은 방식의 노동운동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비난함으로써 연성화시키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소박한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서조차 피눈물 나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노동자들을 거의 매일 만나며 미안해하는 것이 내가 겪는 일상이다. 홍세화 선생님이 활동가들을 대하는 마음 역시 그랬다. 선생님 장례식장 방명록에 보니 절친이었던 유홍준 교수가 “잘 가라 세화야!!”라고 쓴 글이 보였다. 입구에서 안내하는 이가 “하종강 선생님도 한마디 쓰세요”라고 권해서 용기를 내 그 밑에 몇자 적었다. “‘프랑스에서 홍세화처럼 사는 것보다 대한민국에서 하종강처럼 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그 말씀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두고 가신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돌이켜보니 홍세화 선생님과 같이 쓴 책이 꽤 여러권이다. 출판기념회에 오셔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실제로는 “프랑스에서 홍세화처럼 사는 것보다 대한민국에서 하종강·정태인처럼 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정태인도 같이 참여한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출판기념회 자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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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그 무렵 어느 해고 노동자가 영화 ‘라디오 스타’ 포스터를 패러디해 만들어준 홍보물이 화제가 됐다. 출판기념회가 끝난 뒤 그 포스터에 나온 모습대로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나를 목말 태웠던 정태인이 “목 부러질 뻔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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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창간 12주년 노동자투쟁 20주년 열린 강좌 ‘작은책 스타’ 포스터에 나온 모습대로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하종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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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들은 뒤부터 나 역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며칠 전 노동조합 간부들을 만났을 때도 “70, 80년대에 하종강처럼 사는 것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민주노조 간부로 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말했고, 고3 학생들을 만났을 때도 “70, 80년대에 하종강처럼 사는 것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고3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나의 “라떼는 말이야”의 화두다. 민주주의는 아직 공기처럼 일상화되지 못했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할 권리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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