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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아시안컵 우승’ 북한 여자축구단…그 뒤 20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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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3년 여자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뒤 귀국해 환영을 받고 있는 북한 여자축구 대표 선수들. 영화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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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출신 밴드 아하(a-ha)의 대표곡인 ‘테이크 온 미’(Take On Me)는 단순한 멜로디와 흥겨운 리듬으로 전세계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북한에서 이 곡이 연주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묘한 당혹감을 느낀 이유다. 1980년대 청년들의 자유와 사랑을 상징하는 팝송이 북한에서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되다니. 내가 흥얼거리며 몸을 들썩였던 그 음악에 그들도 리듬을 타고 있었던 건가? 도대체 나는 북한 사람들은 왜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한동안 글로벌 다큐멘터리 신에서 북한은 매력적인 주제였다.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에 대중적 관심뿐만 아니라 국제 아트영화 신의 주목을 받기가 용이했다. 북한도 외국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방문을 반기기도 했고 때로는 영화인들에게 접촉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아마도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자신들을 향한 세계의 온갖 억측과 오해를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북한을 다룬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북한 체제에 대한 고발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심지어 몇몇 작품은 ‘몰래카메라’를 동원해 체제의 민낯을 폭로하는 데 열중했다. 북한의 타자화와 식민화된 시선과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성찰은 이와 같은 작품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몇몇 작품은 체제나 이념 이면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에 천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체제 고발이 아닌 북한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의식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를 만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팬데믹의 여파이기도 하지만 체제 이면의 사람을 주목하는 영화인이 드물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한겨레

‘...넷, 다섯, 여섯...’이라는 다큐멘터리 제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북한 전 여자축구 대표 선수들. 이 영화의 전편 제목이 ‘하나, 둘, 셋’이다. 영화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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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여성 감독의 20년 작업





이런 맥락에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소개한 ‘...넷, 다섯, 여섯...’(브리기트 바이히 감독, 2023)은 북한 여성들의 생생한 삶과 변화된 의식을 담아낸 수작이다. 감독은 이미 북한 여자 축구단을 주제로 첫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하나, 둘, 셋’(2009)을 제작하였고, 이번 작품은 그것의 후속편으로 주요 인물인 라미애·리향옥·리정희·진별희의 은퇴 이후의 삶을 담아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 여자 축구는 2003년 여자 아시안컵에서 우승했을 뿐만 아니라 2007년 여자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를 정도의 실력을 갖춘 팀이었다. ‘하나, 둘, 셋’이 2003년부터 2008년 사이 북한 여자 축구단의 활약상에 주목했다면 ‘...넷, 다섯, 여섯...’은 이후 네명의 개인적 삶과 그녀들이 국가 서사에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북한의 텔레비전 연속극 ‘우리 여자축구팀’의 장면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북한에서 영화 작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더더욱 힘겹다. 북한 당국이 어디를,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세세하게 통제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바이히 감독은 ‘오스트리아 영화 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첫번째 영화를 만들 때 도시를 가득 채운 건물, 동상, 선전물, 지도자의 사진 등을 ‘온전하게’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등장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도시의 경관 중 일부가 잘리거나 비스듬하게 촬영되곤 했는데 촬영을 허가한 북한 당국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이 20여년 동안 이 작업을 지속한 이유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각자 나름의 삶에 충실한 “매혹적인 네 여성들”을 알려야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넷, 다섯, 여섯...’은 네명의 은퇴한 여성 축구인과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카메라에 잡힌 그녀들의 후면에는 언제나 그렇듯 북한 지도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자연스러운 표정의 그녀들은 자신들을 쫓아다녔던 수많은 카메라와는 달리 감독이 자신들의 모습을 찍어서 나쁘게 쓰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며 웃으며 회고한다. 신뢰관계가 형성된 만큼 자신들의 고민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큰 틀에서는 어려운 환경임에도 국제경기에서 승리하여 “경애하는 지도자와 국가”의 은덕에 보답했다는 결론이지만 자신들의 조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외국 선수단이 “칼로리를 맞춘 음식”과 “과학화된” 훈련으로 준비해온 것과는 달리 자신들은 “도대체 이런 것을 먹고 어떻게 1등을 하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안 좋은 환경에서 훈련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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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화한 북한’ 다시 생각하게 하는





한겨레

2007년 여자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오른 뒤 북한에서 발행된 기념우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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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다수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북한 사람들은 마치 앵무새처럼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외쳐댔는데 이것이 오히려 북한 체제를 극악한 전체주의 국가이자 이곳의 사람들을 힘없는 희생자와 피해자로 단순화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반면에 이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은 솔직하게 북한의 취약성을 인정함으로써 북한을 둘러싼 단순화된 이미지를 해체하고 북한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주체성을 마주하게 한다. 그들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여느 누구와도 다르지 않다는 점, 그들도 우리처럼 힘겨운 삶의 조건에 헉헉거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희망을 지켜내고자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확인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영화는 그녀들의 삶이 여느 여성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축구를 시작할 때 여자가 무슨 운동이냐는 온갖 반대를 무릅썼다는 경험도 그러하고, 운동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외모를 꾸미는 일에도 열심이었던 모습들, 은퇴 이후 새로운 경력에 매진해야 했기에 임신중단을 결정해야만 했던 과정들, 임신중단 이후 아이가 없는 여성을 향한 주변의 눈초리에 주눅 들면서도 어떻게든 가정과 사회적 성공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모습까지 여성들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해봤음 직한 상황을 북한의 그녀들도 똑같이 겪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교차편집으로 등장한 네 여성이 만들어낸 작지만 의미 있는 각자만의 성취는 그 자체로 숭고함을 느끼게 해준다. 고군분투하는 그녀들의 얼굴은 정권, 이데올로기 등으로 단순화된 북한을 다양한 사람들의 복잡한 공간으로 재사유하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영화 속 북한은 결코 우호적이거나 정상적인 국가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작은 친절과 진지한 삶의 자세를 통해 또 다른 북한을 드러낸다. 영화는 교류와 협력이 끊어져버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북한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들’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그렇다면 작금의 적대적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만들기 위한 시작으로 온갖 감정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잊히다 못해 가면을 씌워 하나의 모습으로 단순화시킨 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되새기는 것으로 단절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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