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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부품·시트 하나까지…다시 쓰고 바꿔 쓰는 ‘은퇴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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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020년 9월18일 러시아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 도착한 에미레이트 항공의 에어버스 A380 여객기의 조종사가 손을 흔들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한동안 중단됐던 비행을 재개했을때 찍은 사진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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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들은 꽤 긴 수명을 갖고 있다. 1970년대 취역한 미국 보잉의 B737-200 기종은 아직 캐나다 항공사에서 운항 중이다. 이 여객기 뿐 아니라 주기적인 정비와 기체 관리를 받는 항공기는 50년을 운항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비행기를 영원히 운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부 항공기는 목적을 다하면 바로 은퇴시킨다. 퇴역 항공기들은 어디에서 어떤 운명을 맞을까?



미국에선 대부분 ‘비행기 무덤’으로 불리는 곳으로 가서 마지막 착지를 한다. 미 애리조나주 남서부 투산 외곽에 위치한 ‘피날 에어파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항공기 폐기장 가운데 하나다. 퇴역한 수천대 항공기들이 줄지어 대기하는 장면은 장관이다. 얼핏 ‘해체=폐기’로 생각하겠지만, 기체의 주요 부품들이 두 번째 생명을 얻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퇴역 항공기의 처분 작업이 한창이다. 대한항공은 최근 인천공항 정비격납고에서 기령 13년이 된 A380-800의 ‘파트아웃’(기체 분해) 작업을 시작했다. 파트아웃은 더이상 운항할 수 없는 항공기를 분해해 부품을 보관 또는 판매에 활용하는 것을 일컫는 항공 용어다. 해체 작업은 수개월이 소요된다. 에어버스가 제작한 A380은 ‘하늘 위 호텔’로 불렸던 세계 최대 크기의 항공기였다. 통상 500여명, 최대 850여명까지 수송할 수 있고, 기내에 샤워실과 라운지·면세점까지 갖출 정도로 위용을 뽐냈다.



대한항공이 이 여객기를 조기 퇴역시킨 것은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005년 처음 선보인 A380은 4개의 엔진으로 대형 여객기 중 가장 빠른 마하 0.86의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들었을 뿐 아니라 연료 효율도 떨어졌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술 발전으로 같은 장거리를 트윈젯(제트 엔진 2개 달린 쌍발기)으로 갈 수 있게 되면서 쿼드젯(엔진 4개) 대형기 시대가 저물고 있다”며 “탄소 감축 기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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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딱히 정해진 사용연한은 없다. 자동차도 수리·점검만 잘하면 10년 이상 타는데 큰 문제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여객기는 통상 20~30년 정도 운항한다. 국토교통부는 제작연한 20년 넘은 항공기를 ‘경년항공기’로 분류해 내보낼 것을 권고한다. 2022년 말 기준 대한항공은 31대, 아시아나항공은 13대의 경년항공기를 보유 중이다. 대한항공의 경년항공기 비중은 전체 보유기의 20%에 이른다. 항공안전법에는 주기적으로 경년항공기의 운영 현황, 정비 계획, 수리 내용을 보고하도록 돼 있다. 안전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체 노후화로 자칫 생길 수 있을 기계적 결함에 대비하자는 취지다.



퇴역 항공기의 운명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새 주인을 만나거나, 해체돼 새로 태어나거나, 고철로 폐기된다.



대한항공은 지난 8일 이사회를 열어 미국 항공업체에 B747-8i 5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매각 가격은 9183억원, 처분 목적은 ‘신형 항공기 중장기 도입 계획에 따른 기존 항공기 매각’이라고 공시했다. 보잉이 제조한 B747 기종은 국내 항공 여행의 대중화를 이끈 기체이기도 하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 3월 점보 항공기의 상징이던 B747 여객기를 퇴역시켰다. 25년 9개월 동안 총 운항 회수 1만8139차례, 9만6986시간을 비행했으니 임무를 다한 셈이다. 총 비행거리는 지구를 2500바퀴 돈 것과 같은 8800만㎞에 이른다. 아시아나항공 쪽은 “타 항공사에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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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리조나주 남서부 투산 외곽에 위치한 피날 에어파크에 대기중인 퇴역 항공기들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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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입장에선 퇴역 항공기를 다른 항공사에 통째로 파는 ‘통매각’이 경영적으로 훨씬 유리하다. 새 주인을 찾지 못한 항공기는 장기보관이나 해체, 부품 적출 판매라는 운명에 놓인다. 비행기를 분해 또는 해체하는 것은 건물을 철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여객기는 조종석의 항공전자장치를 비롯해 엔진, 내·외장재 등 수만 가지 부품과 고가의 품목으로 가득차 있다. 정비사들은 재인증을 받을 수 있는 품목을 가려내기 위해 항공기를 샅샅이 뒤진다.



최근 항공 업계에선 퇴역 항공기의 단순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이른바 ‘업사이클링’이다. 2021년 초 대한항공이 퇴역 항공기를 분해해 만든 제품이 출시 하루 만에 모두 팔려 화제가 됐다. 23년 동안 10만여 시간을 비행한 보잉 777 동체로 4천개 한정판 네임택(이름표)을 만들었는데, 주문량이 폭주했다. 대한항공은 그해 9월과 지난해 5월에도 보잉 747과 777을 각각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온 자재를 활용해 네임택과 골프 볼마커를 선보였다. 미국에선 델타항공이 퇴역기에서 나온 금속을 이용한 한정판 신용카드를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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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지난해 5월 퇴역한 보잉 777-200ER 항공기 자재를 활용해 만든 네임택(이름표)과 골프 볼마커. 대한항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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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재활용협회(AFRA)에 따르면, 은퇴한 항공기의 80%가량을 재활용 할 수 있다고 한다. 항공기의 오랜 역사, 복잡한 구조 만큼이나 사용처는 다양하다. 국외에서 식당, 호텔, 전시장 같은 특별한 용도로 개조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다. 대한항공은 기체 외에도 낡은 구명조끼, 기내 담요 등을 보온 물주머니나 전자기기 파우치로 재탄생시켰다. 아시아나항공은 유니폼을 활용한 여행용 파우치를 선보이기도 했다.



홍대선 선임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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