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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그녀가 죽었다’ 김세휘 감독 “사람들의 자기합리화 얘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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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그녀가 죽었다’의 주인공인 인플루언서 소라(신혜선)는 소시오패스의 머릿속이 이럴까 싶은 인물이다. 자신이 당한 피해에는 한없이 예민하지만, 본인이 남에게 가하는 고통에는 무감각하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미안함이나 망설임이 없다.

세계일보

사진=콘텐츠지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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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김세휘 감독은 영화 개봉 전 가진 인터뷰에서 “인간이 자기 합리화, 자기 정당화하는 본성을 얘기하고 싶었다”며 “SNS에서 나를 실제보다 그럴싸하게 만들어야 타인이 봐 주다 보니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아는 나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이를 메우기 위해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개봉한 이 작품은 남의 집을 훔쳐보는 취미를 가진 공인중개사 정태(변요한)가 SNS에서 가짜 삶을 전시하는 인플루언서 소라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호기심에 소라를 염탐하던 정태는 ‘그녀가 죽은’ 현장을 발견하지만 지은 죄가 있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이 작품은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해 엎치락뒤치락하며 빠르게 내달린다.

김 감독은 “2년전 쯤 영화의 후반 마무리 작업을 다 끝내고 개봉을 기다렸는데, 올해 초부터 개봉 얘기가 나오면서 런닝타임을 10분 정도 더 줄였다”며 “요즘은 빨리감기, 10초 건너뛰기에 익숙한 세대라 영화의 리듬감을 좀더 빠르게 가져가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죽었다’는 변요한, 신혜선, 이엘 등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 감독은 “변요한씨는 제가 워낙 팬이었다. 눈으로 모든 걸 다 연기한다”며 “시나리오를 보여 드리니 너무 좋아하셔서 그날 집에 와서 일기를 두 장 썼다. 너무 행복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구정태는 선을 지켜야 하는 인물인데, 변요한 배우는 선을 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라 캐스팅했다”며 “소라는 태생적인 사랑스러움이 있어야 하는 캐릭터인데 신혜선 배우가 사랑스러운 연기는 물론 스릴러 연기도 잘해서 우리 영화에 제격이라 여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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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콘텐츠지오 제공


이들을 뒤쫓는 형사 역할에는 사견이 없으면서 믿음이 가고 지적이면서 집요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이엘 배우는 선택한 이유다.

‘그녀가 죽었다’는 김 감독의 데뷔작이다. 영화과를 나와 독립·다양성 영화를 연출하다 장편 상업영화로 데뷔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감독이 되는 과정이라면, 김 감독의 경력은 딴판이다.

어릴 때 꿈은 음악가, 작가였다. 중학교 2학년때 KBS의 단막극 공모전에 참가했다. “작품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재밌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는 연극부에서 연극 작품을 써서 부산청소년연극제에서 두 번이나 대상을 탔다.

“그때 ‘어 나 좀 괜찮나’ 생각해서 이쪽을 업으로 삼아야겠다 생각하는 와중에, 이쪽 일이 승자 독식이잖아요. 안 될 수도 있고 해서 플랜B가 있어야겠다 해서 경제학과에 진학했어요. 영화과 수업은 계속 청강했죠.”

그는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일단 촬영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인터넷 공고를 보고 저예산영화의 스크립터로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일을 잘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게 알음알음 소개로 작품 규모가 커지면서 상업영화의 스크립터로 성장했다. 영화 현장을 겪으며 그는 ‘현장 여건상 시나리오가 이래선 안 되는구나’하고 하나씩 배워갔다.

“당시 생활이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스크립터일, 연출부 일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하고 싶은 거 하고 노는데 나한테 돈을 주네’ 이런 생각이었어요. 월급이 짜도 짜다고 생각 안 하고.”

감독 데뷔 기회는 덜컥 찾아왔다. 공모전에 낸 SF스릴러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 제작사 대표가 계약을 제안했다. 신인에게 SF스릴러는 규모가 크니, 다른 작품을 해보자 해서 쓴 게 ‘그녀가 죽었다’였다. 시나리오를 쓰니 제작사 대표가 ‘연출해볼래’라고 제안했다.

“그 때만해도 ‘에이 제가 어떻게 연출해요 라고 했었어요. 그날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내가 연출하면 어떨까 생각에. 다시는 작가 마인드로 돌아가지지 않더라고요. ‘이건 이렇게 표현해야지’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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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무명생활’이 없었다는 점에서 김세휘 감독에게는 지금껏 많은 운이 따랐다. 이쯤되면 본인의 실력을 자부할 만도 하지만 그는 자신을 냉정히 평가했다. 김 감독은 “전 정말 예술가 기질이 없어서 상상력을 훈련을 통해 근육처럼 키워가고 있다”며 “그래서 끊임없이 쓰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듯이 작업한다. 안 되면 쥐어짜고 엉덩이 무겁게 앉아있자가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질 때는 이유가 있는 법. 그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감독으로서의 장점을 물었다. 한참 고민한 그는 “일단 긍정적인 성격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멘탈이 세다고 하긴 그렇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지’가 제 인생 모토예요. 사실 촬영 현장에선 변수가 많잖아요. 스태프들이 실수하거나 준비를 안 할 때도 있고. 저도 순간적으로 감정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다음부터는 조심해’ 이렇게 받아들이고 빨리 까먹어요.”

그의 긍정적 성격, 일단 하고 보는 행동력은 인터뷰에서도 느껴졌다. 김 감독은 “영화 촬영할 때는 뭘 몰라서, 내 작품을 한다는 것이 행복했고 지금은 오히려 개봉을 아직 안 해서 아직 성적을 받아보지 않은 어린이처럼 행복한 것 같다. 스코어를 아직 받아보지 못했으니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그는 노트에 9개 정도 기획 목록을 적어놓았다. 좋아하는 장르인 공포영화도 한 편 있다. “이 중에 1%나 살리면 다행”이라는 그는 “지금은 판타지 사극 액션 시리즈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그가 되고 싶은 ‘감독상’이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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