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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무협소설 찢고 나왔다 … 600㎞ 굽이마다 태고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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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구당협 기문을 통과하는 장강삼협 리버 크루즈. 구당협 기문은 중국 10위안 지폐 뒷면에 실릴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롯데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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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캉스'가 다시 핫하다. 코로나19로 닫혔던 뱃길이 무려 4년 만에 열리면서다. 크루즈 여행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가는 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국제크루즈선사협회가 발표한 '2023년 크루즈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크루즈 여객의 평균 나이는 46.5세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20·30대 여행객 비중도 20%에 달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크루즈 여행이 가진 낭만과 특유의 여유로움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는 의미다.

MZ세대인 기자도 난생처음 크루즈 여행에 도전했다. 이번에 떠난 곳은 중국 '장강삼협(창장싼샤).' 한국인에겐 다소 생소한 여행지지만, 오히려 좋다. 아직 관광객이 적을 때 더 유명해지기 전에 훌쩍 떠났다. 장강삼협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인 장강(양쯔강)에 위치한 구당협(취탕샤)·무협(우샤)·서릉협(시링샤) 등 세 개의 협곡을 말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절경으로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삼국지의 무대 의창(이창)에서 안개의 도시 중경(충칭)까지. 장강 600㎞를 크루즈로 이동하며 대자연 속 크캉스를 즐겨봤다.

대자연 속 크캉스, 낭만적·성공적

센츄리글로리호에 오른 건 저녁이었다. 긴 이동 시간 때문에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객실에 들어선 순간 다시 도파민이 샘솟았다. 센츄리글로리호는 비교적 최근 운항을 시작한 1만5000t급 럭셔리 크루즈다. 8평대 넉넉한 공간, 새로 지은 듯한 화장실 등 5성 호텔급 퀄리티에 입이 떡 벌어졌다. 전기추진식 배라 흔들림과 소음도 적다. 4박5일 동안 때때로 배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곤 했다. 핵심 포인트는 발코니. 도도하게 흐르는 장강을 보며 오롯이 나만을 위한 힐링 타임을 갖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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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삼협 크루즈의 뷔페. 매끼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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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에 갔다가 또다시 놀랐다. 이 식당, 범상치 않다. 그저 그런 뷔페와 비교를 거부한다. 일단 메뉴 돌려막기가 없다. 오리 머리 볶음, 달팽이 토스트 등 매끼 새로운 음식을 선보인다. 맛도 상당하다. '○캉스'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음식인데, 그 기대치를 충분히 만족시켜준다. 느끼하다 싶을 때 직원에게 이야기하면 한국 김치도 준다. 또 한 가지 희소식. 술이 무제한이다. 마음껏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

장강 위에서 맞는 첫 아침. 발코니 커튼부터 열어젖혔다. 옥빛 강물 위로 안개가 살포시 내려앉아 있고, 그 뒤로 무협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협곡이 고고하게 서 있었다. 미술관에서나 보던 산수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첫 기항지 투어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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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협인가는 토가족의 옛 생활모습을 재현한 명승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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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안개의 강을 따라 처음 도착한 곳은 삼협인가(싼샤런자)다. 이 지역 소수민족 토가족(투자족)의 마을을 재현한 명승지로 유명하다. 전통혼례 체험에선 직접 신랑이 될 수도 있다. 계곡 깊숙한 곳을 향해 걷다 보니 물소리가 거세졌다. 의아함을 느낄 즈음 황룡폭포(황룽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이라고 하기엔 다소 아담하지만, 폭포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면서 가슴까지 시원해졌다. 옆에선 원숭이 무리가 관광객에게 재롱을 부리며 먹거리를 얻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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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배를 40층 높이 위로 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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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삼협댐(싼샤댐)으로 향했다. 갑자기 작은 배로 갈아타야 한다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뭐라고? 선박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삼협댐을 넘어간단다. 크루즈보다 작다지만 3000t이나 나가는데 이게 될까. 설레는 마음으로 유람선에 올랐다. 덜컹. 배가 위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갑판에 있던 모두가 그 엄청난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기 위해 바빠졌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엘리베이터는 단 40분 만에 40층 높이를 올라가 배를 안전하게 띄워 보냈다. 삼협댐을 나온 유람선은 크루즈에 배를 붙여 승객들을 내려준다.

