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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12년전 철거됐는데…北간부학교에 마르크스·레닌 대형 초상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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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공된 당 중앙간부학교를 15일 현지지도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사진에는 새로 들어선 건물의 외벽에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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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새로 완공한 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한 가운데 북한 당국이 교내 '조선노동당건설연구소' 건물 외벽에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사상가인 칼 마르크스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인 블라디미르 레닌의 초상화를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와의 강력한 연대를 강조하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16일 김정은이 전날 평양 '백화원비행장' 자리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당 중앙간부학교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정치성과 현대성, 실용성이 확고히 보장된 만점짜리 교육시설"이라며 "우리나라 교육기관들 가운데서 최고의 기준을 창조했다"고 평가했다. 또 "(학교가) 진짜배기 핵심골간들, 김일성-김정일주의 정수분자들을 키워내는 자기의 중대하고도 성스러운 사명에 항상 충실함으로써 당의 강화발전과 영원무궁한 번영에 참답게 이바지하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노동당 핵심 교육기관 중 하나인 당 중앙간부학교에 마르크스-레닌(ML)의 초상화를 설치한 건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앞서 북한 당국이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강조하면서 김일성 광장에 있는 노동당사에서 이들의 초상화를 철거한 것과도 대비된다. 실제 고위 탈북자들에 따르면 1970년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된 이후 북한에선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연구조차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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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지난 3월31에 공개한 노동당 중앙간부학교의 모습. 사진 속 건물에서는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철저히 무장하자'라는 문구만 확인된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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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사)북한연구소 소장(서강대 명예교수)은 "러시아와 사상적 뿌리가 같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마르크스·레닌에서 선대지도자로 이어졌던 사회주의 사상 연대가 지금까지 굳건하다는 점을 부각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없다면 공개되기 어려운 장면"이라고 말했다.

실제 북한이 지난 3월 31일에 공개한 영상에선 해당 건물의 외벽에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철저히 무장하자'라는 문구만 새겨져 있었다. 그 사이에 시정이 이뤄진 것이란 얘기다. 지난 3월 현지지도에서 '일부 결점과 불합리한 요소'를 지적했던 김정은이 "지난번에 지적한 문제들을 올바로 퇴치"했다며 만족을 표시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김정은이 직접 체제의 보루인 당 간부를 양성하는 핵심 교육기관을 챙기는 건 최근 간부들의 역할과 사상·계급혁명을 화두로 부각하는 북한 내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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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공된 당 중앙간부학교를 15일 현지지도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신문은 "우리당 간부양성의 최고전당인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가 주체건축과 주체교육 부문의 본보기적 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섰다"라고 전했다.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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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당 중앙간부학교의 전신 김일성고급당학교는 1973년에 마르크스-레닌주의학원을 통합해 3년제 연구원 학제를 갖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김정은의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선대의 이론적 뿌리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러시아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최근 자신들의 움직임에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답방을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러 양국이 외교 채널을 통해 푸틴의 방북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이를 염두에 둔 조치의 일환일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러시아의 전승절, 푸틴의 취임식 등 주요 정치일정을 계기로 잇달아 축전을 보내며 양국 간 친선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관계를 과시하고, 푸틴 대통령의 방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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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노동당 간부학교 내 강의실을 둘러보는 모습. 강의실 전면에 한반도 전도가 아닌 북한 지역만 표기된 '조선행정구역도'가 걸려있다.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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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정은이 둘러본 당 중앙간부학교 강의실에는 한반도 전도가 아닌 북한 지역만 표기된 반쪽짜리 '조선행정구역도'가 걸려 있었다. 이는 김정은이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북한 당국이 대남 기구 폐지와 민족·통일 개념 폐기에 몰두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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