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어렵다, 그래서 멋지다…어쩌면, 도전 같은 취미 ‘독서’[정우성의 일상과 호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속 화려한 미디어 세상에 ‘끌려가는’ 우리…이따금, 펼치고 읽는 ‘능동적 노력’도 해보자

경향신문

ⓒSincerely Media Unsplash


책의 운명은 언제나 조금 외로웠다.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는 것만큼 지루한 일이 또 있었을까? 독서는 진부하면서도 귀한 취미였다. 세상의 거의 모든 비밀과 삶의 비법들이, 온갖 고민에 대한 해법과 다른 인생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는 방편들이 책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렵다. 읽기도 어렵고 읽어도 어렵다. 그 시간을 쉽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은 점점 늘었다. 그래서 읽지 않는다. 책은 버려졌고 독서는 거의 누구의 취미도 되지 못했다.

조사 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 제목은 2023년 국민 독서실태였다. 2년에 한 번씩 하는 조사. 성인 5000명과 초·중·고등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청소년은 나쁘지 않았고 성인은 참담했다. 2022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성인 종합 독서율은 43%로 조사됐다. 직전 조사에 비해 4.5%포인트 감소한 수치였다. 이건 무슨 뜻일까. 대한민국 성인 중 절반 이상, 그러니까 약 57%가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의 비율만 중요한 게 아니다.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의 수치도 낮았다. 이 수치를 종합독서량이라고 한다. 지난 1년간 읽었거나 들어본 일반도서 권수를 뜻하는 수치다. 이 역시 0.6권 줄어 3.9권에 그쳤다.

성인의 57%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는데, 읽었거나 들어본 책의 권수도 3.9권에 그쳤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성인의 일상에 책이라는 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책’을 ‘아이돌’로 바꿔봐도 그보다는 높은 수치가 조사됐을지 모른다. 어땠을까? 지난 1년간 들었거나 들어본 아이돌 그룹의 이름과 노래 제목은 몇이나 아느냐고 묻는다면. 특히 요즘 같은 때, 여러 가지 의미로 뉴진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책과 음악을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어디에서나 들리지만 직접 집어 들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거니까. 사실은 책 읽기의 어려움과 멋짐이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다. 책은 알아서 펼쳐지지 않는다. 책과 독서를 포함하는 문장에는 수동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래는 들리고 영상은 보이지만 책은 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읽어야 한다. 내가, 펼쳐, 읽어야, 비로소 읽히는 것이 책이다. 능동태다. 다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행위이자 시간이다.

하지만 세상은 누군가 혼자인 장면이 좀 이상해 보이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빠르고 강력하게 진화해 왔다. 그게 지난 10여년간의 혁신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에서 최초의 아이폰을 꺼냈던 건 2007년, 한국에 출시된 건 2009년이었다. 스마트폰은 거의 모든 개인에게 각각의 세계를 열어놓고 알고리즘으로 묶어 두었다. 컴퓨터의 풀네임이 ‘퍼스널 컴퓨터’였고, 줄여서 PC가 됐던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개인화였다. 여기에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개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하고, 그래야 좋은 세상이 열릴 거라고 웅변하는 플랫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은 2004년, 트위터(현 X)는 2007년, 인스타그램은 2010년에 탄생했다.

그땐 그 무한하고 자유로운 연결들, 소셜미디어 회사들이 세상을 구원할 것 같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 혁명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은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시위 소식을 공유하고 참여를 확대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립되었을 때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통해 전해지는 장면들은 서로를 위한 정보이자 유대였다. 아름답고 강력한 능동태의 집합이었다.

당연히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두말하면 입 아픈 소셜미디어와 알고리즘의 폐해들. 소셜미디어는 또한 폭력적이고 유해하면서도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공해에 가까운 콘텐츠들이 무한히 공유되는 판이기도 했다. 이 모든 유익함과 더러움을 매일 접하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그 작디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헤어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 유려한 화면 안에 정말이지 다채롭고 유익하면서도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속수무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에 능동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끌려가는 것이다. 유려하고 현란하게.

성인들이 책을 읽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로 답한 게 바로 책 이외의 매체와 보내는 시간이었다. 스마트폰, TV, 영화, 게임 등과 함께 보내는 시간 때문에 책을 펼칠 수 없다는 얘기. 이렇게 대답한 성인의 비율이 23.4%였다. 가장 큰 이유로 대답한 것은 역시 일이었다. 너무 바빴다. 24.4%가 일 때문에 독서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수치를 통해 대한민국 성인들의 가장 일상적인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가까스로 퇴근해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TV를 벗 삼아 마침내 휴식을 취하다 홀린 듯 잠드는 밤.

매일매일 치열하고 고단한 일상에 능동태의 에너지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퇴근 후에도 다양한 자기계발과 경제 활동에 여념이 없었던 일상에 ‘왜 독서를 하지 않습니까?’ 질문하는 것도 좀 잔인한 일 아니었을까. 독서라는 것은 어쩐지, 안 하면 좀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뒤처지는 것 같아 착잡하기도, 억울하기도 해서다.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지난 4월25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4 대한민국 웰스리포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자들의 연간 독서량은 약 10권. 재산 100억원 이상 슈퍼리치들의 독서량은 연 20권으로 조사됐다. 부자 아닌 사람들의 독서량은 약 6권. 부자들의 60% 수준이었다고 한다. 부자라서 책 읽을 시간이 많은 건지, 책을 많이 읽고 필요한 일에 집중하다 보니 부자가 된 건지.

알고 싶지 않다. 부자가 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야말로 월 1000만원 버는 비결을 당신한테만 알려주겠다는, 알맹이는 비었는데 이상하게 달변이기만 한 유튜브 클립 같다. 그 전에 묻고 싶어졌다. 그렇게 다 같이 부자가 되어야 해? 총자산 30억원을 향해 매일매일 달려야 해? 독서는 대체 무엇을 위한 걸까? 국가 주도의 통계가 존재하고, 독서량이 낮으면 대책을 강구하고, 금융연구소 조사에서는 부자들과 일반인(?)의 독서량을 비교한다.

누구나 어제보다 잘 살고 싶어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 노력한다. 그래서 잠을 줄인다. 운동이나 악기를 하나 더 배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술 한 잔 나누기도 하고,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그렇게 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학자 헬가 노보트니는 “휴식은 나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 사이의 일치를 뜻한다”고 말했다. 쉬었다는 감각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능동태여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이 늘 능동태일 수도 없는 거 아닌가. 스와이프하다 보면 30분이 훌쩍 넘도록 쇼트폼 콘텐츠의 현란함에 빠져도 가끔은 괜찮지 않나. 평생 그러겠다는 것도 아닌데.

쉬운 것도 달콤한 것도 너무 많다. 실은 책 읽기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통계들을 보면서 생기는 조바심의 결과로서의 독서가 아니라 그냥 유튜브 앱을 여는 것 같은 느낌의 독서. 모든 책이 양서가 아닌 것처럼, 스마트폰 안에 있는 모든 콘텐츠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약간의 도전이 필요한 것이다.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일말의 적극성을 기반으로 조금 더 성장하고 싶어서 능동태와 수동태 사이를 오가며 다만 노력하는 것이다. 독서도 성장도 멋진 일이다. 하지만 세상 멋진 일 중에 쉬운 일이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정우성

경향신문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


정우성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윤 대통령의 마음 속 키워드는? 퀴즈로 맞혀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