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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빌라 떠난 수요, 아파트로…‘예고된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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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변수로 들여다본 전셋값 상승
임대 사업 활성화·다주택 규제 풀어야


“전세 매물이 있어야 가격 예측이라도 하죠. 매물이 나온다 해도, 신규 계약이냐 갱신 계약이냐에 따라 시세가 천차만별이니 전셋값이 어떻게 될지 저희도 도무지 가늠이 안 돼요.” (서울 강동구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전세 매물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1000가구 넘는 대단지에서도 전세 매물이 ‘0건’인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하는가 하면 전세 계약을 두 바퀴(4년) 돈 세입자는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한꺼번에 전세금을 올려줘야 한다며 울상이다. 2020년 7월 말 임대차법 시행 이후 4년이 지난 올 8월부터는 계약 만기가 도래하는 전세가 속출할 예정이라 시장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매경이코노미

임대차 2법으로 계약 연장한 전세 만기일이 다가오면서 전세 시장 혼란이 예고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전세 매물들이 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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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법에 입주 물량 역대 최저치

1%대 저금리 대출 활용 전세 수요 급증

전문가들은 시장 작동 원리인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번 사태가 ‘예고된 전세난’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뜩이나 매물이 부족한데 입주 물량까지 줄어드는 추세고, 빌라를 떠나 아파트를 찾는 실수요자가 늘면서 전셋값 상승 압력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전세대란을 불러온 핵심 변수를 분석해봤다.

‘예고된 전세난’이라고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전세 공급이 그동안 꾸준히 줄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5월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2만9697건으로 3만건을 밑돌았다. 3개월 전(3만4345건)보다 13.6% 감소했고, 1년 전(3만38985건)과 비교하면 23.9% 감소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지난해 4월 4만건대를 유지하다 지난해 5월부터 3만건대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점차 전세 물건이 소진되면서 2만9000건대까지 내려왔다.

전세 매물이 감소하는 데는 최근 서울 입주 물량이 급감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올해 서울에는 아파트 2만4139가구가 입주할 전망이다. 3만570가구가 집들이를 한 지난해와 비교해 21% 줄었다. 지난 2월 645가구, 3월 996가구, 4월 815가구 등 최근 3개월 연속 월 입주가 1000가구를 밑돌았다. 게다가 5월에는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아예 없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전세 매물 자체가 적어지면서 앞으로 전셋값이 상승할 거라는 기대감에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는 집주인도 적잖다”고 귀띔했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일명 ‘임대차 2법’도 한몫했다. 2020년 7월 말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덕분에 그동안 세입자들은 인상폭이 5%로 제한된 임대료로 최대 4년(2+2년)간 거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4년 동안 전세가 묶이면서 매물 자체가 줄었고, 거주지를 찾는 전세 수요자 입장에서는 전셋집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갱신 계약은 5% 상승에 그친 데 반해 신규 계약 전셋값은 크게 뛰어 이중 가격이 발생하는 부작용도 속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당분간 전셋값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매경이코노미가 부동산 전문가 1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명은 올 한 해 동안 전세 가격이 적어도 3~5% 오를 것으로 봤다. 5~7% 상승, 7~10% 상승을 내다본 전문가도 1명씩 있다. 전세 가격 상승폭이 1~3%에 그칠 것으로 본 전문가는 2명이고, 하락을 전망한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다.

특히, 오는 8월부터 전세계약갱신권을 행사한 임차인들의 전세 계약 만기(4년)가 돌아오면 전세 시장 불안이 더욱 커질 거라는 전망이다. 기존 임차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전셋집을 찾는 것보다 살던 집에 계속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큰 반면, 집주인은 이번 계약으로 가격 인상폭이 또 제한될 거라는 불안감에 한꺼번에 전셋값을 올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임대주택은 투자자가 주택을 매수해야 공급되는데, 지금은 이 길이 막혀 있는 상황”이라며 “공급이 제한된 상태에서 임대차법 개정 만 4년을 맞아 수요가 늘어나면 올 하반기까진 전셋값 상승 압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또다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 이어 착공·분양이 미뤄지는 사례가 많아 향후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여서다. 부족한 입주 물량 역시 전세 가격에는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는 아파트(주상복합·임대 포함) 1만921가구가 입주를 시작할 전망이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9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1990년부터 2023년까지의 평균 입주 물량인 4만5044가구와 비교해도 약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둔촌주공을 재건축한 1만2032가구 규모 ‘올림픽파크포레온’ 입주가 올 11월로 앞당겨질 가능성은 있지만, 해당 물량을 더하더라도 2만3483가구에 불과하다. 2013년 2만751가구 이후 11년 만의 최저치다. 여기에 지난해 전국 주택 착공 물량은 전년 대비 약 45%, 인허가 물량은 25.5% 줄어든 탓에 수급 불안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택 매매 시장이 관망세인 가운데, 최근 몇 년간 속출한 빌라 전세사기 여파로 세입자 사이에 아파트 선호 현상이 더욱 강해졌다”며 “올해에 이어 내년 이후에도 입주 물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예정이라 전셋값 상승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가 높으면 수요가 위축될 법도 한데, 전세 시장은 예외일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낮은 이자에 전세자금을 빌려주는 정책 대출로 얼마든지 우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올 1월 말에 나온 신생아특례대출이 대표적이다. 최저 1%대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신생아특례대출은 주택 구매뿐 아니라 전세자금대출로도 활용 가능하다. 이 밖에도 버팀목전세자금대출 등 주택 자금 관련 상품이 많이 나와 있는 상황이다. 기존 전셋집에 살던 사람들은 계약을 갱신하며 대응할 수 있는 셈이다. 올 들어서 체결된 전세 계약 중 갱신 계약만 35%에 달하는데, 지난해와 비교하면 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낮은 수준에 유지되면서 전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고, 세입자에게는 조금 더 높은 가격에 전세를 구할 여력이 생겼다”며 당분간 전세 수요가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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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수요 분산 필수

