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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이슈 미술의 세계

군복 입은 BTS 제이홉 ‘3m 대형그림’, 5월 광주항쟁 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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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청년작가들의 오월 거리그림전에 나온 황은관 작가의 ‘투 더 퓨처(To the Future). 독일 기자를 태우고 80년 5월 광주의 참상 현장으로 들어가 광주항쟁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큰 역할을 한 택시기사의 사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젊은 감성으로 당시 도청 앞으로 질주하는 택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려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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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전 광주항쟁과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는 어떤 인연이 얽힌 걸까.

광주에서 태어난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정호석)이 베레모 쓰고 군복을 입은 자태로 앉은 모습을 담은 대형그림이 5월 광주항쟁 현장에 등장했다. 44년 전 계엄군과 전남도청을 지키던 시민군 사이 최후의 격전이 벌어졌던 옛 도청 분수대 근처 5·18민주광장에서 ‘오월정신, ‘꽃’ 피우다’란 제목으로 전시 중인 청년작가들의 오월 거리그림 전에 나온 작품이다.

지난해 4월 입대해 현재 강원도 육군부대에서 복무 중인 제이홉이 그림 속에서 군복차림으로 웃음지으며 왼손가락으로 ‘하트’ 제스처를 하는 모습이다. 광주의 청년작가 박성완씨는 가로세로 각 3m의 대형 천화면에 거칠게 스케치한 느낌의 디지털페인팅으로 군인 제이홉을 그려 넣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군복차림 스타의 모습을 보고 불현듯 광주항쟁 거리 그림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44년 전 광주를 짓밟은 베레모 쓴 공수부대원과 풋풋한 청년 스타병사의 싱그러운 모습이 아찔하게 중첩되는 이 작품은 광주항쟁의 과거와 현재를 낯설고 기발한 방식으로 떠올리게 한다. 고심 끝에 작가가 그렸다는 이 작품은 지난 18일 멀리 광주의 진산 무등산 정상을 배경으로 펼쳐진 도청 앞 광장의 눈부신 녹음 속에서 다른 청년작가들의 작품들과 거리를 담담하게 수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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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인 비티에스 멤버 제이홉이 하트를 띄우는 모습과 비티에스의 히트곡 ‘마시티’의 광주 관련 가사가 등장하는 박성완 작가의 거리그림 ‘마시티’. 광주 옛 도청건물 부근의 5·18민주광장에서 ‘오월정신, ‘꽃’ 피우다’란 제목으로 전시 중인 청년작가들의 오월 거리그림전에 나온 화제의 출품작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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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홉의 모습 못지않게 휘갈겨 쓴 듯한 방탄소년단의 히트곡 ‘마시티’의 광주 관련 글귀들이 눈에 선연하게 들어왔다. 극우 성향 누리꾼들이 광주를 비하하면서 사용하는 ‘7시’(방향)이라는 멸칭은어와 광주의 지역과 역사를 뜻하는 ‘062’ ‘518’이 재기로운 가사와 훈남 제이홉의 용모 사이를 맴돌면서 더욱 눈맛을 동하게 했다.

‘…나 전라남도 광주 베이비(baby)/ 내 발걸음이 산으로 간대도/ 무등산 정상에 매일매일/ 내 삶은 뜨겁지 남쪽의 열기…내 광주 호시기다 전국 팔도는 기어/ 날 볼라면 시간은 7시 모여 집합/ 다 눌러라 062-518’

지금 광주의 오월 미술은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항쟁의 주요 전장이었던 전일빌딩을 비롯한 광주 시내 전시공간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항쟁 44주년 오월미술제와 시내 외곽 광산구 동곡미술관에 차린 동학혁명 130주년 특별전은 국내 진보 미술진영의 현재진행형 작업들을 대거 보여주면서 5월 항쟁 미술의 모색과 성찰, 갱신의 노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두 전시 마당 모두 청년작가와 중견 대가들을 합쳐 모두 80여명의 신구작들이 어우러진 독특하고 새로운 틀거지의 작품 구성으로 지역의 현장 미술은 물론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오월미술제의 딸림 행사인 청년 거리 그림 전은 박 작가의 제이홉 그림 말고도 젊은 상상력이 엿보이는 문제적 수작들이 적지 않아 보고 느끼고 성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황은관 작가의 ‘투 더 퓨처’(To the Future)는 독일 기자를 태우고 80년 5월 광주의 참상 현장으로 들어가 광주항쟁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큰 역할을 한 중년 택시기사를 영화한 이야기에서 감동과 영감을 받아 만든 그림이다. 당시 도청 앞으로 질주하는 택시의 모습을 팝아트적 구도로 상상하며 그려냈는데, 기존 리얼리즘 걸개그림이나 투쟁화에서 느낄 수 없는 박진감과 특유의 구성력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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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거리그림 전에 나온 레오다브의 ‘페이스타임’. 80년 5월 최후까지 도청을 지킨 시민군 병사가 만약 오늘날 젊은이였다면 총을 들고 경계하면서도 한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통화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표현해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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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작품인 레오다브의 ‘페이스타임’은 최후까지 도청을 지킨 시민군이 만약 오늘날 젊은이였다면 어떤 몸짓과 행동을 했을까를 떠올리며 작업한 그림으로 보인다. 소총을 들고 계엄군의 진입을 경계하면서도 한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내려다보면서 가까운 이들과 영상통화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핍진한 사실적 형상으로 표현해냈다. 당대의 시대상과 지금 시대의 현실이 화면 속에 마치 영화처럼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 밖에 윤은숙 작가의 그림 ‘우연한 밭에’는 대지 위 마주 보는 거대한 두 사람의 두상을 그리면서 그들의 검은 눈과 귀를 감싼 큰 날개를 부각시킨다. 편협하게 짜인 이야기나 듣고 싶은 얘기만 듣지 말고 자유로움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자는 상징을 나타낸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민족미술인협회광주지회가 주관하는 오월미술제(1~31일)는 89년 ‘오월 전’이란 이름으로 첫 전시를 연 이래 2020년 미술제로 개편돼 올해로 36회째를 맞이한다. 항쟁 중심지였던 전일빌딩의 시민갤러리와 부근의 은암미술관, 갤러리 현에서 ‘아직 오지 않은 대동세상’이란 주제로 열리는 주전시 3개와 전남대 등 시내 여러 곳에 산재한 연대 전시 16곳, 시민 참여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다.

