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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피의 과거 딛고 미래로...베트남 승전 행사 참석한 패전국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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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맞서 베트남 독립 이끈

디엔비엔푸 전투 올해 70주년 맞아

베트남 첫 초청에 프랑스도 화답

격전 벌인 곳서 양국 협력 강화

조선일보

7일 베트남 서북부 디엔비엔성(省) 디엔비엔푸시에서 열린 ‘디엔비엔푸 전투 승리 70주년 기념식’에 특별한 손님들이 참석했다. 디엔비엔푸 전투(1954년 3월 13일~5월 7일)는 베트남이 자국을 식민 지배한 프랑스를 궤멸한 전투로, 패전국인 프랑스에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과 패트리샤 미랄레스 보훈부 장관이 대표단을 이끌고 기념식을 찾았다. 이날 행사에서 단연 주목받은 장면은 승전 7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진 승전 퍼레이드 등 행사를 지켜보는 프랑스 대표단의 모습이었다.

프랑스가 베트남의 디엔비엔푸 전투 승리 기념식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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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비엔푸 묘지 찾은 佛국방 - 디엔비엔푸 승리 70주년 기념식 참석차 베트남을 찾은 세바스티앵 르코르뉘(오른쪽에서 넷째) 프랑스 국방 장관이 7일 헌화를 위해 전몰자들이 묻힌 디엔비엔푸 묘지로 들어서고 있다. 디엔비엔푸 전투의 패전국인 프랑스가 승전 기념식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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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은 데 이어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한 베트남이 한때의 침략국이자 패전국인 프랑스 정부 대표단을 기념식에 초청했고 프랑스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례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식민 통치와 승전·패전의 악연으로 얽힌 두 나라가 ‘과거는 직시하되 앙금을 털고 미래를 바라보자’며 전향적인 협력을 다짐한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프랑스 대표단의 ‘패전 기념식’ 참석이 실제 성사되면서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교역과 안보 분야에서 실리를 챙기자는 베트남 특유의 ‘대나무 외교’ 전략도 재조명받고 있다. 베트남은 미국 등 자유주의 진영과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을 가리지 않고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다.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오커스(미국·영국·호주), 파이브아이스(미국·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 등 서방 국가들이 안보 동맹을 결성하는 가운데, 국제사회 영향력 저하로 고민하는 프랑스가 동남아시아의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베트남과 밀착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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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디엔비엔푸 참전용사 장 이브 기나르가 5월 6일 디엔비엔푸 시내에서 베트남 군인들의 도움을 받아 힘람 언덕(베아트리스 언덕) 정상에 있는 표지판을 바라보고 있다. 1954년 5월 7일에 벌어져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 제국을 종식시킨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을 앞두고 프랑스 참전 용사 세 명이 피비린내 나는 분쟁의 현장으로 돌아왔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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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랑스 국방·보훈 장관의 베트남 방문은 연내로 예정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의 성격도 있다. 프랑스 대표단의 베트남 방문은 미국과 패권 경쟁이 한창인 중국의 권력 서열 1위 시진핑 국가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하는 동안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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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50여 일의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3000여 명의 프랑스군이 전사했고, 1만1000여 명이 포로로 잡혀 수용소로 끌려갔다. 포로 상당수는 귀향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에서도 4000여 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당시 베트남 공산 세력이 프랑스를 격퇴시키며 생겨난 자신감은 이후 남베트남 통일을 두고 미국과 벌어진 베트남 전쟁 승리의 큰 원동력이 됐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반면 이 전투는 프랑스에는 20세기 최대의 굴욕으로 꼽힌다.

디엔비엔푸 승전 70주년 기념식이 열린 7일 디엔비엔푸 시내는 붉은 바탕에 큼지막한 별을 그린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金星紅旗)’를 든 시민들로 북적였다. 제복 차림에 총을 든 젊은 군인, 훈장을 주렁주렁 단 참전 용사들, 70년 전 전투 당시 옷차림을 한 참가자들이 환호 속에 승전 축하 행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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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디엔비엔푸시에서 열린 1954년 프랑스 식민군에 대한 디엔비엔푸 전투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전투에 필요한 식량과 군수품 수송을 묘사한 자전거를 끌고 행진 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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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표단은 이번 기념식 참석을 위해 지난 5일 베트남에 입국해 베트남 정부 고위 인사들과 잇따라 회동했다. 베트남 국영 라디오 ‘베트남의 소리’에 따르면 르코르뉘 장관은 전날 팜민찐 베트남 총리와의 회동에서 “두 나라가 상호 존중하고 국제법을 기반으로 더 좋은 협력 관계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팜 총리는 “(프랑스가) 이번 승전 기념행사 참석 초청을 수락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며 “이번 방문을 통해 (2013년 수립된) 두 나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더욱 긴밀해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이번 방문에서 유럽연합(EU)과 베트남 간 추진 중인 투자보호협정과 베트남 수산물의 EU 지역 수출에 관한 각종 규제 등의 사항도 논의했다. 프랑스가 사실상 EU를 대표해 베트남과 핵심 현안을 논의한 것이다.

미랄레스 보훈부 장관은 ‘과거’와 ‘화해’를 주제로 한 일정을 이어 갔다. 그는 세 명의 프랑스 원로 참전 용사와 함께 격전지 현장을 둘러보고 프랑스군 전사자들을 추모했다. 베트남 전사자 묘역도 참배했다. 미랄레스 장관은 베트남 보훈부 장관과도 만나 격전 지역의 전사자 유골 발굴을 위해 양국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미랄레스 장관은 “최근 몇 년간 우리 두 나라는 증오를 거두고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우리의 공통된 역사(인도차이나전쟁)를 차분히 돌아볼 정도로 관계를 성숙시켜 왔다”고 X(옛 트위터)에 적었다.

☞디엔비엔푸 전투

1954년 3~5월 베트남 북부 디엔비엔성(省)의 성도(省都) 디엔비엔푸에서 벌어진 베트남군과 프랑스군의 전투. 1946년 발발한 프랑스·베트남 전쟁(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도중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향하는 경로를 차단하려 프랑스군이 설치한 진지를 당시 호찌민(1890~1969)의 베트남 공산 세력이 타격하면서 발발했다.

프랑스군은 막강한 화력으로 맞섰지만, 전투가 장기화하면서 물자 부족 등에 시달렸다. 베트남은 지형에 대한 익숙함과 민·군의 협력 등을 토대로 프랑스군 요새를 포위해 프랑스의 항복을 이끌어냈다. 이로써 전쟁이 막을 내렸고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통치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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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응우옌잡 장군


이 전투는 베트남 국부 호찌민과 함께 군을 이끈 보응우옌잡(1911~2013) 장군이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는 계기가 됐다. 아직까지 그는 ‘20세기 최고의 명장’ ‘붉은 나폴레옹’ 등의 칭호로 불린다. 알제리 전쟁(1954~1962년) 등과 함께, 군사 강국이었던 프랑스가 패전을 맛본 굴욕의 전투로 꼽힌다. 이 두 패배가 결정타가 돼 프랑스의 제국주의가 저물었다고 평가된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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