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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전두환 면전에 "또 죽일건가"…100세 대주교의 삶과 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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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100세 대주교 윤공희



■ 나의 반려일지

가족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핏줄이 아니더라도 가슴으로 낳은 아이가 가족이며, 희로애락을 함께한 반려동물도 가족입니다. 더중플 ‘나의 반려일지’ 이번 이야기는 5·18 광주의 대부, 윤공희 대주교의 삶과 반려를 다룹니다. 100세를 넘긴 한국 첫 대주교가 의외로 반려견을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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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만난 윤공희 대주교(오른쪽)가 엔다 수녀와 반려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엔다 수녀가 안고 있는 반려견이 노마다. [사진 김한솔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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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는 한국 가톨릭 첫 100세 대주교다. 지난해 백수연(白壽宴)에서 애창곡 ‘꽃반지 끼고’를 가수 은희와 함께 불렀다.

그는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광주 대부’로 불린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참혹한 실상을 외부에 알리고 내란 혐의로 억울하게 사형 판결을 받은 이들의 사면을 끌어냈다. 광주대교구청 사무실은 그때 금남로 가톨릭 센터 6층(현 5·18 기록관)에 있었다. 윤 대주교는 19일 이곳에서 계엄군 몽둥이에 맞아 피 흘리던 청년이 얼마 못 가 길 위에 털썩 주저앉는 걸 봤다. 윤 대주교는 ‘얼른 구급 조치를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다리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봐주지 않을 텐데…’ 겁이 났습니다. 성경에서 강도 당해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옆으로 지나친, 그 사제와 내가 다를 바 없구나. 죄책감을 느꼈어요.”

이날 윤 대주교는 서울로 가 김수환 추기경에게 광주의 실상을 전했다. 또 광주 시내 미국인 신부와 미문화원장을 통해 미 대사에게 ‘5·18은 계엄군의 잔혹한 살상과 폭력 때문에 발생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5월 24일 광주대교구장 명의로 교구청 산하 모든 교회에 사목 서한을 보내 신군부의 무력 진압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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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1세(왼쪽)과 노마. [사진 엔다수녀]


전두환과의 담판 일화도 전해진다. 1981년 3월 대법원은 정동년(훗날 5·18 재단 이사장), 배용주, 박노정 등 광주항쟁 관련자 3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윤 대주교는 군종 신부를 통해 청와대 비서실에 연락했고, 당시 사정수석비서관 허삼수의 주선으로 대통령 전두환을 만난다.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또 죽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사면을 호소했다. 그 자리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결국 석방과 사면이 이뤄졌다. 그러나 윤 대주교는 민주화를 위해 고생한 것도 없다고 자신을 낮췄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분은 생각해 보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 늘 이렇게 마음을 쓰고 그런 게 생각이 나요. 참 훌륭했구나. 나는 그렇지 못했어요.”

올해로 서품 74년이 된 윤 대주교는 후배 사제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사제로서 우린 부르심을 받았다고 그럽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착한 목자로서 그런 마음을 잘 키워 나가도록, 특별히 이렇게 버려진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러한 사랑을 베풀려고 노력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나간 생활을 생각하면 내가 그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게 참 부족했구나….” 청년들을 향해선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그런 삶을 살도록 마음을 썼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는 요즘 함경남도 덕원신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생전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학교 앞에서 내다보던 절경들 지금도 다 생각납니다. 멀리 기관차 기적 소리가 울리면, 하얀 연기가 올라오는 게 보이죠. 그럼 좀 있다가 ‘뻥’하고 소리가 나요. 서울에서 북간도로 향하던 기차로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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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공희 대주교가 한라2세와 해피를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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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시절 윤 대주교는 교장의 월반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만일 월반해 1948년 사제품을 받았다면 ‘순교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해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로 교회 박해가 심해졌다. 한국전쟁 전까지 함흥교구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를 비롯해 최소 87명이 체포되거나 살해됐고, 여럿이 행방불명 됐다.

윤 대주교는 2000년 11월 광주대교구장에서 은퇴한 뒤론 전남 나주 광주가톨릭대 주교관에서 지낸다. 일흔인 엔다 수녀가 한라2세·해피·노마 세 마리 반려견과 그 곁을 지킨다. 윤 대주교는 과거 코커 스패니얼 종인 아라를 키웠는데, 차에 치이고 말았다. 동물병원에선 “희망이 없다”고 했다. 아라는 대주교를 보더니 누운 채로 꼬리를 힘겹게 흔들었다. 병원 사람들이 “반려견이 죽으면 미사를 드리느냐”고 묻자 윤 대주교와 엔다 수녀는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슬프진 않았습니다. 받아들였죠.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면 괴로워집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마 어려운 일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웃으며 보냈다.

윤 대주교는 얼마 전 폐암 진단을 받았다. “한 3~4년 잡더라고요. 그냥 주교님 두 발로 화장실 가시고 식사하시다 돌아가시면 좋겠어요.” 힘에 부쳐 하는 그를 대신해 반려동물과의 사연 등을 들려준 엔다 수녀의 간절한 바람이다.

■ 나의 반려일지-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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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려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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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심석용·김민욱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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