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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천덕꾸러기’ 동양하루살이, 잠자리가 먹어치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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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해 서울 잠실 야구경기장에서 출몰한 동양하루살이. 엑스(X·옛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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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일)은 소만. 여름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여름의 기운이 아직 꽉 차지는 않았다. 낮에는 무더운 날씨였다가 저녁에는 느닷없이 부는 바람이 아직 차고 쌀쌀하다. 엊그제 강원도 산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리기도 하고, 기온이 영상 3℃까지 급격히 떨어졌다. 소만 즈음은 기온 변화가 심해 여름 속에서 때때로 추위를 느끼는 그런 때다.



좋은 날씨와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산사나무 꽃향기가 노동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준다. ‘5월의 꽃’ 메이플라워(Mayflower)는 산사나무를 지칭하는데 사람에게는 향긋한 향수가 되고, 벌이나 나비에게는 꿀을 제공하는 고마운 나무다. ‘희망’이라는 꽃말이 걸맞다. 400년 전 영국 이민자 102명을 북아메리카 대륙의 미국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까지 수송한 선박 이름이 ‘메이플라워’인 까닭도 메이플라워가 험난한 여정을 보호해 줄 거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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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는 ‘5월의 꽃’(메이플라워, Mayflower)이라고 불린다. 꽃말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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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뿐 아니라 곤충 ‘메이플라이’(Mayfly)도 5월의 이름을 딴 생물이다. 메이플라이는 일 년 내내 물속에서 애벌레로 생활하다 5월에 어른벌레가 되어 짝짓기를 위해 뭍으로 떼 지어 날아오르는 하루살이를 말한다. 하루살이는 하천이나 강바닥에 쌓인 썩은 식물 부스러기를 걸러서 먹는 1차 소비자이면서 물고기와 새의 먹이가 된다. 생태적으로 중요한 분류군이다. 계곡을 끼고 있는 연구소 주변도 요즘 하루살이가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짝짓기 춤을 추느라 하늘을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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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는 하천이나 강바닥에 쌓인 썩은 식물 부스러기를 걸러서 먹는 1차 소비자이면서 물고기와 새의 먹이가 된다. 생태적으로 중요한 분류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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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 동양하루살이가 도심 지역에 대발생하면서 해충처럼 여겨지게 됐다. 사람을 깨물 일도 없고, 병을 옮기지 않는 곤충이라고 설명을 해보지만 징그럽고 싫다는데 어쩔 수 없다. 서울 한강변의 자치구들도 벌써 동양하루살이 퇴치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사람들은 혐오스러운 벌레라며 다 없애고 싶겠지만, 곤충은 결코 만만한 상태가 아니다. 민원에 맞춰 살충제를 뿌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최악의 방법이다. 그렇다고 시민들에게 그냥 참아 달라고 부탁할 수 없으니 사람들 눈에 거슬리지 않고 하루살이도 최소한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적정 밀도’를 고민해야 한다.



자연과 사람, 곤충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거듭됐을 먹이사슬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3억 년 전 날개를 단 곤충이 처음 나타났을 때, 그 주인공이 바로 하루살이와 잠자리였다. 분류학적으로 앞날개와 뒷날개가 겹쳐지지 않는 옛날 형태의 곤충을 ‘고시류’(古翅類)라고 하는데, 오직 하루살이와 잠자리만 이 종류에 속한다. 동시대에 발생하여 같이 살았던 곤충이고 생활 방식도 거의 같다. 물속에서 애벌레 생활을 하고 뭍으로 올라와 짝짓기 하는 시점도 동일하다. 하루살이와 잠자리는 발생 시기나 행동 양식도 비슷하고, 서식지 범위가 일치하므로 충분한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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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측범잠자리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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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측범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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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가 한참 나오는 요즘 쇠측범잠자리도 때를 맞추어 전국에서 절정이다. 발생량이 어마어마해 쇠측범잠자리를 ‘메이드래곤플라이’(Maydragonfly)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쇠측범잠자리들은 중간 크기이지만 매우 빨리 날고, 사납고 난폭하다. 물속에서 애벌레는 애벌레대로, 육지로 올라온 잠자리는 잠자리대로 동양하루살이를 먹어치우는 포식자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동양하루살이가 대거 출몰하는 지역을 직접 조사해 보지 않았지만, 강 주변 개발 사업으로 하루살이만 살 수 있는 환경 조건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쇠측범잠자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추가적으로 조성하면 하루살이의 밀도 또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쇠측범잠자리를 ‘구원 투수’로 활용해 동양하루살이의 개체 수를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고려할 만하다.




소만 즈음에는 보통 개구리의 대명사인 참개구리도 본격적으로 알을 낳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변온동물인 개구리는 지극히 좁은 온도 범위에서만 깨어나 짝을 짓고 알을 낳기 때문에 온도가 중요하다. 물이 따뜻하다 싶은 25℃ 내외일 때 참개구리나 금개구리가 비로소 알을 낳는데, 모내기를 시작하는 온도와 참개구리 산란 적정 온도가 거의 같다. 연구소에서는 멸종위기 곤충 물장군 애벌레의 먹이로 사용하기 위해 참개구리 올챙이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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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개구리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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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사이 월동에서 깨어난 산호랑나비, 꼬리명주나비, 호랑나비가 낳은 알이 벌써 애벌레가 됐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진주알 같던 애호랑나비의 아름다운 알이 시커먼 애벌레로 변한 것. 애벌레로 월동했던 왕오색나비도 이미 번데기로 변태를 하였다. 모든 생물들이 ‘번식’을 향해 드라마틱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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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랑나비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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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명주나비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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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랑나비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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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색나비 번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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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충남 아산시에서는 연구소에서 1년여 동안 마음 졸이며 키운 멸종위기종 물장군 방사 행사가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물장군 70마리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방사하기 사흘 전부터 봄비가 내린 터라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깊었고, 원색의 노란 꽃창포가 활짝 펴 황홀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방사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이날의 백미는 행사에 참석한 아이들이었다. 노란 모자를 쓴 아이들은 노란 병아리 같았다. 물장군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멸종위기종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의 성숙한 모습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감동했다. 생태적 약자인 멸종위기종을 가여워하고 기꺼이 도와주려는 ‘긍휼지심’이었을 것이다. 7살 정도면 이해하는 것이 생명과 자연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장군을 놓아주면서 친한 친구와 헤어지면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듯 아이들이 소리쳤다. “물장군아, 잘 가! 다시 만나자!”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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