셋째 날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신녀계(선뉘시)가 기다린다. 크루즈에서 내려서 고개를 돌리면 신녀봉(신뉘펑)이 보인다. 아름답고 수려한 모습 덕분에 장강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TMI 하나. 19금 사자성어 운우지락도 신녀봉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작은 쪽배로 갈아타고 신녀계로 출발했다. 양옆에 있는 협곡은 끝도 없이 높아지더니 어느새 고개를 완전히 젖혀도 한눈에 담기지 않았다. 한 굽이 한 굽이 물길을 따라갈 때마다 기운봉(치윈펑) 등 무산(우산) 12봉우리가 서로 다른 매력을 뽐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원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말문이 턱 막혔다. 짧아서 아쉬웠던 신선놀음을 마치고 돌아오면 크루즈는 무협을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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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의 안개를 본 사람은 다른 안개는 안개로 안 쳐줘요." 현지 가이드의 말처럼 무협을 지나가는 내내 안개는 강물과 협곡을 친구 삼아 크루즈를 따라왔다. 때마침 추적추적 안개비까지 내렸다. 따로 내리는 곳이 없기 때문에 갑판 위에서, 객실 발코니에서 여유롭게 무협의 절경을 즐겼다.

한참 풍경을 보며 멍 때리다 보면 어느덧 크루즈는 구당협에 접어든다. 이곳의 기항지 투어는 백제성. '삼국지'의 유비가 관우·장비의 복수전에 실패하고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성안에 들어서자 거대한 제갈량 석상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제갈량의 인기가 너무 많은 나머지 주인공인 유비가 밀려났다는 웃픈 설명이 이어졌다. 삼국지 속 장소를 따라 걷다 보니 사람들이 주섬주섬 10위안짜리 지폐를 꺼내기 시작했다. 10위안 뒷면에 그려져 있는 구당협 기문(쿠이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명당이 성내에 있어서다. 백제성 관광 때 잊지 말고 지폐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하룻밤을 자고 마지막 기항지 풍도귀성(펑두구이청)에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귀신의 도시'라는 별명처럼 다양한 요괴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엔 불교와 도교 사원이 모두 존재한다. 부처님과 염라대왕의 기묘한 공존이 인상 깊었다.

이 배에서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와이파이다. 미리 데이터 로밍을 하거나 시간을 보낼 놀거리를 준비하는 걸 추천한다. 혹은 '별멍' '강멍'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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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핫플로 손꼽히는 중경 훙야둥.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배경과 닮아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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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표 야경 맛집부터 SNS 핫플까지

장강삼협 크루즈의 시작과 끝인 중경 여행도 빼놓으면 섭하다. 먼저 야경. 중경은 중국의 숨은 야경 맛집이다. 추천 스팟은 단연 홍애동(훙야둥). 옛 군사시설 터에 전통 음식·공예 거리를 조성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배경과 비슷해서 단숨에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황금빛으로 물든 홍애동 밤거리를 쏘다니다 보면 금방 출출해진다. 곧장 눈에 보이는 길거리 음식점으로 직행. 무심해 보이는 주인 아저씨가 툭 건네준 구운 가리비를 한입 넣는 순간 여독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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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화제가 됐던 이자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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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뜨겁게 달궜던 인증샷 스팟도 중경에 있다. 아파트 한복판에서 전철이 튀어 나오는 이자파역(리쯔바역)이 그 주인공이다. 이 믿기 힘든 모습을 찍기 위해 중국 각지에서 여행객이 몰려온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도 찾아갈 만하다. 인민해방기념비가 위치한 거리에선 중국 길거리 음식에 도전해보거나 지인에게 줄 선물을 사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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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협조=센츄리크루즈

[중경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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