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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무능한 통치로 러시아 제국의 몰락을 가져온 '선량한 암군'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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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 출생

뉴스1

니콜라이 2세 가족사진. (출처: Boasson and Eggler St. Petersburg Nevsky 24., 흑백사진(1913),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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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68년 5월 18일, 러시아의 10대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출생했다. 그는 러시아 제국의 군주로 군림했으나 무능한 정치력으로 전제군주정을 고집하다가 혁명 세력에 밀려나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차르(황제)가 됐다.

니콜라이 2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차르 알렉산드르 3세와 황후 마리아 페도로브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군사 교육을 받았고,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였다. 1894년에는 헤센의 알리체 대공녀와 결혼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니콜라이 2세는 1894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 차르로 즉위했다. 그는 전제 군주로서 통치했으며, 자신의 권력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통치 기간에 러시아는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됐지만, 동시에 빈부격차와 사회 불안도 심화됐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는 니콜라이 2세의 권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이 패배는 1905년 분노한 노동자들기 봉기한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이어졌고, 니콜라이 2세는 일부 권한을 양보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전제 통치로 돌아왔고, 희대의 요승 라스푸틴을 측근에 둬 국정 농단을 방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니콜라이 2세의 통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러시아 경제를 파괴했고, 민중은 도탄에 빠졌다. 사회 불만이 극에 달해 일어난 1917년 2월 혁명은 니콜라이 2세를 퇴위시켰고, 그는 가족과 함께 우랄산맥으로 추방됐다. 이듬해인 1918년 7월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은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도하는 볼셰비키 세력에 의해 처형됐다.

그의 죽음은 로마노프 왕조의 종말을 의미했으며, 동시에 러시아 역사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무능하고 독선적인 통치자로 간주되기도 하고, 인품은 선량하고 신사적이었으나 격변의 시대 속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불운한 지도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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