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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신군부 쿠데타·광주 진압 방조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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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존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진압을 방조한 존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사망했다. 향년 95.



미국의 부고 전문 사이트인 레거시닷컴은 위컴 전 사령관이 지난 11일 애리조나주 오로밸리에서 사망했다고 17일 전했다.



위컴 전 사령관은 1979~83년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신군부 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지켜보고 미국과 미군의 대응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군부의 병력 동원을 통한 쿠데타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저지하지 않았다.



위컴 전 사령관은 이뿐 아니라 ‘광주의 질서 회복’에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아들여 20사단 출동에 동의하는 등 신군부의 행동을 방조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를 비롯한 미국 정부 쪽은 신군부의 행동에 비판적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으나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정점으로 한 세력의 권력 장악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들과 협조하는 게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위컴 전 사령관은 광주 시민들에 대한 신군부의 무력 진압이 개시되기 직전인 1980년 5월19일 해럴드 브라운 당시 미국 국방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우리는 전두환과 그 동조자들에게 권력의 통제권이 넘어간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전두환에 의해 정부가 움직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게 “미국의 중대한 안보 이익”을 위한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1983~87년 미국 육군참모총장까지 역임한 위컴 전 사령관은 광주 학살에 대한 자신의 책임 문제를 일부라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1988년 국회의 광주 청문회에서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국대사와 함께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출석을 거부했다. 2007년에는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은 한국 당국자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 즉 본질적으로 국내 문제”였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1980년 광주에서 공수부대가 진압 작전에 나선 것을 알고 한국군 쪽에 항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쪽이 이미 공수부대의 이동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위컴 전 사령관은 1980년 8월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전두환 대장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며 한국의 “각계각층 사람들이 마치 레밍(나그네쥐)떼처럼 그 뒤에 줄을 서며 추종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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