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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선방위 152일의 폭주…윤 부부·정부여당 비판 보도에 제재 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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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2대 국회의원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왼쪽부터 박애성 변호사, 최철호 전 공정언론국민연대 운영위원, 심재흔 세종대 교수, 손형기 전 티브이조선 보도본부 시사제작에디터, 최창근 한국방송기자클럽 사무총장(현재는 김문환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초빙교수로 교체),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백선기 성균관대 명예교수, 권재홍 전 문화방송 부사장, 임정열 전 강원도선거관리위원회 사무처장, 이미나 숙명여대 교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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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의원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가 지난 10일 임기를 마쳤다. 백선기 위원장 등 9명으로 구성된 선방위는 지난해 12월11일 출범해 5개월간 19번의 회의에서 108개 안건을 처리했다. 이 기간 선방위는 윤석열 정권 아래 벌어진 ‘언론 탄압’ 논란을 대표하는 기구로 부상하며 1997년 첫 출범 이후 27년 역사상 전례 없는 주목을 받았다. 비판을 의식한 듯 백선기 위원장은 지난 9일 마지막 회의에서 “과거 선방위와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제삼자인 언론이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다. 22대 선방위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결정해왔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이들의 심의·의결 내용을 종합해 ‘백선기 선방위’의 152일을 돌아봤다. 이번 선방위를 전임자들과 구분 짓는 논란의 뼈대는 크게 △과잉제재 △표적심의 △월권심의로 압축된다.





언론자유 향한 ‘중징계 물량공세’





이번 선방위는 30건의 법정제재를 의결했다. 선방위 제도는 1997년부터 시행됐고, 2008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출범하면서 현재의 꼴을 갖췄다. 법정제재 30건은 2008년 이후 치러진 12번의 전국 단위 선거(총선 5회, 지방선거 4회, 대통령선거 3회)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다. 앞서 11번의 선거에서는 평균 6.27개의 법정제재가 나왔으니, 무려 5배에 이른다. 전체 안건 대비 법정제재 비율도 이번 선방위는 28%, 앞선 선방위 평균 12%로 두배 이상 차이다. ‘백선기 선방위’의 법정제재 양태가 통계적으로 그간의 경향성에서 아득히 벗어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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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5일 에스비에스(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방송 장면.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이 ‘김건희 특검법’을 언급한 대목을 두고 ‘여사’ 호칭을 빼먹었다는 민원이 제기됐고, 선거방송심의위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에스비에스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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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위원장은 지난 2일(18차 회의) “2016년 20대 총선 때도 우리처럼 많은 중징계를 내렸다”며 각 선방위가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제재하기 때문에 양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취지로 반론했다. 이는 실상과 거리가 있다. 20대 총선 때는 법정제재가 19건이었다. 현 선방위보다 37%나 적었다. 특히 제재 수위는 추종을 불허한다. 20대 총선에서는 ‘관계자 징계’ 1건, ‘경고’ 3건, ‘주의’ 15건이었다. 관계자 징계는 가장 무거운 제재로 16년 동안 단 두번밖에 없었다. 이번 선방위에서는 14번 나왔다. 전체 법정제재(30건)의 절반가량이 최고 징계였다.



20대 총선 당시 선방위원을 지낸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과거의 심의 사례는 일종의 판례처럼 작용하는 것인데, (이번 선방위는) 그 판례를 준용하지 않았다. 결국 예측 가능성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선방위는 ‘선거방송심의 특별규정’ 위반 정도에 비례하는 제재 수위에 관한 합의를 축적해왔는데, 이것이 단번에 허물어졌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재보궐선거 선방위원을 지낸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도 “그간 미디어의 독립성을 보장하고자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도 가꿔온 원칙이 ‘최소 규제’인데, 그걸 송두리째 엎고 과거로 되돌렸다”고 평했다.





