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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마약파티’ 신고에 악몽 된 개업식···‘토끼몰이’ 단속 강행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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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식당 개업식 덮친 미등록체류자 단속

‘마약파티’ 신고와 다른데도 단속 강행해

지역사회서도 “대안 없이 단속만”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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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경기 포천의 한 태국식당에서 식당 사장 홍모씨(51)가 메뉴판을 가리키고 있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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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아 기다려 온 식당 개업식이 순식간에 ‘악몽’이 될 줄은, 자영업자 홍모씨(51)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큰마음 먹고 태국식당을 차린 홍씨는 지난달 14일 개업식을 열었다. 한창 축하객들로 북적이던 점심시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 공무원들이 식당을 덮쳤다. “불법체류자들이 마약파티를 벌이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단속반이었다. 단속반은 미등록 체류자를 체포하기 위해 ‘포위 단속’을 벌였다.

식당 문을 틀어막고 사람들을 가둔 단속반은 미등록 신분인 이주노동자들을 줄줄이 수갑으로 묶었다. 남성 단속반이 이주여성의 양팔을 잡아끌며 데려가기도 했다. 홍씨는 “허위신고를 받고 잔칫집을 초상집으로 만드느냐”며 “매일 그날 생각에 잠도 못 자고 눈물이 난다”고 했다.

최근 이주노동계와 지역사회에서는 이 같은 무리한 단속이 잦아졌다는 이야기가 잇따른다. 법무부의 ‘미등록 체류자 단속 강화’ 발표 이후 식당과 시장, 출근길 등 일상공간에서까지 ‘토끼몰이 단속’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주노동단체들은 과도한 단속의 위법성과 안전사고·인권침해 우려를 지적한다. 대규모 단속으로 주요 노동력과 소비자를 잃은 지역사회 선주민들도 소모적인 미등록 체류자 정책의 부작용을 걱정한다.

사장 동의 없이 ‘포위단속’···여성 목덜미 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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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이 지난달 14일 개업식이 한창인 경기 포천의 한 태국식당에서 기습 포위 단속을 벌이고 있다. 홍씨 제공


‘개업식 단속’ 보름 뒤인 지난 2일 오후 찾은 홍씨의 경기 포천 태국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식당과 태국식자재마트를 겸하는데도 이날 손님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 치우지 못한 개업 축하 화환들만 도로에서 흙먼지를 맞았다. 홍씨는 “외국인 상대 가게는 단속 소문이 나면 6~7개월은 발길이 끊긴다”며 “합법 체류자라도 겁이 나서 발길을 끊는다”라고 했다.

지난달 14일 개업식 때만 해도 홍씨는 이 같은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다. 태국식자재마트를 운영하던 홍씨와 태국인 아내는 빚까지 내 식당을 열었다. 인근 공장과 농장에서 일을 마치고 마트를 찾는 태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국수를 내어주던 것이 식당 개업으로 이어졌다. 홍씨 부부는 식당을 잘 운영해 코로나19의 불황을 이겨내고자 했다.

개업식에는 태국인 30여 명과 홍씨의 가족·지인 등 한국인 10여 명이 참석했다. 홍씨 부부는 팟타이 등 태국음식을 무료로 제공했다. 몇몇 손님은 주차장에 테이블을 깔고 삼겹살을 구웠다.

회색 양복을 갖춰입은 홍씨가 손님들과 환담을 나누던 오전 11시59분쯤, ‘(주)금성’이라고 적힌 검은색 승합차가 나타났다. 출입국단속반의 위장차량이었다. 승합차는 식당 건너편에 정차한 뒤 1시간가량 개업식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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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개업식이 한창인 경기 포천의 한 태국식당에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이 기습 포위 단속을 벌이고 있다. 홍씨 제공


단속은 1시간이 지난 오후 12시49분쯤 시작됐다. 회색 스타렉스 2대가 식당 정문과 주방 쪽 뒷문 앞에 동시에 정차했다. 스타렉스와 ‘(주)금성’ 차량에서 단속반 공무원 20여 명이 쏟아져나왔다. 일부는 삼겹살을 굽다가 도망치는 이주노동자들을 쫓아 달렸다. 나머지 단속반은 정문 쪽 출입구 2개와 뒷문 쪽 출입구 2개를 몸으로 막았다.