안전한 빌라 전세 계약 시스템 절실

전세대란을 해결할 묘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대책을 제시한다. 주택 공급 확대, 세입자 수요 분산 그리고 규제 완화다.

전세대란은 입주 물량 부족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던 만큼 우선 전세로 나올 수 있는 주택을 서둘러 공급하는 것이 급선무다. 빠른 공급을 위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활성화해 물량이 부족한 서울 도심에 주택 공급을 늘리고, 공공임대주택 확대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 확대가 중요하다. 정비사업 활성화 등으로 물량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단, 정비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게 되면 이주 수요 역시 특정 지역과 시점에 쏠릴 수밖에 없고, 이때 전세 시장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 한꺼번에 규제를 풀어주고, 사업을 진행시키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지속될 만한 공급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 이유다. “올해를 지나 2025년 이후에도 원활한 공급이 이뤄지도록 할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권일 리서치팀장 생각이다.

매입형 민간임대사업자 제도를 아파트까지 확대 적용하자는 주장도 눈에 띈다. 민간임대사업자 제도는 거주가 아닌 임대 목적으로 주택을 소유할 때 세금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주는 제도다.

현행법상 아파트는 민간임대사업자로 등록이 불가능하다. 2020년 문재인정부 시절 아파트를 임대사업주택 유형에서 제외했다. 현 정부가 민간임대사업자 유형에 아파트를 복원하기로 결정했지만,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표류 중이다.

이주현 대표는 “매입형 민간임대사업자를 아파트까지 확대해 민간도 임대주택 공급자 역할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는 해당 대책이 가장 빠르게 매물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시장 가격을 왜곡하는 인위적인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골자로 한 임대차법 여파로 전세 매물이 감소한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동산R114 분석 결과 월간 기준으로 지난해 전세 갱신 계약 비율은 매달 25~29%로 30%를 밑돌았다. 올해 들어서는 1월 31%, 2월 39%, 3월 35%, 4월 36% 등으로 30%를 넘어섰다. 아파트 전셋값이 상승하자 기존 세입자들이 새로운 전셋집으로 갈아타는 것보다 기존 전셋집에 눌러앉는 경향이 심해진 탓이다. 시장에 나와야 할 매물들이 나오지 않으면서 전세 가격 상승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다주택자, 임대사업자 규제를 손보는 것이 먼저다. 집주인이 소유하고 있으나 실거주하지 않는 주택이 곧 임대 시장의 매물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라며 “계약갱신청구권 같은 인위적인 가격 억제책이 만능은 아니다. 임대사업자들이 물량을 활발히 내놓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 이은형 연구위원 의견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공급 확대의 길을 열어놓은 이후에는 ‘수요 분산’에도 나서야 한다. 현재 전세대란은 어디까지나 아파트 중심이고, 빌라나 다세대주택은 여전히 전세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빌라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대거 이동한 탓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 가격이 전달 대비 0.32% 오를 때, 연립·다세대주택은 0.01% 하락했다. 아파트 시장에는 수요자들이 몰리고 비(非)아파트 시장은 외면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빌라·다세대주택 세입자 보호 대책을 강화해,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전셋값을 잡으려면 ‘아파트 쏠림 현상’부터 완화할 필요가 있다. 빌라 전세의 경우 세입자가 믿고 계약할 수 있는 안전한 전세 계약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9호 (2024.05.15~2024.05.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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