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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한국상담심리학회] AI, 너는 누구에게 심리상담을 받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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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영석 한국상담심리학회 법제화 위원회 위원 (연세대 교수)


파란불로 가득한 주식 창을 바라보면서 인공지능(AI)에게 물어봤다. “5월엔 어떤 주식을 사면 좋을까?”, “저에겐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공부하고 자신이 없을 때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세요”
AI는 몇 가지 투자 원칙도 제시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할 것을 권유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투자할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재정 건전성 등 펀더멘털에 주목하되 나의 재정 상태와 위험 감내력 또한 고려하라고 제언했다. 호기심에 던진 질문이지만 AI는 신중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답변을 제공했다.

이번에는 이 기사의 내용과 관련 있는 질문을 했다. “심리정서적인 문제가 있으면 너는 누구한테서 도움을 받고 싶니?” AI에게 심리정서적인 문제가 있을까 싶었지만 어떤 답이 나올지 궁금했다. AI는 솔직했고, 분명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내놨다. “저 스스로에게는 도움을 구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의식이나 감정, 개인적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심리 정서적인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면 자격을 갖춘 정신건강 전문가, 이를테면 심리학자·정신과 의사·상담사를 찾아가라고 추천하겠습니다”

요점은 심리정서적인 문제가 있으면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라는 것이다. AI의 답변을 두어 번 비틀어서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상담을 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AI는 전문성 부족이 해(害)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심리학·상담학, 또는 정신의학 분야에서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심리정서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효과적인 개입 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잘못된 정보나 조언을 제공할 수 있고,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개입을 할 수 없어서 결국 부정적인 사고 패턴이나 행동이 지속되는 등 심리정서적인 문제가 오히려 악화될 수 있습니다”

전문성이 결여된 사람이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면 이로워야 할 상담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또 다른 윤리적인 문제들을 언급했다. “심리 상담할 때는 비밀보장, 적절한 경계 유지 등 복잡한 윤리적인 현안들이 포함돼 있어요. 윤리 지침을 이해하고 이를 이행하려는 책임 의식이 없는 채 상담을 제공한다면 비윤리적인 심리상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움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와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상담 관련 민간자격증의 수가 수천 개에 이르고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상담을 받은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여러 경로를 통해 듣는다. AI가 경고하듯 상담은 윤리적 민감성을 기반으로 한 전문적인 행위다.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은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일반대중이 자격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으로부터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게 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AI는 이 난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상담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상담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법률로 정해야 합니다. 법률에는 어떤 교육과 훈련을 얼마만큼 받아야 하는지, 그런 자격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떤 처벌이 주어지는지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심리상담이 법제화돼야 한다.

“법이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하고, 시험을 통과해서 역량을 입증해야 합니다. 심리상담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는 기관을 인증하는 제도 또한 마련해서 교육과 훈련이 적절한지, 피교육자들에게 충분한 지원이 제공되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AI는 심리상담의 법제화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의 표준화와 인증제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어진 AI의 제언은 허를 찔렀다. “또한 전문가로부터 심리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상담을 받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신뢰할 수 있는 자격증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심리상담사의 자격을 확인할 수 있는지 적극 알려야 합니다”

심리상담 서비스의 특징, 자격과 관련된 일반대중들의 문해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AI의 조언은, 현재 심리상담 법제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지난 몇 년간 심리상담 법제화는 학계와 상담 종사자, 관련 정부 부처 및 입법 기관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견과 갈등이 발생했고, 그 중심에는 ‘누가 (심리)상담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AI가 툭 던진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심리상담 법제화를 위해 상담 관련 협회나 단체들은 긴밀히 협력해서 상담 실무, 윤리강령 등을 마련하고, 자격을 갖춘 상담사들에게 지원과 자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심리상담 법제화는 국민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최우선시하면서, 고도의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AI가 단 몇 초 만에 답을 내놓은 것처럼 전문적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특정 학문 분야에 국한돼 있지 않다. 특정 학문 영역의 전문성만을 인정하고 이를 법률로 보장받으려 한다면 직역 간 갈등으로 이어져 심리상담 법제화의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법제화는 심리상담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마지막 단계다. 이해당사자들의 소통과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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