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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정부가 문제 만들어놓고 유급 대책 요구하는 건 적반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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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학칙 개정’ 새 변수

부산대 부결 이끈 김정구 회장

“결국 정부 방침대로 되겠지만

의대생에 긍정적 메시지 의도

교수 믿고 학교로 돌아와주길”

대학의 ‘학칙 개정’이 의대 증원 사태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부산대가 교무회의에서 의대 정원을 변경하는 ‘학칙 개정’을 처음으로 부결한 지 하루 만에 제주대가 부결에 동참했고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8일 부산대가 전날 교무회의에서 학칙 개정을 부결한 데 대해 “유감”이라면서도 “재심의를 통해 학칙은 개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부산대 의대 증원 관련 학칙 개정을 위해 교무회의가 열린 지난 7일 이 대학 대학본부에서 의과대학생들과 교수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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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는 정부 방침대로 학칙을 바꿔 125명이던 의대 정원을 200명으로 늘리고, 내년에 한해 증원분의 50%를 줄인 163명을 모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날 ‘부산대 학칙 일부 개정 규정안’이 교무회의에서 부결됐다. 대학이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하기 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게 이유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학칙 개정은 대학평의원회, 교무회의 심의를 거치지만 확정은 총장이 하게 돼 있고, 고등교육법에 따라 의대 정원 관련 학칙은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며 부산대의 경우 “재심의 절차가 진행되면 학칙 개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부산대 학칙 개정안 부결을 주도한 김정구 부산대교수회장(정보컴퓨터공학부)은 이날 “학생들이 교수님들을 믿고 돌아와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김정구 부산대교수회장


전국 40개 국·공립대학 평교수 2만여명을 대표하는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 회장인 김 교수는 이번 부결을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다른 국립대에서도 보조를 맞추면 좋겠다”면서도 “법적으로 상위법에 따르게 돼 있어서 정부 방침이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김 교수는 정부를 향해 “이런 문제를 만들어 놓고 대학들에게 ‘학생들 유급되지 않을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며 “적반하장인데 이건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이어 “어른들 잘못으로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해선 안 된다”며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와야 하는데 아무도 그런 노력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돌아올 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대로라면 일부 의대의 경우 5월 중에 복귀하지 않는 의대생들은 유급된다.

김 교수의 말처럼 학칙 개정 부결은 다른 대학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의대 정원이 늘어난 32개교 중 12개교가 학칙 개정을 끝냈고, 부산대 등 20개교는 개정 전이다.

제주대도 이날 교수평의회에서 학칙 개정을 표결 끝에 부결 처리했다. 제주대 관계자는 “총장이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고 했다.

강원대는 대학평의원회에서 대학본부가 상정했던 ‘의대 증원 학칙 개정’ 안건 상정을 철회했다. 당초 이날 오후 4시 열린 평의원회에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올해보다 50% 증원하는 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학본부에서 해당 안건 철회를 요구했고 평의원회에서 이를 받아들이면서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강원대 관계자는 “서울고법에서 심리 중인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결과를 지켜보고 안건 재상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학칙 개정이 최종 무산되면 시정명령을 하고, 대학이 이마저도 따르지 않으면 학생 모집 정지 등 행정조치를 할 방침이다. 정부는 다만 학칙 개정 결정권을 가진 총장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오 차관은 “대학이 스스로 의대 정원 증원 수요를 제출한 만큼 대학 내에서 의견을 모아 학칙 개정을 완료해 주길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차정인 부산대 총장은 이날 재심의를 요청했다.

40개 의과대학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이날 “정부로부터 각종 불이익이 예상되는 상황 속에서도 불합리한 정책을 거부한 부산대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다른 대학에서도 부산대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의교협은 “의대 증원의 과학성을 검증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 30∼50명으로 구성된 과학성 검증위원회를 이번 주 안에 구성하고 검증보고서를 내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고용노동부 6개 지방노동청에 전국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 의사들의 과로 문제를 거듭 제기했다.

정재영·김유나 기자, 제주=임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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