순식간에 식당에 갇힌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홍씨는 나가서 상황을 파악하려 했지만 단속반이 문을 막아 나가지 못했다. 홍씨가 문틈으로 “무슨 일이냐, 내가 사장이다”라고 말하자 단속반은 “들어가라”며 신분증을 요구했다고 홍씨는 말했다. 홍씨의 지인이 “이 사람이 사장이 맞다”고 말하고 나서야 단속반은 공무원증을 보여주며 단속을 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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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경기 포천의 한 태국식당 개업식에서 손님으로 참석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수갑으로 줄줄이 묶인 채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홍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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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가 정문에서 실랑이하는 동안 식당 내부와 뒷마당에서는 단속이 계속됐다. 단속반은 잡혀 온 이주노동자들을 바닥에 꿇어앉히고 팔목에 수갑을 채워 줄줄이 한 줄로 엮었다. 한 남성 단속반은 도망치는 이주여성의 양팔을 붙잡아 잡아끌며 데려오기도 했다. 합법 체류 자격을 갖고 있던 한 이주노동자는 지갑을 꺼내 비자를 보여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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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경기 포천의 한 태국식당에서 여성 이주노동자가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에게 붙잡혀 끌려가고 있다. 홍씨 제공


홍씨는 “항의를 계속하자 출입국 단속반은 ‘민원이 들어왔다’고만 하고 어떤 민원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계속 따져 물으니 ‘마약 파티를 한다’는 신고 내용이 적힌 종이를 보여줬다”고 했다. 홍씨가 신고 내용을 봤을 땐 이미 단속이 마무리된 뒤였다. 단속반은 이주노동자들을 버스에 태우고 자리를 떴다.

‘마약파티’ 아닌 거 몰랐나···왜?


이번 ‘태국식당 허위제보 단속’ 사건의 쟁점은 2가지다. 첫째는 단속반이 ‘마약 파티’라는 신고가 허위 내용이라는 것을 정말 몰랐는지 여부다. 홍씨는 “(단속반이) 1시간 전부터 지켜봤지 않느냐. 개업식 화환도 늘어서 있는데, 신고 내용이 현실과 다르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며 “마약파티를 누가 대낮에 문 열어놓고 하나. 굳이 개업식을 덮쳐 잔치를 망칠 일이었느냐”라고 했다.

홍씨는 단속 1주일 뒤인 지난달 22일, 소식을 접한 이주인권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양주출입국사무소에 항의방문을 했다. 홍씨는 “담당자에게 ‘마약 신고라면 경찰과 함께 왔어야 하는데 왜 경찰과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제대로 답하지 못하더라”라고 했다.

홍씨가 ‘그럼 잡아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약 검사를 했느냐’고 물으니 담당자는 ‘그럴 권한이 없다’고 했다고 했다. 홍씨는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떳떳하지 못하게 구차한 변명만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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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경기 포천의 한 태국식당 개업식에서 미등록 체류자 기습단속이 이뤄졌다.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이 손님이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데려간 뒤 식당 주인 홍모씨가 정문 앞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홍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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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쟁점은 강압적인 단속의 위법성·인권침해 여부다. 특히 사업주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은 위법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은 2009년 출입국사무소가 제3자의 주거지나 사업장에서 미등록 체류자 단속을 하기 전 주거권자·사업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도 식당 주인의 동의 없는 미등록 체류자 단속은 인권침해라며 법무부에 “명시적인 사전동의를 받도록 규정을 정비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윤성집 성공회포천나눔의집 사무국장은 “규정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2명 이상 수갑을 채우는 등 과하게 수갑을 채용하면 안 되는데 그런 장면이 확인된다”며 “비자가 있는 사람도 수갑을 채워 끌고 간 점도 문제”라고 했다.