윤석열, 김건희, 그리고 MBC





제재 대상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뚜렷해진다. 선방위 제재는 두 가지 표적에 집중됐다. 첫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정부·여당에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시사·보도 프로그램이다. 법정제재 30건 중 28건(93%)이 여기에 해당한다. 류희림 위원장 체제의 방심위에서 벌어진 ‘정권 비판 언론 찍어내기’ 심의와 닮은꼴이다. 윤 대통령 부부가 관련된 안건은 제재 비율이 특별히 높았다. 심의 안건 108건 중 ‘윤석열’이 언급된 안건은 34건인데 이 중 32건이, ‘김건희’가 언급된 안건 20건 중에서도 19건이 각각 법정제재·행정지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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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7일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 날씨 코너에서 최아리 기상캐스터가 이날 서울의 미세먼지 수치가 1까지 떨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방송은 선거방송심의위에서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미세먼지 수치는 색깔별로 표시하는데 0~15일 경우 파란색이다.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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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과 주가조작 개입 의혹 등을 다룬 지난 2월25일 문화방송(MBC) ‘스트레이트’ 방송 장면. 이 방송은 선방위에서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문화방송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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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표적은 문화방송(MBC)이다. 문화방송은 이번 선방위에서 가장 많은 안건(26건)이 심의됐고 가장 많은 법정제재(17건)를 받았다. ‘문제없음’은 단 1건에 그쳤으며 최고 중징계인 ‘관계자 징계’ 14건 중 10건(71%)이 문화방송에 집중됐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은 진행자가 잇따른 선방위 징계에 부담을 밝히며 하차한 뒤에도 제재가 쌓여 관계자 징계만 6번을 받았다. ‘뉴스데스크’는 날씨예보 중 미세먼지 농도를 강조하며 ‘파란색 숫자 1’을 쓴 것이 더불어민주당 기호를 연상시켰다며,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을 다룬 ‘스트레이트’는 편파 방송이라며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선방위 제재가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이나 언론에 집중된 것은 과거 선방위와 다른 점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인 20대 대선 때는 티비에스(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가장 많은 법정제재(3건 중 2건)를 받았고,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대 총선 때는 티브이(TV)조선이 가장 많은 법정제재(19건 중 6건)를 받았다. 이런 지적에 최철호 선방위원(국민의힘 추천)은 지난달 18일 회의 중 “원인을 제공한 것은 문화방송이다. 대통령과 그 가족에 편파 보도를 하니 민원이 이렇게 많이 들어온 것 아닌가”라고 반박한 바 있다. ‘문제가 있으니 민원이 들어왔고, 민원이 접수됐으니 심의했다’는 논리다.





‘선거방송’의 선을 넘다





이 주장은 선방위의 월권심의 논란으로 이어진다. 선방위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기간 방심위에 설치되는 임시기구다. 민원을 접수하거나 처리하는 사무 역할은 방심위에서 담당하고, 회의를 소집하거나 안건을 통보하는 일은 방심위원장의 권한(선방위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 6조)이다. 심의 안건 역시 “공직선거법이 정한 선거방송, 기타 선거에 관련한 내용이 포함된 방송”(선거방송심의 특별규정 1조)으로 제한된다. 정리하면, 선방위는 ‘선거 관련 방송’만 다룰 수 있고, 안건 상정 절차는 방심위를 거쳐 이루어진다. 통상 방심위 사무처가 선거 방송 관련 민원을 걸러내는 것이 관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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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방송(cpbc) ‘김혜영의 뉴스공감’ 지난 1월30일 방송 장면. 선방위는 이날 출연자인 김준일 평론가가 ‘이태원 참사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한 발언을 사실왜곡이라고 보고 법정제재(주의)를 의결했다. 가톨릭평화방송 창사 이래 첫 법정제재였다. 가톨릭평화방송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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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6일 시비에스(CBS) ‘박재홍의 한판승부’ 방송 장면. 패널인 진중권 광운대 교수가 이날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국회의원 정원 감축 공약,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개입 의혹을 비판하자, 선방위는 패널이 불균형하다며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다. 시비에스 창사 이래 첫 ‘관계자 징계’였다. 시비에스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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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선기 위원장은 지난 1월25일 4차 회의에서 ‘사무처가 사전 판단하지 말고 민원인의 취지를 살려 안건을 모두 올려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 선거 관련성을 위원들이 직접 판단하겠다는 뜻이었다. 이후 선방위는 선거방송 기준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해석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재판,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류희림 방심위원장 ‘민원 사주’ 의혹 등 22대 총선과 직접 관련이 없는 방송에 대해서도 심의·제재를 강행했다. 김문환 위원(한국방송기자클럽 추천)은 지난 3월28일 “모든 사회적 쟁점은 표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선방위가 심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어떤 방송이든 민원만 접수되면 선방위에서 다룰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됐고, 특정 정치 세력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겨레는 앞서 선방위 안건으로 올라간 민원의 약 60%에 해당하는 정당·단체 민원을 전부 국민의힘과 보수 성향 언론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에서 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현 선방위에는 공언련 관련 인물이 2명(최철호, 권재홍) 활동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심위지부는 9일 성명에서 “대통령실, 방통위, 선방위, 공언련 등 민관이 합심해 언론자유를 말살하고 국격을 떨어뜨리는 ‘K-검열 생태계’를 만들어냈다”며 이번 선방위를 ‘역사적인 괴작’이라고 평했다.



거의 모든 방송사가 징계에 불복하면서 법정제재 30건 중 29건이 재심 안건으로 다시 회부됐다. 선방위는 1건만 인용하고 나머지는 기각한 뒤, 지난 9일 임기 내 처리하지 못한 무더기 민원을 방심위에 이양하는 의결을 끝으로 활동을 종료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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