이현남 기획자가 총감독을 맡은 올해 전시는 핵심 화두가 ‘리부팅’이란 게 흥미롭다. 컴퓨터 등 기계를 구동하는 행위를 일컫는 부팅(booting)에 ‘Re’가 붙은 ‘Reboot’는 시리즈물의 연속성을 단절시키고, 기초 설정만 유지해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항쟁의 거점들을 이으며 저항의 이야기를 엮되 기존 항쟁 담론과 서사에 매몰되지 않고 21세기 동시대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오월 광주를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청년 작가들의 미디어아트, 설치작품 등을 통해 보여준다. 광주정신의 초석이 된 동학혁명 130주년을 함께 조명한다는 측면에서 정의로운 동물 해치나 과거 동학혁명의 내면적 기억을 떠올려낸 일부 출품작들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지난 9일부터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7월21일까지)가 열리고 있는 광주 광산구 동곡미술관 전시장도 오월 미술의 과거 뿌리라는 맥락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감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혁명을 상징하는 푸른 대나무 숲과 혁명 주역들의 사발통문 이미지들이 명멸하는 임용현 작가의 미디어아트 영상으로 시작하는 이 전시는 도입부부터 강렬한 이미지들로 채워졌다. 몸이 해체된 채 체액을 분출하는 인간 군상들의 절규같은 몸짓(정복수)과 민화산수 이미지를 배경으로 그린 2대 동학교주 최시형의 수감 상(허진), 동학 경전 ‘동경대전’ 구절을 적은 천조각을 나무뿌리처럼 늘어뜨린 설치물(정기현) 등이 단박에 눈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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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암미술관에 마련된 36회 오월전의 주요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울산 지역 작가 송주웅씨의 올해 신작 ‘낫을 벼리고’.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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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의 고갱이는 1층 안쪽 공간의 조각과 대작 그림들이다. 가운데 놓인 구본주 조각가의 대표작 ‘갑오농민전쟁3’(1994)을 중심으로 왼쪽 벽에 송필용 작가의 큰 그림 ‘땅의 역사-황토편’(1990)이 내걸렸다. 조각상 앞쪽에는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모습을 그린 천을 곡괭이와 낫자루에 걸어 실제 낫, 쟁기, 갈고리 등과 함께 펼쳐놓은 김홍주 작가의 그림 설치작품 ‘무제’(1993)가 나왔다. 더욱 안쪽의 전시공간을 차지한 민중미술 원로작가 김정헌씨의 신작 ‘미완성-동학농민전쟁’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석달여 전 출품요청을 받고 작업한 길이 7m짜리 두루마리 그림으로 과거 작가의 역작인 말목장터 감나무 그림과 동료 작가 오윤의 칼노래 판화 등 동학혁명과 연관된 그림 이력들을 한 화폭에 녹여 풀어냈다. 결국 작가는 작업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말미에 1m가량의 공백과 일부 드로잉 흔적을 남긴 미완성 상태로 작품을 내놓았는데, 이런 미완성 흔적 자체가 지금 시국과 맞물려 미묘한 감회를 자아내는 듯하다.

이밖에 광주시립미술관 3층에서 지난달부터 이달 19일까지 진행된 기획전 ‘오월예술 2024 목판화-새겨찍은 시대정신’에서는 김봉준, 홍성담 작가의 80년대 오월항쟁 판화 명작들을 비롯해 이상호 작가의 민중항쟁 연작 목판화 ‘외세막는 금강역사도’, 전정호 작가의 ‘봉기가’ 등 현지 작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수작들까지 대거 선보여 눈길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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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는 광주 광산구 동곡미술관 1층 안쪽 전시장. 가운데 놓인 구본주 조각가의 대표작 ‘갑오농민전쟁3’(1994)을 중심으로 왼쪽 벽에 송필용 작가의 큰 그림 ‘땅의 역사-황토편’(1990)이 내걸렸다. 조각상 앞쪽에는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모습을 그린 화폭 천을 곡괭이와 낫자루에 걸어 실제 낫, 쟁기, 갈고리 등과 함께 펼쳐놓은 김홍주 작가의 그림 설치작품 ‘무제’(1993)가 보인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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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미술관 1층 안쪽 전시공간을 차지한 민중미술 원로작가 김정헌씨의 미완성 두루마리 그림 ‘동학농민전쟁’. 불과 석달여 전 출품요청을 받고 작업을 시작한 7m짜리 신작이다. 결국 작가는 작업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말미에 1m가량의 공백과 일부 드로잉 흔적만 남긴 미완성 상태로 전시장에 내놓았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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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작가의 목판화 ‘외세막는 금강역사’의 핵심부분. 광주시립미술관 3층에 마련된 기획전 ‘오월예술 2024 목판화-새겨찍은 시대정신’에 나온 주요 출품작중 하나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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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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