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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사설]특검 충돌도, 의정 갈등도, 연금개혁도 해법 못 낸 尹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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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불편한 질문 받으며 ‘불통 리더십’ 떨쳐내야

동아일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 중 물을 마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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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야당이 추진하는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선 “정치 공세”라며 거부했다. 나아가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도 “수사 결과를 보고 국민이 봐주기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면 제가 먼저 특검 하자고 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다소 달라진 언어와 태도를 보였지만 그 내용에선 바뀐 게 없었다. ‘매정하게 끊지 못해 좀 아쉬웠다’던 명품백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은 처음으로 “사과드린다”고 했고, ‘국정 방향은 옳았는데 국민 체감이 부족했다’던 4·10총선 참패 결과에 대해서도 “많이 부족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특히 모두발언에선 “저와 정부부터 바꾸겠다” “어떤 질책과 꾸짖음도 겸허한 마음으로 더 깊이 새겨 듣겠다”며 낮은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현안들을 두고선 그간의 기조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도 여전히 ‘모든 수사가 마무리된 뒤에나 논의할 일’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특히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에 대한 질문에는 엉뚱하게 “사고 소식을 듣고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고 질책했다”며 동문서답했다.

윤 대통령이 이런 인식에 머무는 터에 당장 시급한 정치의 복원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야당과의 협치는 국정 운영을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 윤 대통령도 “여야 정당과의 소통을 늘리고 민생 협업을 강화하겠다”며 말로는 협치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치에 ‘과잉 갈등’이란 진단을 내리며 여전히 내려보는 듯한 윤 대통령의 태도에서 협치를 위한 진지한 열의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경제와 사회 분야에서도 윤 대통령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그간 해왔던 대로 하겠다는 수준에 그쳤다. 고물가에 대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 정부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대책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면서 “농수산식품 물가는 큰돈을 안 써도 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처럼 쉬운 일이라면 그동안 천정부지로 치솟는 과일·채소값을 왜 방치했는지 의문이다. 기초연금을 40만 원까지 올리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국민연금과의 충돌 해소 방안이나 재원 마련 방법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연금개혁을 임기 내에 확정하겠다고 했지만 추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백지나 다름없는 ‘맹탕 개혁안’을 국회에 던져 놓고는 “대선 때 약속한 대로 국회가 거기서 고르기만 하면 될 정도의 충분한 자료를 제출했다”고 했다. 말로만 개혁을 강조할 뿐 의제 설정과 사회적 토론에선 빠진 채 뒷짐 지는 모양새다. 의료개혁에 대해서도 “의료계 단체들이 통일된 입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대화의 걸림돌”이라며 “정부 로드맵에 따라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대로 출구 없는 무한 대치를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1년 9개월 만에 열린 이번 회견은 여러모로 부족했다. 총선 참패 한 달이 돼서야 나온 사과는 옆구리 찔러 절 받은 듯했고, 말로는 바뀌겠다는데 그 변화를 체감하기 더욱 어려웠다. 다만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듯 윤 대통령에게서 이념과 갈등의 언어가 줄었고 앞으로 소통을 늘리겠다고 다짐한 만큼 답답한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해줄 이런 기회는 더욱 많아져야 한다. 낮은 자세에서 불편한 질문을 받으며 불통의 리더십을 떨쳐내는 과정이야말로 변화의 시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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