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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통념 깬 사나이는 누구?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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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레버쿠젠의 사비 알론소 감독
50경기 무패...유럽서 최다 연속 무패 신기록
리그 이어 UEL, DFB-포칼 우승 시 '무패 트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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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알론소 레버쿠젠 감독이 지난 6일(한국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크의 도이체 방크 파르크에서 2023~24시즌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레버쿠젠은 5-1로 대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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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신은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유럽리그에서 전인미답을 달성할 지도자가 탄생했다. 그것도 40대의 젊은 나이로 독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한 남자, 스페인 출신의 사비 알론소(43) 레버쿠젠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2022년부터 레버쿠젠의 지휘봉을 잡은 알론소 감독은 올 시즌 '무패 트레블(3관왕)'이라는 대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분데스리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경기 등을 포함해 공식전 '50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레버쿠젠은 현재 41승 9무로 개막 이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단 3경기뿐이다. 18일 아우크스부르크와 리그 최종전을 비롯해 23일 아탈란타(이탈리아)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결승, 그리고 카이저슬라우테른(2부리그)과 벌이는 독일축구협회(DFB)-포칼 결승전이다.

우선 알론소 감독은 지난달 리그 5경기를 남겨두고 레버쿠젠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팀이 1904년 창단한 이래 120년 만의 첫 우승이다. 현재 리그 27승 6무인데, 남은 건 완전무결한 무패 우승을 이루는 일. 지금까지 분데스리가에서 무패 우승을 달성한 팀은 전무하다. 아우크스부르크와 리그 최종전에서 이기거나 비기면 리그 무패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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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한국시간) 독일 레버쿠젠의 바이아레나에서 열린 2023~24시즌 분데스리가 레버쿠젠과 베르더 브레멘 경기에서 레버쿠젠이 5-0으로 대승해 리그 조기 우승을 확정지은 뒤 선수들이 사비 알론소(가운데) 감독에게 맥주를 뿌리며 자축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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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유럽클럽대항전 출범 이래 공식전 최다 연속 무패 기록도 갈아 치웠다. 종전 기록은 1963년 12월부터 1965년 2월까지 축구계 레전드 에우제비우가 활약했던 벤피카(포르투갈)의 '48경기 무패'였다.

알론소 감독은 2개의 우승 트로피를 더 가져오려 한다. 차범근 시대 이후 36년 만의 유럽대항전인 UEL 우승에 도전한다. 레버쿠젠은 1987~88시즌 UEL의 전신인 UEFA컵에서 정상에 오르며 첫 유럽대항전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또한 1992~93시즌 이후 31년 만에 DFB-포칼 우승도 노린다.

이쯤 되면 알론소 감독은 기록을 파괴하는 지도자로 보인다. 경기 내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그도 지난 13일 보훔전을 승리하고 50경기 무대를 달성한 뒤 "이번 결과에 만족한다"며 "우리는 패배 없이 타이틀을 가져오는 대단한 목표를 코앞에 뒀다. 이번 시즌을 역사적인 시즌으로 만들겠다"며 무패 우승의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빅클럽·국가대표팀의 레전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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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축구대표팀에서 활약한 사비 알론소(오른쪽) 레버쿠젠 감독과 사비 에르난데스(왼쪽) 바르셀로나 감독.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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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는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통념이 있다. 그런데 이 통념을 깬 이가 알론소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론소 감독은 유럽의 빅 클럽과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레전드'로 통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축구 지능'이 뛰어난 선수로도 유명했다. 넓은 시야로 패스 한 번에 공격을 풀어주는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했다. 중원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공수를 이끌었는데, 이는 지금의 '오프 더 볼(공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움직임)'이 뛰어난 선수였다. 위치 선정이 탁월했던 그는 뛰어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공을 배급하며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정확하고 감각적인 롱패스 능력은 그가 레전드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면서 그는 스페인 라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했다. 레알 소시에다드(스페인·1999~2004)에서 프로 데뷔해 리버풀(잉글랜드·2004~09), 레알 마드리드(스페인·2009~14), 바이에른 뮌헨(독일·2014~17)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레알 소시에다드의 주전이 된 알론소 감독은 2002~03시즌 돌풍을 일으키며 팀이 라리가 준우승을 일구는데 기여했다. 당시 라리가 최우수 스페인 선수로 선정됐고, 스페인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정도로 스타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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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스페인 축구대표팀. 사비 알론소(윗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해 사비 에르난데스(아랫줄 왼쪽에서 두 번째), 페르난도 토레스(윗줄 오른쪽), 카를레스 푸욜(아랫줄 왼쪽) 등이 포함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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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영국 루턴의 케닐워스 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3라운드 루턴 타운과 리버풀의 경기에서 리버풀의 사비 알론소(왼쪽)가 루턴 타운의 앨런 구달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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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은 2003년 이천수가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해 알론소 감독과 함께 뛰었다. 이천수는 알론소 감독을 보고 "스피드는 조기축구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패스하는 걸 보고 주전인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패스에 있어선 알론소 감독을 따라갈 선수가 없었다.

