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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BS광장] 우리나라 주총은 ‘축제의 장’이 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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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흥겨운 모습으로 바자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기업 부스에서 제품을 구경하기도 하고, 직접 체험도 한다. 서로의 관심사나 취향을 공유하고 소통한다. 마라톤 대회에도 왁자지껄하다. 제공하는 간식을 먹으며 함께 땀 흘린 사람들과 기념 메달을 서로에게 보인다. 이 모습은 어느 지역사회 축제나 박람회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4일 미국 오마하에서 ‘투자자의 록 콘서트’라고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 모습이다.

이들의 주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총과는 전혀 다르다. 매해 진행하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은 2박3일 동안 열리며, 특히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회장이 주주와의 소통을 위해 카트를 타고 등장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지난해 주총 자리에서 13세 소녀가 “중국과 중동에서 탈달러화를 시도하는데, 달러가 더 이상 기축통화가 아닌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소녀의 질문도 놀라웠지만, 이 장면은 주주로 참여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질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상징했다.

주주들끼리 모여서 웃고 떠드는 자리가 아니다. 버핏 회장은 올해 주총 자리에서 애플 주식을 매도한 이유, 파라마운트 손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설명했다. 올해 버핏 회장은 30개가 넘는 질문을 받고 투자와 인생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자, 카메라를 돌려보자. 우리나라의 주총은 어떤 씬(scene)이 펼쳐질까. 높은 강단 앞에 놓아진 수백 개의 의자, 딱딱한 프리젠테이션, 애널리스트들이 질문하는 모습. 한 번도 참가해 보지 않은 투자자라도 쉽게 예상 가능하다.

축제와는 확연하게 거리가 멀다. 미국 상장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자(CEO)가 주총에 참석해 한 해의 성과를 공유하고 경영 전략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 주총에선 이사회나 경영진이 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에게 상장기업과 주주와의 소통은 먼 나라 얘기다.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총에 참관한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버핏의 경영 방식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투자자들이 버핏과 멍거, 버크셔 이사회를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라며 “실적이 주춤한 해도 있었지만, 버핏은 매년 주주총회에서 솔직하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 판단했고, 현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투자자에게 ‘주가 상승‘, 그리고 ‘적극적인 주주와의 소통’을 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최근 우리나라 증시의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상장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구체화됐다. 연간 1회 등 주기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주주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이지만, 역설적으로 한 번도 배당한 적이 없다. 배당 확대를 좋은 상장기업이라고 외치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를 떠올릴 때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렇지 않은 기업에 해당한다.

박 연구원은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며 “결국 한국 자본시장이 진실로 지향해야 하는 것은 투자자와 기업 상호 간의 신뢰 복원이 아닐까. 배당보다 이것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에선 주주와의 소통과 환원을 확대하는 상장기업의 노력이 부족하다. 기업가치란 기업이 보유한 자산과 미래 현금흐름 등을 기반으로 산정되는 총가치로, 기업의 경영 성과, 성장 가능성, 시장 환경, 사회적 책임 등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된다. 이제 주주와의 소통도 기업가치 상승을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로 상장기업의 가치 상승을 위한 초석이 깔렸다. 정부에서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이제 상장기업이 움직일 때다. 주주와의 소통 강화가 그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유은정 기자 viayou@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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