홍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형사범죄자나 중범죄자가 아니라 체류비자만 없을 뿐”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을 가까이서 오래 접하면서 이들이 중범죄를 저지르는 건 못 봤지만, 한국인 사장들이 때리고 월급을 안 줬다는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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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경기 포천의 한 태국식당 앞에 개업 축하 화환이 늘어서 있다. 지난달 14일 열린 이 식당 개업식은 법무부 출입국사무소의 기습 미등록 체류자 단속으로 파행을 맞았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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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해당 단속은 수십 명의 불법체류 태국인이 단속 당일 식당에 모여 축제를 벌이며 소음 및 불법 약물 투약 예정이므로 단속해 달라는 신고에 따라 실시하게 된 것”이라며 “신고 내용의 사실 여부는 불법체류 단속 이후 조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했다.

이어 “안전사고 예방 등을 위해 부득이 식당 창문과 출입구 등에 단속반원들을 배치했다”며 “수갑은 개인별로 사용함이 원칙이나 도주 방지 등 부득이한 경우 2인 이상이 함께 사용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단속 강화에 지역사회도 흔들린다


전문가들은 법무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증가하는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단속 강화’에만 몰두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42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주노동자들은 폭행·성희롱과 임금체불 등 노동권 침해가 심각해도 사업장 변경이 쉽지 않고, 합법적으로 퇴사해도 3개월 안에 재취업을 해야 비자가 나오는 등 여러 제약으로 체류자격을 잃는 경우가 많다.

무리한 단속은 안전사고를 부를 수도 있다. 지난해 8월 대구에서는 출입국 단속반이 통근버스를 기습 포위 단속하던 중 이주노동자들의 절규에 놀란 운전자가 단속차량을 들이받아 공무원들이 부상을 입는 일이 일어났다. 이번 태국식당 사건에서도 이주노동자와 단속반이 차도를 가로질러 달리는 등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다. 윤 사무국장은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도망치다가 죽거나 다치기도 하고, 공무원들이 다치는 경우도 있다”며 “서로 위험한 레이스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는 “법무부가 5년 내에 미등록 체류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는데, 단기간에 그 목표를 이루려면 무리한 단속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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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노동절을 사흘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 금지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는 손 팻말을 들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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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단속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줄면서 지역사회 경제도 타격을 입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나서서 이주노동자를 더 많이 데려오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2020년 5만6000명에서 2023년 12만명, 2024년 16만5000명(예정)으로 늘었다.

홍씨는 “이들은 한국인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산업에 기여해 왔고, 시장을 다니며 물건을 팔아줬다”며 “포천 공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데 단속이 강화되면서 내가 아는 공장만 몇 곳이 중단됐다. 농장부터 식당, 마트, 택시까지 장사가 안 된다”고 했다.

지역사회에서는 단속·추방에만 몰두하는 정책 대신 미등록 체류자와의 공존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씨는 “사람이 부족하다며 들여온 건 정부 아닌가”라며 “이미 기술을 쌓은 이들을 내쫓고 계속 ‘생초짜’를 데려오느니, 범죄이력이 없는 이들에 한해서라도 체류자격을 유예해준다면 정말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많은 사업주가 저임금으로 착취할 수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선호하고, 정부는 이를 방치하면서 무리한 단속을 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며 “심각한 인구감소에 직면한 한국은 이제라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기준에 따라 합법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 더 알아보려면

이주노동자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정부도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에 대한 대책으로 이주노동자 도입을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을 노동력으로만 생각할 뿐, 이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은 적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 폭행·폭언·성범죄, 열악한 숙소 등 심각한 노동권 침해를 당한 끝에 미등록 체류자가 되곤 합니다.

정부는 단속 강화로만 일관합니다. 최근 곳곳에서 무리한 단속으로 여러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지난해 8월 대구에서는 통근버스를 포위 단속하는 중 이주노동자들의 비명에 놀란 운전자 김씨가 단속차량을 들이받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경향신문은 지난 3월 김씨의 이야기를 자세히 취재했습니다.


☞ 단속차량을 들이받고 그는 달렸다, 친구들이 울부짖어서[사람 구함 : 어느 피고인의 변론]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150600001



☞ “잘못된 제도가 미등록 체류로 내몰아···강제단속은 해법 아니다”[사람 구함 : 어느 피고인의 변론]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150600011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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