리버풀로 이적한 뒤에는 스티븐 제라드(현 알 에티파크 감독)와 그라운드를 누비며 호흡했다. 리버풀에서 통산 209경기 20골 19도움을 올리며 활약한 알론소 감독은 팀의 2004~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 2005~06시즌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제라드 감독은 "알론소는 내가 호흡을 맞춘 최고의 미드필더"라고 말할 정도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알론소 감독은 팀의 중심이었다.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사비 에르난데스(현 FC바르셀로나 감독)와 중원을 책임졌다. 알론소 감독은 후방에서 수비와 더불어 롱패스로 공격에 가담했다면, 에르난데스 감독은 중원에서 전진하며 빠르고 짧은 패스로 공격을 이끌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통산 233경기 6골 30도움을 올린 알론소 감독은 이곳에서 UCL 우승은 물론 리그 첫 우승(2011~12시즌)까지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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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알론소 레버쿠젠 감독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 국가대표로 출전해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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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 감독의 진가는 그가 이적할 때마다 나타났다. 이전 팀들이 그의 공백으로 허덕이는 모습을 보여서였다. 그가 리버풀을 떠난 뒤 리버풀은 리그 7위로 떨어져 UCL 출전권을 따지 못하는 충격에 빠졌다. 레알 마드리드도 그가 뮌헨으로 옮긴 뒤 롱패스의 그늘을 떨쳐내지 못한 채 부진했다. 루카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 등이 알론소 감독의 공백을 메웠지만 수비 불안은 어쩔 수 없었다.

알론소 감독은 스페인 국가대표 선수로도 공적을 세웠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8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 등 규모가 큰 메이저 대회에서 3연패를 일궈냈다. 에르난데스, 세르히오 부스케스와 함께 중원을 책임지면서 얻은 성과였다. 탄탄한 수비력과 롱패스에 의한 공격력은 알론소의 전매특허가 됐고, 한 시대를 풍미한 월드클래스로 이름을 남겼다.

청출어람...좋은 지도자 될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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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알론소 레버쿠젠 감독이 지난 3월 30일(한국시간) 독일 레버쿠젠의 바이아레나에서 열린 호펜하임과의 2023~24시즌 분데스리가 홈경기에서 팬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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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 감독은 현재 '명장'으로 떠올라 빅클럽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감독이 떠나겠다는 의사를 보였던 뮌헨과 리버풀, 바르셀로나 등 많은 클럽에서 그를 탐냈다. 짧은 시간 그가 이룬 업적이 실로 어마어마해서다. 알론소 감독은 1부리그 지도자로 첫발을 내딛고 엄청난 대업을 이룬 레버쿠젠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낼 전망이다.

돌이켜보면 알론소 감독은 좋은 지도자가 될 운명이었다. 선수 시절 라파엘 베니테스(스페인), 카를로 안첼로티(이탈리아), 조제 무리뉴(포르투갈), 펩 과르디올라(스페인), 루이스 아라고네스(스페인) 등 명장들에게 지도를 받았다. 가장 영향을 받은 스승은 뮌헨 시절 함께한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다. 그가 레버쿠젠에서 선보인 전술만 봐도 '과르디올라식 축구'와 비슷하다.

알론소 감독은 정교한 전술로 경제적인 축구를 선보인다. 수비와 중원의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수적 우위를 점한 뒤 빠른 패스와 공간을 활용한 빌드업이 그것이다. 공을 소유했을 때는 상대 수비를 끌어들여 중앙과 측면에 공간을 만들어 득점 찬스를 노리고, 공을 없을 땐 '5백'을 방불케 할 정도로 타이트한 두 줄 수비를 보여준다. 이는 현대축구가 추구하는 콤팩트한 전술로, 수준 높은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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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 과르디올라(오른쪽)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 지난달 1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2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과의 홈경기 도중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그 옆에는 미켈 아르테타 아스널 감독이 서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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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건 알론소 감독은 레버쿠젠을 불과 1년 반 만에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현역 은퇴 후 레알 소시에다드 유소년 코치직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9년 레알 소시에다드의 하위리그 팀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지난 시즌 헤라르도 세오아네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뒤 레버쿠젠에 부임해 첫 1부리그 감독이 됐다. 부임한 이후 알론소 감독은 그해 레버쿠젠을 리그 6위로 마무리하며, UEL 진출권 획득에도 성공했다. 올 시즌 돌풍을 예고한 시동을 건 셈이다.

결국 레버쿠젠의 전술은 알론소 감독 자신과 흡사하다.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뛰었던 움직임을 그대로 팀에 접목시켰고, 정확한 패스 하나로 골을 결정짓는 모습을 보였다. 중원에서의 활발한 움직임이 기반이 된 축구를 구사하며 연계 플레이를 끌어올렸다. 이러한 전술로 분데스리가 정상에 오른 그는 유럽리그를 변화시킨 과르디올라 감독,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 등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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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비 알론소(오른쪽) 레버쿠젠 감독과 미켈 아르테타 아스널 감독의 모습.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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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 감독은 친구도 명장이다. 아스널(잉글랜드)의 미켈 아르테타(41) 감독과 어린 시절 지역팀인 안티구오코에서 함께 공을 찼다. 아르테타는 1997년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1군까지 올라갔지만 부진 속에 일찌감치 영국으로 터를 옮겼다. 그렇게 레인저스(스코틀랜드), 에버튼(잉글랜드), 아스널을 거쳐 은퇴한 뒤 2016년부터 과르디올라 감독 밑에서 3년간 맨시티의 코치로 활동했다. 이후 아스널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그는 올 시즌 맨시티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경쟁 중이다. 알론소 감독과 아르테타 감독은 스승 과르디올라 감독의 영향을 받아 첫 부임한 1부리그 팀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이뤄냈다.

둘의 우정은 올 시즌 UCL 현장에서도 드러났다. 아르테타 감독은 지난 9일 아스널과 뮌헨의 UCL 8강 1차전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알론소 감독에게 뮌헨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들었느냐'는 질문에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답변은 못 드리겠다"며 웃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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